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국제학술대회
아리랑국제학술대회
  • 박광원 기자
  • 승인 2011.12.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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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은 아리랑국제학술대회를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공동주최와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12월14일(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대강당에서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최의 목적과 취지는 아리랑이 이 땅, 이 민족의 심성 속에 녹아들어 있는 요소 중 하나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아리랑을 모두 다 알고 있고, 또 음악적 능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리랑을 노래할 줄 안다.

아리랑이 한국인의 마음과 일상생활, 문화현장에 녹아든 사례는 한 둘이 아니다. 한국의 음악 · 문학 · 언론 · 연극 · 영화 · 잡지 ·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연속 방송극 등등에 아리랑이 녹아 든 모양은 실로 다양하였고, 한 때 이 땅의 애연가들이 즐긴 최고의 담배도 아리랑의 이름으로 회자될 정도로 아리랑은 한국인의 마음, 그리고 일상생활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공통분모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아리랑에 대해 이웃 나라를 비롯한 세계 이곳저곳에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다. 그러나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아리랑은 이 땅의 우리들에 의해 태어나 우리에 의해서 오늘로 이어옴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서구적인 교육내용과 방법으로 훈련되어 온 오늘날의 한국인은 한국적인 문화와 그에 대한 인식의 세계를 잊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정 속에서 우리문화의 제반 사항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자연히 소멸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문화에 대한 문화적 주권 의식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이 오늘의 사정이다.

우리문화에 대한 주권의식이 이와 같이 쇠락의 길을 걷는다면, 진정한 문화국가로서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극복하려면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문화적 공통분모를 찾아내어 우리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제고하며 동시에 문화적 주권의식을 높이려는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대표적 문화적 공통분모 중 하나인 아리랑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통해서 우리문화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을 제고시키고, 우리의 문화주권을 확립하려함이 이 대회의 주목적이 된다.

서양 문화가 홍수를 이루는 오늘에 바로 이러한 아리랑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보아 우리들의 관심을 제고하며, 동시에 문화적 주권의식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우리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방안의 하나를 강구하고 제시해 보는 일은 적시적절하고도 필요한 일임에 분명하다.

물론 이와 같은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 의한 종합적 아리랑 탐구를 통해 한국문화를 심층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한 방안을 세계의 여러 학자가 한 자리에서 논의해 아리랑이 지닌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자리메김해 보는 일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는 일의 하나가 되면서 아울러 이는 세계로의 한국문화 확산에 공헌하는 일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리랑을 다양한 문화적 관점에 기초한 논의를 통하여 살펴보아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우리의 문화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한국 문화 속의 아리랑’의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자 한다. 세계의 여러 학자가 한 자리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깊은 토론을 통해 아리랑을 살펴보는 일은 아리랑을 보다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끌고 가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기조발표자는 조동일(서울대 명예교수)와 국내 발제자 이보형(고음반연구회), 김영운(한양대), 민은기(서울대), 강 등학(강릉원주대), 김익두(전북대), 박애경(연세대), 정팔용 (평양민속예술단), 김보희(한양대) 해외 발제자: 장익선(연변대, 중국), 우에무라 유키오(동경예술대, 일본), 왕인펀(대만대, 대만), 트란 콩 하이(국립과학원, 프랑스), 이병원(하와이대, 미국), 사이몬 밀스(더람대, 영국), 진 키 둘라(미국 조지아대, 케냐) 등이 발표 발제자로 나선다.

아리랑의 기원과 전파 /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 한국)

한국에 전승되는 ‘아리랑’이라는 민요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민요일 뿐 아니라 많은 유형이 있고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리랑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 아리랑의 근원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동안 주로 아리랑 용어의 어의적 의미와 근원을 푸는데 매달려 그 근원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 동안 한국에 전승되는 아리랑에는 수십 종이 있지만 문화적 특성과 사회적 기능이 여러 가지로 다르다는데 착안하여 아리랑의 이런 특성을 분석하여 아리랑의 군원문제를 풀었다. 그 결과는 한국 동부지역인 강원도 전 지역에 노동요로 전승되는 아리랑이 근원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음악특성이나 문화적 특성으로 봐서 강원도 동부지역에 모심기 노동요로 전승되는 아리랑인 ‘자진아라리’가 근원되는 것이고 이것이 강원도 서부지역에 전승되는 모심기소리인 ‘긴아라리’로 변이되어 파생되었고, 긴아라리에서 엮음아리랑(정선아리랑)이 파생되었고 이것들이 문화 변동으로 대중화되어 통속적으로 불러지면서 자진아리랑(강원도 아리랑)으로, 긴아리랑이 정선아리랑으로 전이되었다,

