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전 선인들과의 신비로운 만남


문인으로도 활동 중인 충청타임즈 연지민 기자가 중원 땅을 비롯한 주요한 문화 유적지를 오랜 시간 탐방하여 선인들의 신비로운 얼굴을 취재한 책, ‘천년의 미소에서 꽃이피다’(해드림출판사)를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펴냈다.

수백 년 전, 이 땅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얼굴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그들의 표정, 그들의 미소, 그들의 눈빛, 그들의 코끝 은 어떠하였을까. 그들이 역사 속에서 걸어 나왔을 때 어떠한 첫 만남, 첫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이 책은 역사의 흔적 속에서 그들의 얼굴을 찾아 마음으로 소통하는 감성의 시간을 선사한다.

들과 산 속에, 마을에 흩어져 있는 이 책 속 얼굴들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래된 야외 예술 작품이자 미래 가치를 내포한 상징 기호들이다. 특히 문화유산 속 얼굴은 그 시대의 문화와 심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으며, 시공을 초월한 첫 시선이 오가는 만남의 장이다.

돌사람들은 깊은 산 속 바위에 서 있기도 하고, 마을 입구에서 미소 짓고 서 있기도 하다. 때로는 묘소 앞에서 죽은 이를 묵묵히 지키고 있으며 장소를 옮겨 박물관에 가 있기도 하다. 저자와 이들 돌사람과의 만남은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며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그들과 나눈 마음과 대화 내용을 이 책에 담아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느낌으로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 비록 그 마음이 통하지 않고 느낌이 다를지라도, 그 다름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다름 또한 이 우주 신성한 참 나의 마음이기에 존중되어야 한다.

중원인의 심성, 자신의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가

링컨은 나이 마흔을 넘으면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삶의 흔적과 내면의 심성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에 한 말이다. 이는 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개인의 총합인 사회의 문화와 심성 역시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다. 얼굴은 우리 역사 속에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고분벽화, 불상, 불화, 무신도, 장승, 탈, 그림, 도자기 등에는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의 자화상이 들어 있다. 자화상의 중심은 얼굴이다. 얼굴 역시 천태만상이다. 표정과 느낌 또한 다양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고 자 하는 눈빛도 각양각색이다.

특히 중원인의 옛 얼굴은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단양 수양개 사람이나 청원 두루봉 동굴 흥수아이의 복원상에서 볼 수 있으나,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이 직접 새긴 얼굴 모습은 6~7세기경부터 바위에 새긴 불상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불상은 충주 봉황리 마애불과 영동 신항리 삼존불을 비롯해 수많은 불보살이 옛 중원인의 자화상으로 남아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호족의 자화상인 철불이 지금도 충주 단호사에 앉아 있으며,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던 중원인들의 마음이 담겨진 미륵불이 중원 땅 곳곳에 세워져 들녘을 바라보고 있거나,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지금도 의연한 자태로 서 있다.

이들 불상은 네모진 얼굴에 눈·코·입이 얼굴 중앙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중원인의 얼굴 특징을 하고 있기에, 그 마음 역시 중원인의 심성을 담고 있다.

불상과 장승 그리고 문무인석

불상의 얼굴은 갖가지 표정을 짓고 있다. 어떤 불상은 근엄하고, 어떤 불상은 인자하고, 어떤 불상은 한없이 미소 짓고, 어떤 불상은 해탈한 듯 그윽하고, 어떤 불상은 무엇인가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때로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슬픈 표정을, 때로는 미소 지은 채 기쁨에 넘친 모습을, 때로는 입을 꽉 다물어 분노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사 희로애락과 시공을 초월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불상은 오래된 가치와 풍상에 더욱 빛을 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역사 무대 위 예술작품이자 살아 있는 돌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과 나누는 눈빛과 마음의 대화는 그윽하며, 이윽고 깨달은 세계에 닿게 된다.

장승은 이 땅에서 대를 이어 묵묵히 살아온 민중들의 소박한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보다 친근하고 정겹다. 이 땅에 살던 어느 할아버지·할머니가 시간을 넘어 걸어나온 듯도 하고, 말을 걸면 곧 대답할 것도 같다. 또 달리 보면 험상궂고 무섭게 생겼지만, 모진 세월 비바람을 이겨온 거친 피부와 이끼는 이내 장승에서 웃음을 띤 인자한 모습을 발견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얼굴은 바로 이 땅에서 살다 간 수많은 민초들의 자화상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민초들은 음성 마송리 장승을 정계대장군(靜界大將軍)이라 불렸듯이 장승을 통해 세상을 깨끗하게 정화하여 맑고 고요한 세상을 되길 간절히 염원하였던 것이다.

장승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주었다면, 이 땅에서 살다 죽어간 사람들을 수십 수백 년 동안 묵묵히 지켜준 돌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묘소 앞 양옆에 서 있는 문무인석들이다.

문무인석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일반화되었는데, 죽은 자를 영원히 모시는 존재이다. 이 책에 모신 문무인석은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 조선왕조의 개국공신 권근, 임진왜란의 영웅 김시민, 중원 땅 유일한 조선 공주부부인 홍우경·정인옹주, 조선후기 조선성리학을 완성한 송시열 등의 묘소를 지키는 돌사람들이다. 그것은 비록 후손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지만, 그것을 만든 석공의 자화상일 수도 있고 그 시대 문화와 심성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어떤 돌사람들은 해학적으로 조형되어 있고, 어떤 돌사람들은 근엄하게, 때로는 인자하게, 때로는 우직한 인상을 하고 있다. 큰 귀와 꽉 다문 입, 큰 두 눈, 복스런 볼 등은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돌사람들의 얼굴에는 묻혀 있는 이의 영혼이 스며 있으며, 길이길이 이 땅에 살아가는 후손들의 채취가 배어 있다.

저자 연지민 기자는 충북 청주 출생. 2000년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현재 지역일간지 충청타임즈 문화부기자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천연기념물의 웅혼함이 깃든 <충청의 천연기념물 그 천혜의 비상>, 청주지역의 문화탐방 <콩닥콩닥 휴>, 박물관 미술관을 소개한 <충북의 박물관 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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