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사람의 모습이나 물체의 모양을 비추어 보는 물건, (2) 어떤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보여 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모범이나 교훈이 될 만한 사실 등  3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거울을 자신의 외면의 모습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거울의 본래의 목적은 자신의 내면 즉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마음공부에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BC 563? - BC 483?,  석가는 샤카<Sākya>라는 민족의 명칭을 한자로 발음한 것이고, 모니<muni>는 성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석가모니라 함은 본래는 '샤카족(族)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는 아들 라훌라(羅喉羅, 석가모니의 아들로서 출가의 장애가 되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교단 최초의 사미십계를 받고 수행하는 남자승려가 되었다.)가 7살 때 불교교단에 받아들여, 아들이 마음을 닦으며 잘 성장하도록 이끌었으며, 라훌라에게 해준 설법이 지금도 몇 개 남아있습니다. 아래는 석가모니가 아들인 라훌라에게 ‘거울’의 목적에 관하여 설법한 내용입니다.



              석가 : ‘거울의 목적은 무엇인가?’
            라훌라: ‘모습을 비추어 보는것입니다’
            석가 :  ‘마찬가지로 행동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너 자신과 남을 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행동은 절대로 해선 안된다. 만약 네 자신과 남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이라면 그것은 해도 좋다.‘


석가모니의 마음공부 가르침의 효과로 라훌라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중 한명이 되었으며,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을 은밀히 잘 실행했다 하여 ‘밀행(密行) 제일’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공부 그중에서도 마음공부란 무엇인가요? 불교의 마음공부 예를 보고자 합니다.
살아 있는 부처라고 하는 티벳의 달라이라마는 불교를 과학이라고 했습니다. 심리학과 공통점이 많다고 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압축하면 마음 '心' 한 자입니다. 마음을 바로 알고 다스리는 것, 그것을 통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貪(탐)·瞋(진)·癡(치)’로 보고 이 세가지 번뇌는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므로 三毒이라 하였습니다. ‘貪(탐)·瞋(진)·癡(치)’는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인과관계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탐욕(貪欲)은 본능적 욕구를 포함해서 탐내어 구하는 욕심 즉 끊임 없이 무엇을 구하고 더 갖으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진에(瞋恚)는 뜻에 맞지 않을 때 일어나는 성냄·분노·증오·노여운 마음이며, 우치(愚癡)는 탐욕과 진에에 가려 사리분별에 어두운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깨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貪(탐)·瞋(진)·癡(치)’의 三毒은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전생의 괴로움을 받게 하는 가장 큰 적이지만, 이러한 번뇌가 생겨나게 된 근본 원인은 결국 자아에 대한 도착된 견해[我見 혹은 我相]와 그 사견에 대한 집착입니다. ‘貪(탐)·瞋(진)·癡(치)’로 대표되는 번뇌는 아상을 중심으로 생성·발전하기 때문입니다. 무아(無我)에 대한 통찰은 모든 번뇌의 서식처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수행의 근본이며, 불교가 지혜를 중시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알면 마음의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는 해탈과 열반이라고 합니다. 해탈이란 한마디로 탐욕의 소멸이고 열반이란 해탈 이후에 느끼는 행복입니다.

동양사회에서는 옛부터 과거제도가 있었고 이를 통과하면 사회적 보상이 뒤따랐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공부는 여전히 의미있는 신분상승 수단입니다. 그러기에 한국의 학부모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 사교육에 엄청난 비용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공부방식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암송 위주였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두뇌에 입력함으로써 최고학벌 기관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로 나뉨으로써 지나친 서열과 줄세우기가 만연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진실한 공부란 무엇인가요?  '工夫'란 한자는 중국어로는 '쿵후'라고 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란 무술을 단련하는 것인가요? 고대로부터 무술을 단련한다는 것은 싸움기술을 익히는게 아니었습니다. 劍道, 柔道, 跆拳道의 이름처럼 도(道- 사전적 의미는 첫째,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둘째, 종교상으로 근본이 되는 뜻.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 셋째, 기예나 방술(方術)을 행하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그 중 어느 하나보다는 통합적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의 경지가 숨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사회는 진실한 공부 즉 마음공부를 하는 사회로 변모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기 위하여 공부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라는 말인가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가장 큰 요소는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면서 잘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며, 자신을 잘 되게하는 공부가 첫번째입니다. 자신이 잘되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즐기며 잘하여야 하는데 일을 잘하는 것이란 시험을 잘 보는 공부기술과는 전혀 다릅니다. 전문적 지식과 함께 사람관계를 잘 하여야하고, 주위의 환경변화에도 능숙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 순간순간이 공부해야 할 것 천지입니다.
  

