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일본의 철도 전문가들 "한국, 왜 민영화 실패 전철 밟나" 경고 목소리

철도노조 파업으로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된 '철도 민영화' 논란은 다행히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나라들의 예가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철도 민영화(경쟁체제 도입) 정책에 대해 토론을 하기 위해 지난 8월 유럽과 일본의 철도 전문가들이 한국에 모였었다. 하지만 현재 철도노조와 관련해 닥친 상황들을 보면 이 토론에서 나온 내용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철도노조가 자신들의 밥그릇만을 위해 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런 걸까?


▲ 12월 31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서울지역 철도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철도노조원들이 '철도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한 언론매체에 따르면 지난 8월 '한국철도 미래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유럽, 일본의 철도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성공 사례로 밝히고 있는 유럽과 일본의 철도 민영화 정책은 결과적으로 공공성의 후퇴를 불러왔다" 며 "각국이 이미 겪은 민영화의 실패 사례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포지엄에서는 각국이 겪은 철도 민영화의 사례도 공유됐다. 스웨덴의 얀 루덴 기간산업 전국교섭위원회 위원장은 민영화와 경쟁 입찰에 의한 철도 체제의 부실화를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스웨덴의 철도 산업은 서서히 분할되고 민영화돼 왔으며 2011년 말 결국 여객 서비스는 전면적인 민영화(입찰 경쟁 체제)의 길로 접어 들었다" 며 "민영화 뒤 선로작업 중 사망사고만 7번 있었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철도 운영업체와 선로 관리업체가 나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철도의 체계적인 구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환경단체 '지구의 벗'의 교통운수과장인 베르너 레 박사는 학국 정부가 민영화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독일의 민영화 경험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왜 독일의 실패한 나쁜 정책만 가져오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풀었다.

그는 "독일 정부는 철도 체제를 지주회사 방식으로 바꾸고 지분 매각을 시도하려던 2008년에 세계 금융위기로 불발됐다"며 "독일에서는 이를 행복한 실패라고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베르너 레는 "한국 정부가 경쟁체제 도입을 위해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별도 자회사에 맡기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는 국가 기간 교통망인 철도를 망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코레일을 철도지주회사로 두고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포함한 여객, 차량중정비, 화물운송 등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설립하는, '독일식 지주회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동일본 일본철도(JR)' 노동조합의 이시이 타카시 부위원장은 "일본 역시 철도 민영화 바람을 타고 7개 회사로 분리됐으며, 그 가운데 4곳이 적자를 보고 있다"며 "결국 이들의 부채는 정부 보조금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민영화 추진 뒤에도 정부의 재정부담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영국의 철도 전문가인 언론인 크리스천 월마는 "영국에서는 비싼 요금과 잦은 사고 등 철도 이용객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며 "민영화 자체도 문제지만, 민영화를 쉽게 추진하기 위해 철도 체계를 분할하는 것이 특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한된 선로를 복잡한 신호 체계를 통해 공유하는 철도 산업은, 분할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이 심포지엄 토론에 참여한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운영하는 자회사 지분을 국민연금 등 공적기금에 매각하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는 논리를 내놓고 있는데, 이는 허구"라며 "국민연금은 그 재원이 공적 연금일 뿐이지 그 운영은 철저히 이윤을 추구하는 사적 금융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시중 금리 이상의 운용수익을 거둘 것을 요구받는 연기금이 공공성을 담보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경실련의 윤순철 사무처장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쟁체제 도입은 시차를 두고 있을 뿐 그 본질은 민영화로 귀결된다"며 "코레일의 합리적 개혁이 필요하다면 합리적인 통제 방안을 마련할 일이지, 민영화가 답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법무법인 다산의 서상범 변호사는 "수서발 케이티엑스의 운영자가 코레일이 아닌 별도 법인으로 결정된다면, '내국민 대우'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이 문제될 가능성이 높다"며 "공기업인 코레일에만 철도 운송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향후 미국 기업이 한국 철도 산업에 자본 참여를 하거나 직접 여객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8월의 '철도 민영화' 경고에 대한 심포지엄 내용이다. 하지만 '철도 민영화'가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철도노조가 파업을 선언한 후인 11월말 무렵 부터였다.

물론 정부의 뜻과 그 정부의 뜻에 따르는 언론들의 철도 민영화 기사 내용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수십년간 철도업계에서 일해 온 각국의 철도 전문가들의 말을 믿어야 할지는 우리의 몫이나 한 집단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파업이었다고 치부하기에는 큰 부족함이 있어보인다.

[중앙뉴스 / 윤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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