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
박수빈
 
 
달리던 버스와 구름과 여행자가 휴게소에 멈춘다 주변에 밤꽃들이 흐드러져 있다
 
화장실 바닥의 무늬 눈으로 차오르고
내 기다림의 줄을 잡고 낯선 목소리로 나를 흔드는 술 냄새
여우비가 다녀간 정원에서
귀퉁이를 끌어안고 살아온 날들이
두루마리 화장지에 얼룩으로 번진다
 
나도 나에게서 너무 멀리 와 있다
 
청소부가 쓰레기통을 비우고 다시 놓는 동안에도
어둠 가득한 상자
꽃물이 흐르는 사연은 울음을 삼킬 수 없다
 
일생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버스의 시간이라면
고인 눈물을 비우다가 그만 눈을 지워버린 것
탑승하지 못하는 것
 
그림자는 구석을 사랑하는지 그날의 안부를 돌아보는 일은 변기의
물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 하여 물 속 둥그런 방을 묻는 일, 여보
세요 부르면 뒤돌다가 내 얼굴인 그녀
 
귓전에 울리는 상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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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여행길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휴게소가 참 반갑다.
그 곳에다 속을 좀 비우고  나면 달리기가 수월하다.
살다보면 누구나 묻어버리고 싶은 사연이 있다.
때론 즐겁고 때론 지치고 힘 겨운 삶의 휴게소에 잠시 내려
 화장실에서 울음소리, 게워내는 소리, 말 못할 아픔에 문
걸어 잠그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화장실은 그런 의미에서 남성보다 여인네들에게
더 큰 위안소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나도 화장실에 봉인해 둔 아픔들을
돌아본다.
어쩌면 다 부질 없음이라고 물 내리는 소리가
일갈하는...

(최봄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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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빈 시인/
광주 출생,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활동,
<열린시학> 평론 등단, 시집 <청동울음>, 평론집 <스프링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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