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방송에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영역은 매우 넓다.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본다는 시간대에 드라마 프로가 집중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그 위상을 알게 한다. 인기 있는 드라마 작가는 웬만한 A급 탤런트도 따라가기 힘들만큼 많은 원고료를 챙기고 있다.

이러한 작가가 많아야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불행히도 작가 수는 한정된 느낌이다. 그런 역량을 가진 새로운 작가가 탄생하지 않기 때문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요즘 문단에 신인으로 등장하거나 신춘문예에 입상하는 젊은 작가들의 수준은 기성작가 뺨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상력이나 글 쓰는 솜씨라면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을 써내고도 남는다. 그런데 어째서 드라마의 인기를 몇몇 작가에 의존하는 것일까. 과연 그들의 작품이 그다지도 많은 시청자를 휘어잡을 만큼 대단한 위력이 있어서일까. TV방송은 시청률로 먹고 산다.


시청률이 높아야 CF가 쏟아져 들어오고 엄청난 제작비를 들이고서도 수지타산이 맞는다. 우리 방송들은 오직 시청률에만 신경을 쓰지 작품의 질이나 문학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드라마의 질이 낮다는 질책이 쏟아진다. 그래도 끄떡없다. 방송 운영자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시청률만 높은 드라마면 오케이다. 아침부터 무슨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면도 있지만 아침 드라마에서 부부간의 갈등이나 불륜의 얘기가 나오면 하루 종일 우울해진다는 사람도 있다.

구태여 미묘하기 짝이 없는 삼각관계나 근친상간 등의 불륜 드라마를 아침이던, 저녁이던 간에 내보내는 것은 별로 유익한 일이 못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이런 내용을 즐긴다고 하니 심리의 미묘함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반면에 역사극은 그것을 진실로 믿는 실수만 저지르지 않으면 즐겨 볼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극을 보면서 그것이 사실에 근거를 둔 허구라는 사실을 깜빡한다. 세종대왕이나 허균, 주몽, 여인천하, 용의 눈물 등 사극이 준 역사적 역동감은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한 면도 크다. 이번에 방영된 거상 만덕은 제주도에서 큰 돈을 벌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 실존여인의 얘기를 잘 꾸몄기 때문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조선조 말기에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시점에 세워진 근대 최초의 병원인 제중원도 처절하기 까지 했던 반상의 신분제도와 남여의 애정을 적절히 배합한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가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 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10년 남짓한 듯한데 전반적으로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 전에도 영화나 드라마가 외국에 수출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문자 그대로 극적인 반전을 이룬 것이 배용준과 최지희가 출연한 겨울연가다. 이 드라마 덕분에 남이섬은 일본인들의 관광코스가 되었다.

배용준은 일약 대스타로 발돋움했으며 일본 최고의 높임인 ‘사마’로 불려진다. 이후 지금까지 한류 붐은 계속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껄끄러운 관계에 놓여있는 한일관계를 떠나 문화적인 교류는 매우 깊어졌다고 보인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냉랭한 줄다리기는 드라마에 들어가면 한낱 안주감도 되지 않는다. 일본의 시청자들은 주로 주부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한국 드라마라고 하면 열광의 경지다.


4월30일 현재 일본의 지상파와 공중파를 통하여 방영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는 무려 31편에 달한다. 어떤 방송은 2편을 방영하기도 한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 대왕 세종, 올인, 내사랑 금지옥엽, 주몽, 그들이 사는 세상, 뉴하트, 여인천하, 신데렐라맨, 용의 눈물, 파리의 연인 등이다. 필자로서는 제목만 봐서는 무슨 드라마인지 전연 알 길이 없는 제목들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드라마들이 어째서 일본여인들을 휘어잡았을까.

이에 대하여 일본 아사히신문의 계열사인 주간 아에라(AERA)는 “일본인의 마음에 결핍된 무엇인가가 한국 드라마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 산부인과에서 부모가 바뀌어 인생이 바뀐 사람 등의 얘기는 흔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십 명의 캐릭터로 움직이게 하면 어느새 뜨겁고 격렬한 세계가 된다고 한국 드라마의 강점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해서 좋아하기만 하면 안 된다. 드라마도 문학의 한 장르임을 잊지 말고 수준 높은 스토리를 개발하는 것이 순서다. 인기가 좋다고 해서 불륜 드라마를 양산해내는 작가는 서서히 물러서야 한다. 드라마 담당 PD들은 눈앞의 시청률에만 매달리지 말고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유익한 내용을 담는 드라마 개발에 애써야 한다.

자칫 불륜 드라마에 목을 매다보면 식상한 시청자들에 의해서 언제라도 축출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시청자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며 밝고 명랑하면서도 인기 있는 작가의 출현을 마음 깊이 바라고 있음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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