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할인마트 무차별 할인공세 '재래상인 죽이기' 논란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실물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대형할인마트는 물론 백화점들도 경기침체의 거센 파고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재래시장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대형할인마트의 기세에 지역 상권이 초토화된 가운데 경기침체 마저 심화되면서 앞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일부 지역 재래시장은 백화점, 대형마트의 무차별 세일 속에 한숨짓고 있다. 대전지역의 경우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에 의해 주도되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연중무휴 할인전쟁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22개 재래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들의 악의적인 연중무휴 할인정책 때문에 재래시장 상인들이 다 고사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한 상인은 “벼랑 끝에 내몰린 상인들은 대전역의 노숙자가 되는 수밖에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시사주간지<사건의내막>은 대형할인마트들의 무한 할인전략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전의 재래시장 현장을 취재했다.

▲ 대전, 충청, 경상도 각지에서 쇼핑하러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던 이곳에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 브레이크뉴스

재래시장, “롯데마트의 할인정책은 우리 상권을 흡수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
롯데마트, “매출감소 해소하기 위한 자구책일 뿐, 재래시장 고려 상황 아냐”



경상도와 충청도를 잊는 교통의 요지 대진 중앙시장.

대전, 충청, 경상도 각지에서 쇼핑하러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던 이 곳이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지난달 25일 오후 3시 대전 중앙시장을 찾은 기자의 눈에 비친 시장의 중앙 거리는 30여분 동안 대략 30여명의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 한산했다. 거리 양 옆에 늘어선 상점들도 대체로 문을 걸어 잠갔고 국내 재래시장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리어카 좌판 상인들도 넓은 중앙시장 거리에 고작 한 두 사람만이 눈에 띌 정도였다.

대전 중앙시장 정문과 후문을 관통하는 4차선 도로 너비의 중앙거리는 원래 동네 골목길 보다 좁아 보일 만큼 북적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맴 돌 정도이다.

대전의 재래시장 고사 위기

충남 대전의 재래시장은 대전을 대표하는 중앙시장을 포함 역전 시장, 법동 시장, 인동시장, 대전도매시장, 산성시장, 문창시장 등 22개에 이른다.

이 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재래시장 상인들은 지난 9월 이후 하루 평균 매출이 이전에 비해 30% 이상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대전상인연합회의 석종훈 회장은 “재래시장 매출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 국가 경제의 총체적 불황이 일차적 원인”이라면서도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무차별 저가 가격할인 공세 때문에 기존에 재래시장을 찾던 손님들까지도 싹 거둬가고 있다”며 “현재는 배추, 생산, 계란 등 일용할 반찬 이외에는 말 그대로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전지역 재래시장의 유례없는 불황이 재래시장의 경쟁력 저하와 경기의 침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형유통업체의 무차별 할인 융단폭격 때문이라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산성시장의 한 상인은 “지난 10월 롯데백화점과 인근 지역 백화점들이 두 번에 걸쳐 보름간 기념 세일을 실시했고 이 기간 중 식료품 일부를 비롯한 특정 상품들은 재래시장의 가격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였다”고 말했다.

중앙시장의 한 상인은 “특히 롯데마트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세일할 품목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할인을 쉬지 않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그렇더라도 생선, 기초 식료품 등의 경우 우리의 제품이 더 신선하고 저렴하지만 마케팅과 힘의 차이에 의해 소비자들에게 왜곡되어지고 있다”고 롯데의 무차별적인 할인행사를 성토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 50대 한 할머니는 하루 총 매출이 대략 10만원도 안되며 어느 때는 1~2만원에 불과할 때도 있다며 울상 지었다.

이 할머니는 “예전에 우리에게 와서 물건을 사던 사람들 중 일부는 생선이 먹고 싶을 때는 생선류를 세일 행사 하는 대형마트를 쫒아 다니고 또는 아예 생선을 먹을 엄두를 내지도 않는다”며 “이 때문에 매상에 타격이 크다”고 했다.

