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임기자의 작은이야기
 
 
오솔길을 따라 얼마를 올라 왔는지 모른다. 등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을때 쯤에야 암자의 작은 마당에 들어섰다.



작은 방 두개가 나란히 있고 귀틀 마루가 놓인 암자는 여느 다른 암자와 다를 게 없었다.

좁은 마당에 파란 이끼가 가득하다는 것만 빼고, 보통의 암자에는 비 질을 해서 자국이 남아 있기 마련인데 정갈하지만 왠지 이끼가 가득한 걸 보자 연주는 가슴이 멍멍해 지는것 같았다.

윤이 나는 마루는 암자 주인의 성품이 어떤지를 한 눈에 알게 해 주었다.




짐을 지고 먼저 올라간 행자스님이 돌아 가려는 참인가 보았다.

보살이라 불리는 준호 생모가 뒤안 쪽에서 나오다  형숙을 보며 공손히 합장을 하고 다시 연주를 향해서도 합장을 해 보였다.

연주도 맞 받아 합장을 했다.


열려있는 방문안을 들여다 보니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다.특이하게도 부처는 금도금 대신 깍아 만든 나무 빛깔 그대로 세월의 옷이 겹겹이 입혀있었다

신을 벗고 들어가 향을 피우고 삼배를 올렸다

다른 법당에 다 있는 불전함이 그곳에 없다는것만 빼면 너무도 소박하고 정갈한 축소판 법당이였다.




연주는 준호 생모라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준호랑 많이 닮은것도 같다.

쪽을 찐 머리에 가르마 골을 따라 흰머리 카락 몇 올이 보였다

화장기라곤 없는 얼굴에 막 주름이 들어서기 시작한것 같아보인다

무표정한 얼굴이 자신의 삶을 얘기하는것 같아 연주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를 보자 형숙이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얼마나 모질고 독하면 이런 곳에 여자 혼자 살게 두었을까?

저 사람은 왜 도망가지 않고 여기 살고 있을까?

보아하니 담장이 둘러쳐진 것도 아닌데......귀양살이하는 옛날 선비 같은 심정일까?

자신이였다면 도망갔을것이다

그녀가 하는 양을 보니 형숙이 뭐라고 물으면 고개를 가로저었다 끄덕였다를 반복하다가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여 보이는게 전부 였다.

아직도 자신이 남의 남자를 넘 본 죄인이라 생각하는걸까?

사람사는 일은 왜 이런걸까?

고고하기 짝이 없어 보이던 형숙의 시어머니 뒤에 이런 큰 그늘이 있을 줄이야

저 여자에 비하면 내 인생은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웠는가 말이다.

지수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니, 지수일도 저 보살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아들을 낳았으되 얼굴도 한번 본 적없고, 사랑을 하였으되 이룰수도 없었고, 평생을 저렇게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여자도 아니요 남자도 아닌 , 그렇다고 사람도 아닌.......

신혼시절부터 시작된 여러 힘든 상황에 놓일때 마다 왜 이럴까?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데, 남편은 왜 내게 직장을 그만 두게 했을까?

고리타분한 남편의 성격이 싫어 어느날엔 부엌 바닥에 접시 두개를 던져 깨트려 버린적도 있었다. 차마 말로 할수 없었던지라 타일 바닥에 부딪혀 깨진 유리접시 조각들을 주우며 속으로 삭히곤 했었다.시어니는 또 어땠는가? 일기장 한 페이지를  빼곡히 메우고도 모자라서 다음장으로 넘어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런 모든것들이 저 보살을 보면서 한갖  바람에 실려온 조각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연주는 자신의 욕심을 전부 털어버리고 내려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형숙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올 때 마다 묻는 건강은 어떠냐,

지내기 불편하지 않느냐

필요한 물건이 없느냐

그 정도였다.

질문의 답은 언제나 같은 것이였다.

다시 합장을 하고 돌아서 큰 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얘, 저 사람 말을 못하니?"

"응"

"왜? 똑똑했다며? 그때는 말을 했을거 아냐?"

"그땐 했겠지. 난 본 적 없지만... 정치판에 끼어든 여자가 처음부터 말을 못하는 농아였겠니?"

"근데 왜?"

"모르겠어, 처음 만났을때 부터  말하는 걸 못봤으니까. 내 앞에서만 안하고 다른이들에겐 하는지도 모르지, 근데 행자 스님께도 말을 하지 않더라구 아마 못 하나봐"




"왜 그렇게 됐을까?"

"그 속을 어찌 알겠니?"

"니가 누군지 모른다면서?"

"그것 역시도 모르지.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모른다고 하시는데 사람이 눈치가 있지 그정도야 모르겠어? 큰 스님을 시켜서 나를 복지사업에 관심있는 여자라고 했다는데  20년 세월을 도와주는데 눈치 못 챘겠어? 미련 곰텡이가 아니고서야"

"참..... 왜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됐을까?"

"어머님 말로는 준호를 뺏기고 말문을 잃어 버렸나 보다시더라, 더는 말씀하지 않으시니 알바 없지 나도 알고 싶지도 않아, 아무리 지나간 여자라고 해도 시앗이고, 저 사람을 보고 가는 날엔 준호 쳐다 보는게 편치 않았어"

"그렇지...... 참, 준호는 언제 오니?"

" 신정때 쯤 올거야"

"왜 하필 일본으로 유학을 간거야?"

"지가 원해서,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겠다잖아 그 방면은 일본이 유명하잖니"

"응,..."

헛으로 대답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 봤다

낙엽진 초겨울 산은 헐 벗어 추워보였지만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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