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낮달이 허락도 없이" 펴낸 이서화 시인

사진 제공 / 이서화 시인
사진 제공 / 이서화 시인

 

배추밭

이서화

 

배추밭을 지나면 곤충 사육장이 있다

예전엔 동네에서 가장 낡은 집이었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세상의 설명이

붙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계절이 있다

배추밭 위를 날아다니는 곤충

원을 그리듯 날다

낡은 집 쪽으로 사라졌었다

 

집 없는 존재들은 모두 객사하는 것일까

혼자 사는 노인이 죽은 지난봄은

딱히 마음에서도 별일이 없었다

별일을 숨기는 봄이 지나갔었다

그 후 마을엔 곤충들이 부쩍 늘어났다

생전 처음 보는

모두 조용한 곤충이었다

 

죽음을 가만 놔두면 다 날아간다

죽은 사람은 날아가고

무거웠던 것들만 남는다

죽음은 꿈이 많다

 

봄에 죽어 여름에 노인을 묻었다

배추밭 근처였고 배추밭은

마을에서 가장 추운 밭이다

어느 계절은 설명할 수가 없다

 

- 이서화 시집 『낮달이 허락도 없이』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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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의 끄트머리에서 뉴스를 시청한다. 시절이 각박하다 해도 어느 집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덕담도 나누는 모습들과 함께 귀성길의 혼잡함 역시 보여준다. 이 뿐이면 좋으랴마는 역시나 아타깝고 슬픈 소식들도 등장한다. 이 명절에 사고를 당한 이들, 평소보다 더 한기를 느껴야하는 이들, 그리고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해 제 삼자의 눈에 뒤늦게 발견된 이들... 고독사가 이젠 뉴스거리도 아닌 시대에 우리가 산다. 언젠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맞이해야하는 죽음이지만 그 죽음조차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차별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 세상의 모순된 이치인가 싶다.

위 시에서 화자는 홀로 스러진 어느 노인의 고독사를 담담히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참으로 가슴 후비는 행간마다의 아린 참담함이 절절하다. 명절과 함께 즐거운 일만 생각하고 싶었으나 생의 마지막 길목에서조차 홀로여야 하는, 이면을 사는 어떤 이들을 굳이 가슴에 새겨보게 만드는 시 한 수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세상에 환영받지 못할 고귀하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으랴! 가난하고 쓸쓸한 삶을 고달프게 살아야 하는 이웃들을 살피며 나누는 이들에게 복이 있으라! 그들에게 무한한 행운과 평안이 넘치기를 빌며...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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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화 시인 /

영월 출생

상지영서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8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시집 『굴절을 읽다』 『낮달이 허락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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