조선 말기에 궁궐중수에 동원된 강원도 장정들에 의하여 강원도 긴아리랑이 서울에 전파되었고 이것을 서울 민요 양식으로 고정되어 서울 긴아리랑이 생성되었고 서울이 근대화되면서 대중의 기호에 맞게 변이되어 구조‘ 아리랑이 되었고 이것이 일제 강점기에 나운규가 일련의 아리랑 영화를 제작하면서 편곡된 것이 이른바 ‘본조 아리랑’인데 그 음악성이 세계에 보편성을 지니어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한편 긴아라리가 변이되어 ‘아롱타령(해주아리랑)이 되었고 여기에서 밀양아리랑이 파생되었다. 한편 아리랑들이 한국의 남부에서 전파되어 남도아리랑이 파생되었고 이것을 편곡하여 진도 아리랑이 파생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이것들을 소재로 각 지역에 수많은 아리랑이 생성되었고 지금은 이런 아리랑을 소재로 아리랑 축제를 벌이고 있다.

전통음악 입장에서 바라 본 아리랑 / 김영운(한양대, 한국)

강원도 산간지방의 향토민요 <자진아라리>와 <긴아라리>, <엮음아라리>에서 비롯된 아리랑계 악곡은 서울·경기지방에 전해져 <구조아리랑>이 되었고, <영화아리랑(본조아리랑)>이 되었으며, 민요명창들에 의하여 매우 기교적인 <긴아리랑>을 낳았다. 그리고 영남지방의 <밀양아리랑>과 호남지방의 <진도아리랑>은 지역적인 연고를 강하게 지닌 채 전승되고 있다. 이 중 아리랑계 악곡을 대표하는 <본조아리랑>은 그 음악적인 특성, 즉 음악어법 면에서는 전통음악과 분명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전문적인 전통음악 연주자들은 이 곡을 자신들의 음악성이나 음악적인 기교를 드러내는 중요한 악곡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통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아리랑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는 <아리랑>이 지니고 있는 대중적인 지명도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고 있는 작곡가나 연주자들 역시 전통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편으로 아리랑계 악곡을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악곡이 지니고 있는 음악적 발전가능성과 강하게 형성된 지역 연고, ‘겨레의 노래’라는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 등이 서양악기나 전자악기의 사용, 대중음악적인 연주형태 등 전통음악 입장에서는 다소 부정적일 수 있는 퓨전음악에 전통성을 부여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랑(특히 <본조아리랑>)은 본래 향토민요나 통속민요가 아니라 영화음악으로서 20세기 전반기의 특수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탄생한 음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확산을 통하여 단시간에 ‘대중성’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대중적인 힘은 결국 전통 음악인으로 하여금 아리랑을 민요의 하나로 받아들이게 하였고,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았다 이제 아리랑은 전통음악과 대중을 연결하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강한 고리가 되었다.

현대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는 <아리랑>/ 민은기(서울대, 한국)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설움과 한을 담아낸 가장 대표적인 민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리랑>이 과거에 아무리 오래 동안 우리 민족의 정서와 맥을 같이 해왔다고 해도, 현재에도 똑 같은 무게로 우리 문화 속에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미래에도 그렇게 남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더욱 어렵다. 시대가 변하면 음악도 변한다. 따라서 만약 어떤 음악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되려면 그 음악이 변해야 한다. <아리랑>도 예외일 수는 없다.

<아리랑> 역시 현재의 언어로 다시 노래될 때에만 현재의 우리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아리랑>의 현대화’ 그리고 나아가 ‘<아리랑>의 세계화’라는 현재 작곡가들이 풀어야 할 과제에 관한 논의이다. 지금까지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작곡한 창작곡들 중에 대표적인 작품들을 예로 들어서, <아리랑>이 현재를 넘어 미래의 음악이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논하고자 한다.

아리랑의 부류별 국면과 문화형질의 전승맥락/ 강등학(강릉원주대, 한국)

아리랑은 본디 강원도와 그 인근지역의 향토민요로서 나무하기, 나물뜯기, 모심기, 논매기, 밭매기, 삼삼기 등과 같이 산과 들, 그리고 집안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할 때, 그리고 여럿이 어울려 놀거나 혼자 있어 무료할 때 부르던 노래이다. 다시 말하면, 아리랑은 향촌사회의 일반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흔히 부르는, 특별하지 않은 노래인 것이다.

