임고서원(臨皐書院)
기념물 제62호(1985년 10월 15일 지정)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 447





임고서원은 고려말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선조 명종(明宗) 8년(1553) 부래산(浮來山)에 창건하여 사액 되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 현 위치에 중건, 재사액(再賜額)되었다.





인조 21년(1643 여헌(旅軒) 장현관(張顯光) 선생을 배양하고 정조 11년(1787)에는 지봉(芝峰) 황보인(皇甫仁) 선생을 추향 하였고,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고종 16년(1879)에 존영각(尊影閣)을 건립하여 영정을 보관하였다. 










1965년에 복원 하여 포은선생만 복향하고 1980년부터 1999년까지 1차 성역화 사업을 마치고 2001년 지봉(芝峰) 황보인(皇甫仁)을 다시 배향하였으며,

묘우는 문충사(文忠祠), 내삼문은 유정문(由正門(, 강당은 흥문당(興文堂), 동협은 경의협(敬義夾), 서협은 명성협(明誠夾), 동재는 수성재(修省齋), 서재는 함육재(涵育齋), 문루는 영광루(永光樓)이며, 경내 심진각(尋眞閣)과 전사청(典祀廳)및 경내에는 포은선생 신도비(神道碑), 단심가비(丹心歌碑), 백로가비(白鷺歌碑)등이 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은 고려 충숙왕 복위 6년(1337) 현 임고면 우항리에서 일성군 운관의 아들로 태어나 공민왕 9년(1360) 문과에 장원, 예문검열등을 거쳐 성균대사성, 문하시중 등을 역임하였고 조전원수가 되어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대명외교에도 큰 공을 세웠다.


지방관의 비행을 근절시키고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였으며,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지조로 추앙되었고 시문, 서화에도 뛰어났다.






















고려삼은의 한사람으로 기울어져가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 잡고자 노력하였으나 공양왕 4년(1392)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 조선 태종 원년(1401) 영의정에 추중되었고 익양 부원군에 추봉 되었으며 문충의 시호가 내려졌다. 




사찰명 : 거동사(巨同寺
소재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1683번지
성보문화재 : 4개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서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기단은 이른바 가구식(架構式)으로 구성된 고식이나 갑석(甲石)이 모두 없어졌고 소맷돌이 있는 돌층계가 있다. 건물은 다포계이며 공포는 내·외 3출목으로 구성되었다. 앞면 공포의 구조는 두공(頭工)부터 연초각(蓮草刻) 하였고 초제공(草諸工)과 2제공 역시 초각하였으며, 살미 끝은 수두형(獸頭形)으로 조각하였다.




이렇듯 앞면은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나 뒷면은 장식적인 요소가 없이 간결하게 되었다. 앞면 분합문(分閤門)도 문살을 초각 장식하였고 단청의 색조는 장중한 편이다. 조선시대 초기 이후 후기까지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에는 가운데 주존불인 석가모니불과 보현, 문수 좌우협신불, 후불탱이 있고 그 옆으로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신중탱이 봉안되어있다.

























                       중앙뉴스 / 신영수 기자 / youngsu49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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