중앙시장의 또 다른 상인은 “장사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나라의 경제사정 등 전체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 상황 속에서 그나마도 대형마트들의 전무후무한 불공정 할인행위로 인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롯데마트의 무한할인 경쟁

확인결과 연중 계속 할인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마트, 홈플러스 등 다른 대형마트들도 할인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이와 관련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들의 할인 경쟁은 지난 5월 홈플러스의 창고정리 세일에서 고객을 지키기 위해 시작됐다”며 “원래는 홈에버의 매각 완료 이후 할인 경쟁도 끝이 나야 했지만 경제위기의 한파로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할인 경쟁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22개 재래시장 상인들의 하루 매출, 이전 대비 30% 감소, 일부 적자
“롯데마트보다 품질 좋고 저렴해도 마케팅에 밀려 2급으로 인식되고 있어”



롯데마트의 경우 연중 할인 정책을 전국 매장에서 실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 매장에서 실시하는 오늘의 할인 전단지를 아예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었다.

특히 재래상인 및 시민들에 따르면 2곳의 롯데마트가 할인 품목, 기간 등이 중복되지 않도록 상호 조율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 대전 OO동에 사는 한 주부는 “롯데마트가 할인품목으로 지정한 물건값은 할인기간 동안은 재래시장과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싸다”며 “특히 얼마 전에는 삼겹살, 쌀, 고춧가루가 (재래)시장에서의 가격보다 저렴해서 필요할 경우 마트를 이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시장에서 고춧가루, 젓갈, 양념 등을 취급하는 한 상인은 “대형마트 측에서 전략적으로 일정기간 초저가 세일을 실시한다면 모를까 평상시 동등한 입장에서 상품의 질과 가격만을 가지고 경쟁한다면 최소한 김칫거리, 생선 등 식료품의 경우 우리 중앙시장이 롯데마트, 이마트보다 품질의 신선도, 가격 등 모든 면에서 더 좋다”면서도 “하지만 인테리어, 카트, 주차장 등 주변환경, 거대기업의 마케팅력 등에 밀리면서 상당수 소비자들은 정 반대로 인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재래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들의 무차별 저가 공세는 결국 재래시장 상권을 겨냥한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중앙시장의 한 소매상은 “물론 자기들(대형할인마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결국 재래시장으로 향하던 손님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우리도 살기위한 할인이다"

이에 대해 롯데는 강하게 부인했다.

대전 지역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불황 때문에 매출이 부진하다”며 “솔직히 오해도 받을 수 있고 속도 보이지만 부진해진 매출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이보다 더 많은 할인 경쟁도 마다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도 “재래시장의 매출이 얼마만큼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경기불황에 따른 매출감소 현상을 동일하게 겪고 있다”며 “재래상권 장악이나 상생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인데 지금은 심각한 매출감소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재래시장 "뭉쳐야 산다"

롯데마트를 포함한 대형마트들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중앙시장의 한 상인은 “소비자들 중 경제위기에 별 상관이 없는 부유층들은 원래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고객이었다. 그런데 대형마트의 할인 경쟁으로 재래시장을 이용한 서민들마저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롯데 측의 입장에 강한 불쾌감을 토로했다.

▲ 대전상인연합회의 대형마트 입점에 대한 항의 공문.     ©브레이크뉴스
그는 이어 “특히나 경제 한파로 소비자들의 원래부터 지갑을 닫고 있는 현실에서 대형마트라는 소비자 블랙홀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더욱 을씨년스러워 졌다”고 대형할인마트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대전의 재래시장 소매상들이 점차 단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전상인연합회 석종훈 회장은 “재래시장, 특히 대전중앙시장은 원래의 위상과 제품력 등에서 롯데마트 등에 밀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상인들의 느슨한 연합에 불과한 재래상인들과 CEO 아래 일사분란한 조직을 가지고 있는 대형마트의 차이에서 오는 의사결정의 속도와 투입할 수 있는 자본의 규모에서 오는 마케팅력의 차이와 카트, 주차장, 깔끔한 인테리어 등 주변환경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앙시장에서는 생선 및 건어물 취급상을 비롯한 일부 종목의 상인들이 계를 구성해 공동구매에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 건어물 상인의 계주를 맞고 있는 A씨는 “현재 30명의 상인들이 계원으로 가입돼 있으며 이 중 10여 곳 씩 돌아가면서 물건을 구매한 후 시장에서 계원들에게 분배하고 있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계를 구성해서 공동구매를 한 이후 매입 원가가 20%가량 떨어졌으며 품질도 더 좋아졌다고 한다. 그는 “이제 산지에서 우리들은 신세계, 롯데마트 등 대형구매자들과 같은 귀빈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지역 재래상인들의 연합전략이 거대 대형할인마트와의 전쟁에서 어떠한 결과를 도출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e중앙뉴스 기사제휴사=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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