유랑예인집단인 사당패는 이러한 노래 중 <아라리>를 가져다 자신들의 음악어법으로 변화시키며 도시와 지방 서민들의 유흥문화에 알맞도록 재생산했다. 이로써 통속민요 아리랑이 출현하게 되었다. <아리랑타령>, 곧 <자진아리랑>이 그것이다. 이후 경복궁 중건 시 예능의 소비가 증폭되면서 <자진아리랑>은 여러 다른 통속민요와 함께 유통되었다. 그리고 <자진아리랑>은 그 중에 가장 인기있는 노래가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자진아리랑>은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계층과 지역에 관계없이 가장 호응이 큰, 곧 당대의 대표적인 노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자진아리랑>의 이같은 인기가 동력이 되어 새로운 통속민요 아리랑이 여럿 생겨나고, 1926년 영화 아리랑이 제작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영화 아리랑은 그 주제가를 <자진아리랑>을 리메이크하여 썼다. 그리고 영화가 크게 성공하자 그 주제가 또한 붐을 일으켜 당시 민족성원 모두의 노래가 되면서 통속민요 아리랑의 하나로 기능할 수 있었다. <본조아리랑>이 그것이다. 또한 <본조아리랑>이 일으킨 붐이 새로운 동력이 되어 1930년대부터는 대중가요 아리랑이 창작되어 이러한 흐름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아리랑의 역사전 전개에 핵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노래는 <아라리>, <자진아리랑>, <본조아리랑> 등 세 가지이다. <아라리>는 향토민요 아리랑의 대표적 존재로서 <자진아리랑>의 모태가 되었고, <자진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의 모태가 되면서, 동시에 <본조아리랑>을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본조아리링>은 아리랑의 문화적 힘을 생성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에너지로 기능해 오고 있다.

그런데 <본조아리랑>의 문화적 힘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억압 속에 살아가는 민족성원들이 그들의 정서를 이 노래에 담아내면서 생성되었다. <본조아리랑>이 약자의 언론도구로서 기능하면서 민족성원 공유의 표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라리>는 전통사회의 계급적 약자인 민중의 노래이며, 그 중 성적 약자이기도 한 여성이 보다 즐겨 부르던 노래이다. 그러므로 <아라리>와 <본조아리랑>이 공동으로 지니고 있는 약자의 언론도구라는 속성은 아리랑의 가장 본원적인 형질에 해당한다.

삶의 어려움이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려움을 말하고, 또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문화적 기능의 수요 또한 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어려운 자들을 위한 문화, 그리고 어려운자들의 문화로서 계속 유효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말할 수 있다.

현대문학에 나타난 ‘아리랑’김익두(전북대, 한국)

현대문학에 나타난 ‘아리랑’은 크게 다음과 같이 3가지의 경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아리랑’이 단순한 인용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아리랑’이 그 작품에서 주제 형성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단지 작품의 전개에 필요한 소재에 불과한 경우가 되겠다.

둘째, ‘아리랑’이 명시적으로 주제와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아리랑’이 주제의 형성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작품의 주제와 어느 정도 연관이 되는 경우이다. 나도향의 수필 「그믐달」과 같은 것이 그 사례이다.

셋째, ‘아리랑’이 암시적으로 작품의 주제로 내면화된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아리랑’이 작품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자주 거론되는 않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보면 ‘아리랑’의 의미를 암시적 ․ 상징적 ․ 내포적으로 작품의 주제로 구현시키는 경우이다. 물론, 아리랑의 주제는 작가에 따라 다르게 재해석됨은 물론이다. 이러한 방향에서의 ‘아리랑’의 작품화 경향은 대체로 5가지의 방향성을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리랑’ 본래의 기본적인 내포적 의미인 ‘한’ 혹은 ‘정한’의 정서 ․ 의미를 계승적으로 재창조 하는 방향이다. 예컨대, 향토적인 작가 한승원의 『아리랑 별곡』, 시에서의 박재삼의 『춘향이 마음』과 같은 시집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 중의 하나이다.

‘아리랑’이 수난의 민족사를 표현하는 일종의 상징적인 메타포로 나아가는 사례도 있어 주목된다. 이런 계통의 ‘아리랑’의 적절한 사례들로는,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박승희의 희곡 『아리랑 고개』(1929), 조정래의 장편 대하소설 『아리랑』(1994) 등이 있다.

