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단체의 담합행위인가, 네트워크치과의 이단행위인가
이익단체의 담합행위인가, 네트워크치과의 이단행위인가
  • 김성래 칼럼
  • 승인 2011.07.07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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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단체에서 행하여지는 비방과 비판과 폭언은 결국 ‘진료비 담합행위’에 동조하지 않은 일부 의료기관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치과의 나쁜 이미지 중 하나로 ‘비싼 진료비’라는 각인을 만들어 왔다. 경제적 부담을 고통과 맞바꿔야 하는 서민들이 증가하는 가운데에도 오직 자기들 뱃속만 불리는 행위가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나?

빠르게 변화되는 현대문명 속에 다양해진 환자의 요구수준의 눈높이를 맞추질 못하여 외면 받는 현 상황을 기득권과 적색선동으로 무마할 순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그들만의 논리에 ‘의료’라는 일반 서민들이 익숙하지 않고, 침범할 수 없는 그들만의 절대특권영역으로 ‘대오벽(大誤擘)’을 만들어 논의되어야 하는 ‘건전한 논질’ 자체를 흐트려 놓으며 환자로 하여금 거부할 수 없는 일방적인 ‘절대선택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담합행위를 목적에 둔 위선행위이며 국가 의료복지정책에 스스로 반하는 ‘반국민적 행위’이다.

개정된 복지부령은 비급여 진료항목 대하여 의료기관 스스로 자율적으로 진료비를 책정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자율성’을 부여했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이익단체가 거짓된 명분을 앞세워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받기 위해 발효된 의료법을 전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시각에서나 국가의 시각에서는 분명 이단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표단체가 수장이 되어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진료비 담합행위’를 선동하는 일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의료라는 특수한 영역의 공공재라는 당위성을 앞세워 국민의 선택권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오만적 정책선동은 분명 국민들에게 외면 받아 마땅하고, 또 심판 받아야 할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은 치과에 대하여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나? 이익단체는 단 한번이라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치과진료비’에 대한 만족도조사를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 치과진료비에 대한 국민적 불만은 상당히 높다. “치과의 불필요한 이익에는 진료비담합행위가 존재한다”라는 어느 시민단체의 외침처럼 국민들 인식에서 치과는 비싸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각인된 것 같다.

돈이 없는 서민들은 치과치료를 포기해야 하나?
돈이 없는 서민들은 치과치료 받을 권리마저 박탈당해야 하나?
돈이 없는 사람들은 치통으로 고통 받아도 그냥 참아야 하나?
이런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이런 환자들이 갈 수 없을 만큼의 높은 문턱(고수가)을 만들어 놓은 것은 어떤 의미인가?
환자를 가려 받겠다는 것인가?
환자가 자신의 처지에 맞는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나쁘고 옳다고 말할 수 있나?

답해보라. 거짓과 컨닝 페이퍼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람의 마음속에서 인격체라는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는 진실된 인성의 목소리로 내보라. 돈 없는 서민이 치료 못 받을 정도의 고가의 진료비라면 그것이 ‘의료의 질’의 최고라 한들 그림에 떡 아니겠는가? 수가의 정책은 의료기관 개별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 존중의 바탕은 지역기반의 사회적 수준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덤핑치과’란 말은 비하한다는 발언인가, 담합을 조장하는 발언인가? 당신들이 한 말에는 분명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인지하길 바란다.

그들 시각에선 우리가 ‘이단’, 국민들 시각에선 그들이 ‘이단’

국내 치과계의 발전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현 시대변화의 흐름에 목소리를 귀 기울여라.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의료의 다양성이다. 이 다양성은 분명 개성으로 또는 브랜드로 발전될 것이다. 그 다양성 중의 일부가 ‘유디치과’이다 이런 흐름에 두려워하지 말라. 당황해 하지 말고 담담히 받아들여라. 그것이 당신들이 알지 못한 또 다른 치과계의 발전모습인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이고 내 말이 진리인양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아직도 잔재는 남아 있지만 점점 그런 구시대적 발상과 행태는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유디치과’의 탄생은 환자가 원하는 다양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의도 아닌, 타의도 아닌 시대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논리인 수요와 공급이 그 주배경이 된다. 의료소비자인 ‘환자’는 끊임없이 요구를 했고, 우리는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연구와 노력을 거듭하여 이 시대 환자들의 원하는 ‘의료소비코드’를 알았으며, 우리는 이를 적극적으로 의료경영에 활용하여 지금의 100개가 넘는 ‘네트워크형치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노력 하나 하지 않고, 열매를 따려는 생각 그 자체가 문제이다. 그것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하는 ‘인심(人心)’의 기본부터가 미달이다. 일하지 않고 밥만 먹으려 하나? 절대 줄 수 없다. 그것은 꼭 우리가 아니라 해도 다른 어떤 이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치이다.

유디치과는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신들의 기득권에 불만을 품은 수많은 ‘환자’들이 지금의 유디치과를 만들어 준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생각지도 않았던 입 소문이 마케팅이 되어 광고 하나 하지 않았는데도 병원 운영은 어렵지 않았다. 그 입 소문의 근원이 바로 “어디보다 싸고 잘하더라”라는 식의 치과를 비교하며 선택하는 것이었다.이것이 과거와 다른 스마트하게 발전된 현 시대의 환자 즉! 의료소비자 모습이다.

이제 그들은 의료를 비교하며 선택할 수 있는 시야와 정보가 생겼다. 의료소비에 목말라 있었던 국민들이 이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소리가 들리는가? 들리는데 귀를 막은 거라면 그 막은 손 이제 놓아주길 바란다. 만약 들리지 않는다면, 들을 수 없다면 이미 당신들은 귀가 먹은 것이다. 눈이 먼 것이다. 바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사리사욕에 철저히 갇히게 된 것이다.

비주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신들이 누리고 있는 주류사회는 없었을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른 이면성을 존중하는 것이 기득권을 가진 당신들이 취해야 할 최소한의 아량 아니였던가? 의료라는 영역에서 새 바람이 불 것이다. 그것이 흐름이다.

의료법이 존재하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바램을 빗겨갈 순 없다. 보고만 있지 말고 지금이라도 뛰어야 할 것이다. 국민 위의 군림하는 ‘베짱이’가 되지 말고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일개미’가 되길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료계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하는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다.

글 / 김성래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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