두 번째 공부는 心性을 공부하는 일입니다. 공자는 사람의 나이 예순이 되면 耳順이라고 해서 귀가 순해진다고 했는데, 지식이 많다고 해서 세상의 소리에 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혜안이 있어야 귀가 순해지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 공부해야 할 것은 자신에게만 주어진 召命을 이루는 공부입니다.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사람이 많지만 자신에게만 주어진 天職이 아니면 성공의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소명이 있다면, 자신만이 하고 싶은 천직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공부해서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공부입니다.
  

공부란 행복을 만드는 요소입니다. 공부란 책상 위에서만 이루어지는게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마다 공부는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남과의 외적인 비교를 통해서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공부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거울에 비추는 신체, 특히 얼굴을 자주 보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신의 외면의 모습보다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마음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아래는 전북 남원군 금지면 금지동초등학교 2학년인 김주현 어린이의 ‘거울’이란 동시작품이지만 외면보다 내면의 아름다운 마음이 중요함을 어린이 답지않게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거울을 보면 누굴까?
                      신기하게 나와 똑같은 모습
                      활짝 웃으며 미소를 띠면
                      살며시 다가오네!
                      거울을 보면 누굴까?
                      이상하게 나와 다른 모습
                      눈썹을 찡그리고 화난 표정을 지으면
                      멀리 멀리 도망을 가네!
                      거울은 누굴까?
                     나의 마음을 비추는 친구
                     입술 꾹 다물고 말하지 않아도
                     슬픈 눈 속에 비친 내 마음
                     속상한 마음 환하게 들여다보네.
            
김주현 어린이의 ‘거울’ 동시는 거울을 보면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나타나며, 웃으면 웃는 모습이며, 화난 모습이면 화난 표정이 나타나서 거울을 보면서 자기의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주현 어린이는 눈에 보이는 모습도 중요하지만 마음까지 보여준다고 하니 얼마나 훌륭한 생각입니까? 즉 거울에서 자신의 마음까지 볼 수 있다고 하니 이 거울로 자신의 아름다운 마음까지도 다듬을 수 있다는 거지요. 이 동시을 읽으면 김주현어린이처럼 마음의 거울을 가지게 되어 마음씨가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라 믿게 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며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작 희망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째서 우리는 희망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우리는 희망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희망을 찾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희망인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빠져버려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마음이 바로 빛이고 희망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보기 시작했다면, 이제 희망의 씨앗이 심어진 것입니다.


‘觀相 骨相보다 心相이 최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굴이 반듯하고 골격이 바른 것 보다 마음이 발라야한다는 말입니다. 얼굴 표정이나 옷차림새는 인간관계에서 첫 인상을 좋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 씀씀이나 떠난 뒤의 여운은 그 사람의 향취를 남기는 것입니다. 만나서 반가운 사람보다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좋은 화장품으로 꾸준히 손질해야 좋은 피부를 유지할 수 있듯이, 좋은 생각으로 꾸준히 손질하면 심상이 바뀌고 팔자가 달라집니다. 


훌륭한 삶, 좋은 삶,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 성공한 삶은 자기 내면의 마음을 갈고 닦아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자신의 변화모습은 거울을 통하여 비치는 자신의 신체 특히 얼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음까지 화장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얼굴만 화장하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어릴때 심한 열병으로 장님·벙어리·귀머거리의 3중 장애자이면서도 결코 절망하여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 본토는 물론 해외에서도 강연 여행에 나서 맹인 및 신체장애자에 대한 세상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고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과 복음을 심어 주었던 헬렌 켈러(1880~1968)는 “몸의 눈을 잃은 것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마음의 눈을 잃어 버린 자"라고 했습니다.


나 자신은 지금까지 거울을 잘 보는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삶, 좋은 삶,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 성공한 삶을 위하여 앞으로 자주 거울을 보면서 거울에 비추어지는 나의 얼굴이 나날이 아름다워지도록 거울을 통한 마음공부를 열심히 할 것입니다.

효 리더십연구소장 / 교육학박사 고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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