‘아리랑’이 부정적인 방향에서 다루어지는 사례도 있다. 즉, ‘아리랑’이 극복되어야만할 우리 민족의 부정적 신화로 비판되는 경우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로는, 일제강점기 산문(전기)의 대표적인 저술 중의 하나인, 님 웨일즈의 『아리랑』(1937), 현기영의 단편소설 「아리랑」, 이청준의 단편소설 「해변 아리랑」(1985) 등이 있다.

좀 더 나아가, ‘아리랑’이 사회적 ․ 저항적 대안의 해방구를 암시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이문열의 단편소설 「구로 아리랑」(1987)의 경우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문학에서의 ‘아리랑’은 어떤 경우에는 대중적 ․ 세속적 삶의 세계를 표상하는 상징으로 주제화되는 경우도 보인다. 예컨대, 방인근의 애정소설 『아리랑』(진문출판사, 1965)에서는 ‘아리랑’이 세속적 애정 행각의 세태를 암시하는 주제어로 부각되고 있다.

아리랑과 K-Pop: 아리랑의 월드뮤직으로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박애경(연세대, 한국))

아리랑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로 알려져 왔다. 민족의 수난, 애환, 환희의 순간을 함께 해온 아리랑은 일개 노래를 넘어선 민족적 상징일 뿐 아니라, 현재에도 끊임없이 대중문화 각 영역으로 확장하여, 영감을 주고 있는 ‘진행형’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대중문화 영역에서 아리랑의 영향력은 <아리랑>을 다양한 장르로 재해석한 대중가요, <아리랑>을 제명으로 하거나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대중예술 텍스트로 증명되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대중문화에 수용되거나, 대중문화에 영감을 준 ‘아리랑’ 현상을 짚어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한류와 K-pop의 부상을 짚어보고, K-pop과 <아리랑>과의 관계를 성찰하려 한다.

K-pop이란 한국의 음악산업 및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되고 아시아 및 그 외부에서 소비되는 대중음악 및 그와 관련된 문화적 실천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드러나듯, K-pop이란 ‘세계로 발신하는’ 한국의 대중음악을 지칭한다. K-pop이라는 명명이 등장하기 전에는 한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대중음악은 ‘가요’라는 말로 불려졌다.

가요에서 K-pop으로의 전환은 일국 내에서 통용되던 대중음악이 지구화시대에 부응하여, 장르적 증식 혹은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국가 기관과 민간단체에서는 아리랑을 국가 브랜드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세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역시 아리랑의 장르적 증식과 전환을 전제하고 있다. 두 갈래로 움직임은 ‘한류’라는 지붕 아래 극적으로 만난기도 한다. K-pop스타들이 총출연한 10월의 ‘한류 드림 콘서트’, 7월 아테네 스페셜 올림픽 폐막식의 원더걸즈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아리랑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한류 팬들은 파리 중심부 퐁피두 광장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플래시몹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는 ‘한류와 함께 하는 아리랑’이라는 현상에 주목하여, 아리랑의 ‘대중문화로의 전환 가능성’과 ‘세계로의 발신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범주와 기원의 문제가 발생한다. 애초에 대중들의 오락으로 출발한 가요가 문화산업의 증대와 초국가적 문화소비에 힘입어 K-pop으로 전환하고, 이것이 한류의 중심이 되는 것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수순이지만, 아리랑은 민요에서 출발한 만큼 한국 혹은 한국 내 특정 지역의 지역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 단계 한국 음악 지형도에서 민요는 국가적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국악’의 일부로 보존과 예우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아리랑의 대중문화화, 세계화는 국악의 대중문화화, 세계화와 분리될 수 없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화산업 뿐 아니라, 관의 의도가 강하게 개입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아리랑의 대중문화화, 세계화 흐름을 고찰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탐색하기 위해, ‘월드뮤직’이라는 개념을 추가로 도입하려 한다. 월드뮤직은 앵글로 아메리칸의 음악, 즉 영․미의 팝 음악을 제외한 전 세계 음악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이 부가된다. 즉 자국의 민속음악에 뿌리를 두어 자국의 문화적 전통을 반영하면서도 상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월드뮤직이란 ‘대중과 소통 가능하고 상업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음악으로 민속음악의 전통을 반영한 음악’이라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함께 제작한 아리랑 기획음반은 ‘월드뮤직으로서의 아리랑’이란 지점을 겨냥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 흐름, 즉 한류 속의 아리랑과 아리랑의 월드뮤직화 현상을 고찰하여, 현 단계 대중문화 내에서 아리랑의 위상을 성찰하고자 한다.

