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 모호한 판정 피해 가족들 ‘분통’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의심사례 조사를 착수한지 8개월 만에 구체적인 피해자 지원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공청회가 열렸으나 모호한 피해판정과 지원 기준으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을 두 번 울리는 이상한 공청회가 되고 말았다.

정부가 늦게나마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에 나서기는 했으나 폐손상 이외의 피해는 아예 판정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 심상정 의원, 환경보건시민연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의 공동주최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결과 설명회 및 피해자원 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1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설명회에 앞서 피해자들은 피해조사 결과안내문을 받았다. 결과 안내문에는 임상판정결과와 환경조사결과에 따라 ‘가능성 거의 확실함’, ‘가능성 높음’, ‘가능성 낮음’, ‘가능성 거의 없음’, ‘판단불가능(자료부족)’으로 등급이 표시 됐다. 그중에‘가능성 낮음’이나 ‘가능성 거의 없음’의 경우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한 지원을 받기 어려워진다.

공청회에 참석한 피해 가족들은 판정 기준과 조사과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수술을 했거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확실한데도 등급이 낮게 나온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피해지원방안 공청회에서도 피해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항목이 의료비 및 의료비 관련 약제비, 호흡보조기 임대비와 일부 비급여 항목에 제한되고 간병비, 의료보조기 구입비 등 실질적으로 지원 받아야 할 부분들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심혈관 질환, 간암 등 다른 질병을 일으킨다는 동물실험 결과를 확보하고서도 이에 대한 피해인정 기준을 만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 결과 설명회 및 피해자지원방안 공청회'에서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는 "조사가 폐 질환에만 집중돼 이외의 다른 질환은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쓴 이후 불규칙한 심박동과 가슴 통증을 앓게 된 류명섭(70∙서울 송파구)씨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후 심장질환에 걸려 현재 119구급대 심장병 응급 환자로 등록돼 있다"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왜 폐에만 국한시키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태종씨의 아내는 애초에 호흡기질환이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자 인정을 받지 못했다. 김씨는 만성 기관지확장증으로 호흡이 어려운 아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2007년부터 대형마트에서 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할 정도로 일상적인 활동에는 어려움이 없었던 아내는 한두 해 지나면서 점점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폐 기능이 15%만 남았다"는 진단을 받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하지만 폐 손상 증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서 제외됐다. 김씨는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있던 피해자 가족을 두 번 죽인 무책임한 조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 정부가 폐손상 의심사례를 조사한 361명 중 가능성 낮음 판정을 받은 사람은 42명, 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은 144명으로 전체의 51.5%에 달한다.

특히 가능성 낮음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기존 질환 영향이 지목된 경우가 많아 지원 범위에 포함될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부 환경보건위원회는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조사결과 자료를 받으면 바로 지원 범위를 결정하게 된다.

폐손상 조사위원장을 맡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결과 설명회에서 “가능성 낮음 판정을 받은 이들은 폐손상이 다른 원인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가습기 살균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는 경우”라며 “지원 여부에 대해 행정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폐질환 이외의 다른 질환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임흥규 팀장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지 않도록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재조사는 철저하고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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