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101조 손 벌려야 할 판… "페이고 무시" 비판 고조

▲ 광역단체장 당선자 공약소요재원     © 중앙뉴스
[중앙뉴스=김영욱 기자]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차기 광역자치단체장들이 공약을 이행하려면 최소 220조6692억원(광역단체 14곳 기준)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중 46%에 해당하는 101조원을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겠다는 계획이어서 벌써부터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제라도 페이고(pay-go·재정 소요 사업 추진시 재원 마련 대책을 의무화하는 것) 원칙을 무시한 포퓰리즘성 공약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경제계는 각 단체장 당선자들이 선거기간 어떤 공약을 내놓았는지 정밀 점검에 들어갔다. 대규모 사업은 주로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많이 내놓은 만큼 17개 광역시도 단체장 당선자들의 개발 공약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일단 지자체선거 공약 이행률이 저조하다는 여론이 거세 올해 당선된 단체장은 공약 제시 단계부터 재원마련 등 이행 가능한 공약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는 평가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공염불에 그치는 약속 불이행 관행을 뜯어고치기 위해 당선인 취임 후 60일 내에 공약 실현 가능 계획서를 만들도록 압박하는 방안 등을 내놓을 전망이다.

9일 각 지자체장 당선인 공약집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시내를 관통하는 경전철이 들어서고 동부간선도로.서부간선도로.제물포(국회)대로를 지하화해 상부에 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 같은 프로젝트는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내용들이다

먼저 서울은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의 용산 개발 여부가 이슈였으나 정 후보의 낙선으로 일단 용산 개발 재개는 어려워졌다. 더구나 토지주인 코레일과 시행사인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인 드림허브 측간 소송도 진행 중이라서 근시일 내 사업 재개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정 후보 같은 매머드급 개발 계획은 내놓지 않았으나 코엑스~잠실운동장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과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 수색역세권 개발 등 다채로운 서울 개발 복안을 약속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향후 4년 간 잠실권역과 서울역, 수색, 마곡 일대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가능성이 있다. 박 시장은 또 그간 논란이 된 서울 경전철사업에 대해 조기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전철 노선 일대의 부동산 시장도 힘을 받을 전망이다.

인구 유입 가속화·정치적 영향력 확대
수도권 교통망 개발·확충 공약 쏟아져


특히 수도권 신도시 지역의 교통 개발 공약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천 경제자유구역, 김포 한강신도시, 수원 광교신도시 등 신도시 일대는 인구 유입의 가속화로 정치적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편의시설 증대와 교통망 확충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가 이어지다보니 이를 주제로 한 공약이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자와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는 대체로 서울과의 접근성 개선에 무게를 둔 공약을 선보였다.

남 당선자는 김포~파주~포천~화도~양평 등 경기 북부 지역을 아우르는 제2순환고속도로 건설, GTX 조기 추진 및 일산 킨텍스~강남 삼성역을 잇는 GTX A노선을 파주 운정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수서발 KTX(수서~평택) 노선과 기존 경부선을 연결해 현 수원역을 KTX 출발 거점역으로 만들겠다는 생각도 내놨다. 역세권을 중심으로 한 개발도 덩달아 붐이 조성될 수 있어 이에 따른 부동산 개발과 물류 사업의 확대 등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경기 김포시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인구가 23만8000여명이었으나 작년 31만2000여명으로 31% 가량 인구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영록 김포시장 당선인은 김포지하철 조기개통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인천은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인구가 늘었다. 청라지구가 위치한 서구는 지난 2010년 40만8000여명에서 작년 49만여명으로 20% 가량 증가했다. 영종하늘도시가 있는 중구 인구도 9만2000여명에서 10만7000여명으로 16% 늘었고 송도신도시가 위치한 연수구도 27만9000여명에서 30만여명으로 8% 정도 증가했다.

현재 영종에서 분양 중인 ‘영종하늘도시 한라비발디’는 이러한 개발 공약 기대감이 작용하며 지난 3월 이후 계약률이 10% 이상 상승했다.

경기 파주시도 교하·운정신도시 등의 입주로 인해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파주시 인구는 지난 2010년 35만5000여명에서 작년 40만2000여명으로 13% 늘었다.

이재홍 파주시장 당선인은 시의 인구 증가와 함께 교통 숙원 사업으로 떠오른 파주 GTX 연장을 조기에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경기 수원시도 광교신도시 입주로 인구가 늘면서 교통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염태영 수원시장 당선인은 수원도시철도 1호선 트램(노면전차) 중심의 친환경·첨단 대중교통체계 구축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들 당선자들의 공약 이행이 빠른 속도로 실현될 경우 서울-경기-인천을 잇는 철도와 도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역세권 문화가 생성될 수도 있다.

한 건설전문가는 “인구가 증가하는 수도권 신도시 일대에서 교통여건 개선 공약이 쏟아지는 것은 후보들의 표심 확보와 지역주민간의 교통여건 개선 기대감이 맞물렸기 때문”이라며 “당선자들이 향후 이러한 교통망 확충 공약을 얼마나 실행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이지만 공약 자체는 이들 지역에 잠재적 개발 호재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충청권에서는 이춘희 세종시장 당선자가 국회 분원과 청와대 제2집무실을 설치하고 첨단기업과 대학, 병원 등을 유치해 세종특별자치시의 자족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정치권과의 협조가 필요하나 여야간 대타협 등이 이뤄질 경우 의외로 빨리 실현될 가능성도 있다. 또 권선택 대전시장 당선자는 옛 충남도청사 이전지 등 개발을 통한 도심 활성화, 도시철도 2호선 노면방식 개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시종 충북지사 당선자는 초·중·특수학교 친환경무상급식(4852억원)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전체 공약 소요 재원 11조691억원 중 89%에 해당하는 9조8977억원을 중앙정부에 의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충북도의 재정자립도는 34.2%에 불과하다.

영남권에서는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자가 대기업 3개, 중견기업 50개, 중소기업 300개 등을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구상을 밝혔고,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자는 신공항 유치, 신항 배후도시 조성, 에코델타시티 조성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재선에 성공한 홍준표 경남지사는 당선자 중 가장 많은 35조원이 소요되는 공약을 약속했다. 서부대발전(14조원), 남부내륙철도 조기 착공(6조6907억원), 함양~울산 고속도로 조기 완공(5조8862억원) 등 대규모 개발 사업이 즐비하다. 홍 지사도 전체 재원의 74%인 25조9325억원을 국비로 조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밖에 이낙연(전남) 김관용(경북) 최문순(강원) 당선자도 각각 20조원대 공약을 약속했다.

나라 살림을 챙기는 기획재정부는 한숨만 내쉬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 후에도 ‘3무1반’(무상교육·보육·급식, 반값 등록금) 후유증으로 국가 재정건전성이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 총지출 355조원 중에서 지방이전재원이 총 115조원에 이른다”며 “앞으로 4년 동안 100조원을 추가로 지원해달라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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