북한의 아리랑 정팔용(사단법인 탈북예술인 단체 총연합회 · 평양민속예술단) 예명 주명신

북한에서도 아리랑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아리랑을 순수한 음악적인 입장보다는 사회주의에 알맞은 정치 이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20여 종의 북한 아리랑 중 잘 불리어지고 있는 아리랑은 ‘본조아리랑’ ․ ‘영천아리랑’ ․ ‘밀양아리랑’ ․ ‘진도아리랑’ ․ ‘서도아리랑’이고, ‘강성부흥 아리랑’과 ‘통일아리랑’은 2000년대 이후 북한의 체제를 위한 선군정치를 찬양하고 자주통일을 노래할 목적으로 새로 만들어진 아리랑이다. 이러한 북한의 아리랑은 서도민요를 바탕으로 한 주체발성법으로 부드럽고 유순하면서도 맑게 불리고 있다.

북한에서 아리랑을 활용하여 만든 많은 곡 중에서 최성환 작곡의 배합관현악을 위한 아리랑이 가장 대표적인 곡 중 하나이다. 북한이 자랑하는 대 집단체조 ‘아리랑’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앞으로 북한은 아리랑을 정치 이념적인 체제선전과 적화통일의 도구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1950년대 이후 아리랑에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게 된 이유는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에 담긴 강한 저항성 때문이고, 북한은 이러한 아리랑을 사회주의 사실주의 문화이론의 중심에 두려고 한다. 북한은 일제강점기에 사라져가던 민족의 혼을 일깨워 준 음악이 아리랑이라고 평가하면서 아리랑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리랑이 남북단일팀의 공식 단가로 지정된 이후 북한은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로 공인하며 남북교류의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실마리의 하나로 잘 활용하였다.

중국에서의 “아리랑”이 지닌 상징성 장익선(연변대, 중국)

“아리랑”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地域)에서 살고 있는 한민족이 공통(共通)으로 부르는 “민요”이다. 역사가 흐르고 세월이 흐르는 속에서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그 이상의 함의(含意)를 담고 있다고 본다. 그 속에는 민족의 얼과 넋이 스며있고 이는 또한 우리민족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리랑”하면 사람들의 머리에는 민요가 상기되고 아울러 조선민족의 정체(整體)가 떠오른다. 민요가 상기되는 것은 역사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리랑”유의 민요와 가요들이고 또한 갈수록 더욱 다종다양(多種多樣)해지고 있는 그 변화 및 새로운 형태이고, 그가 담고 있는 함의(含意)는 단순한 민요 혹은 가요가 아니다.

이러한 민요와 가요들을 부르면서 우리민족을 생각하게 되고 아울러 그 민족의 역사(歷史), 문화(文化), 예술(藝術) 및 기타 여러 면의 많은 문화들을 생각하게 되고, 또한 상기(想起)하게 된다. 이러한 면들로부터 볼 때 “아리랑”과 그 유형의 민요와 가곡들은 단순한 민요나 가곡을 초월하였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영향들이 민요나 가곡의 예술적인 차원을 넘어 다른 영역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아리랑”유의 민요나 가곡이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문화라고 하는 원인(原因)은 “아리랑”유의 민요와 가곡은 원초적(原初的)인 차원을 초월하여 더욱 넓은 범위에서의 함의와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그 상징성에 대해서 더욱 포괄적이고도 넓은 영역에서 살펴보고,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점들을 살펴보려는 것이 본문의 취지이다.

민족의 미래(未來)와 먼 장래(將來)를 위해서 이러한 문화적인 것들을 좀 더 넓게 선전(宣傳)하고 좀 더 깊게 연구하였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 민족의 학자(學者), 교수(敎授), 예술계에 종사(從事)하는 분들을 서로간이 소통할 수 있는 “우리민족 아리랑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민족의 진면모를 찾고 그것을 후세(後世)에 정확하게 전했으면 한다. 이는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현재를 투철(透徹)하게 인식하고 미래를 정확하게 파악(把握)하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면에서 더욱 올바른 길로 향할 수 있고 이로부터 민족이 더욱 단합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세계에 있는 우리민족들에게 민족역사와 그 맥락(脈絡)을 살펴보고 더욱 정확하게 전(傳)하는데 거대(巨大)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아시아 고려인과 북한동포 아리랑 / 김보희(한양대, 한국)

한인 디아스포라의 아리랑은 노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역사적 현실의 변화와 이산에 의한 환경의 변화를 <아리랑>노래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해외 한민족 중 연해주와 북만주에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자들이 한인동포들에게 민족교육을 할 때 노래는 정신적인 무기와도 같은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927년 나운규의 영화주제가 <아리랑>노래에서 일제강점기에 고통을 받던 한민족의 ‘애국의 혼’을 불러일으켰다.

본 논문은 해외 디아스포라 아리랑의 음악 채록현황을 조사하여, 채록된 노래 레퍼토리와 선율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구소련에 거주한 고려인들과 중국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들은 북한 아리랑의 영항을 많이 받았다. 북한에서 1950년대에 채록된 50여종의 아리랑 중에 필자는 약 10곡의 아리랑을 고려인으로부터 채록하였고, 그 외에 변종된 구형의 아리랑과 새롭게 창작되거나 가사를 바꾼 아리랑이 지역적인 특성을 갖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나운규의 영화주제곡 <아리랑>은 북간도 출신인 나운규의 음악환경을 미루어 보아 구 아리랑인 <아르렁>(1896년 채보)과 <아리랑타령>(1914년 채록)의 선율을 차용하여 새로 재구성되었음을 밝혀내었다. 이는 나운규의 영화주제곡 <아리랑>이 <평양아리랑> 또는 <아리랑 타령>에서 파생된 곡으로 경기민요나 강원도민요와는 음악적으로 뿌리가 다르다는 것을 필자는 주장하게 되었다. 나운규의 영화주제곡 <아리랑>은 3/4박자로 채록된 민요풍의 창작가요이다. 서양음악의 영향으로 종지음이 (도)음으로 바뀌었다.

고려인들은 19세기 말 <어랑타령> 계통의 운율과 사랑을 노래하는 세속적이고 서정적인 가사를 가진 <아리랑>을 바탕으로 1919년 삼일운동 이후에 항일정신을 표출하는 노래가사를 담은 영화주제가 <아리랑>이 영화와 음반을 통해 대중에게 전파되면서 한민족에게 <아리랑>노래는 기표가 된 것이다.

함경도 <어랑타령> 계통의 운율을 가진 <아러렁>은 <강원도 아리랑>으로 변이되어 전승되었다. 강원도지역의 아리랑과 함경도 지역의 <어랑타령 계통>의 <아리랑>에 관한 음악적 연구가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경상도의 대표적인 <밀양아리랑>은 <단천아리랑>과 <함경도아리랑>의 영향을 받아 <밀양아리랑>이 생겨났음을 본 연구를 통해 추정 할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서 북한에서 채록된 <영천아리랑>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 다시 재조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영천아리랑>은 경상도 아리랑인가? 라는 의구심이 났다. <영천아리랑>의 선율구조는 (Mi-La-do-re-mi)로 거의 <진도아리랑>에 영향을 준 <초동아리랑>, <초한가>로 불린 곡들로부터 파생된 신민요로 진도의 대금 명인인 박종기가 기존의 선율에 편작곡을 한 것이라고 한다. 메나리토리는 전라도와 강원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운율이다. 5/8박자 엇모리 리듬을 사용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전라도 지역 육자배기와 무가의 영향을 받은 노래로 볼 수 있다. 가사를 살펴보면 <순천아리랑>(아라린가 지랄인가 용천인가)의 후렴구과 같으므로 전라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순천아리랑>의 후렴구를 북한에서 저속하다는 이유로 용천을 영천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점을 제기한다.

앞으로 음악적인 분석을 더욱 정밀하게 하여 아리랑의 선율구조에 계통별 연구를 해야 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부르던 <아리랑>의 후렴구의 종결가사(배띄어라-노다가세)는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에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가사로 바뀐다. 이 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19세기 말, <아리랑>노래는 주로 기생들이나 통속가요를 부르는 전문가수가 부르는 서정가요로 시작되어 20세기 초 창가의 영향으로 노래가 단순하게 변화되고, 1930년 이후에는 유행가풍의 <강원도 아리랑>, 1940년대에는 <아리랑 낭낭>등의 노래가 유행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아리랑은 애국가요, 독립운동가요가 되고, 1990년대 이후에는 한민족을 하나로 이어주는 통일의 가요가 되었다고 본다.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의 음악적 연원을 밝히려면 음악적인 분석만이 이를 가능케 한다.

이츠키 자장가의 아리랑 기원설/ 그 형성과 계승/ 우에무라 유키오 (동경예술대학,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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