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종민] 11월에 들어섰다. 태양은, 해는 어제 돋았던 해가 모습 그대로 다시 돋아났다. 하루라는 시간의 공간 흐름이 있었을 뿐인데 붉은색 빛깔도 타오르는 모습도 똑같은 태양이다. 똑같은 해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박종민 수필가/시인
박종민 수필가/시인

사람이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는 지난 달력을 한 장 떼어내니 달이 바뀐 11월 달력이 걸려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속절없는 계절이 가고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거실 한 가운데에 걸린 달력을 열 번째로 떼어내다 보니 이제 뒤로 남아있는 것은 단 한 장의 12월 달력이다.

2022년도도 십 개월이란 나날들이 어언 간에 홀연히 흘러갔다. 흐른 세월의 무덤 속으로 영구히 묻히고 말았다. 자취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것이다. 

 부쩍 짧아진 낮의 길이에 반해 지루하고 갑갑하도록 길어진 밤이 당혹스럽기도 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긴긴밤을 지새우며 어스름 달빛 별빛이 어린 숲속을 헤치면서 부엉이 울어 엔다. 잠에서 깬 새벽녘이 심란하고 스산하기 그지없다.

어디 이것뿐이랴! 아침 햇살이 비쳐든 가을걷이 끝난 텅텅 비인 들판엔 서릿발 하얗게 성성하고 시린 하늬바람만 무에 그리 급한지 차갑고 무거운 동토의 기나긴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만감이 교차하면서 세상만사 만물 만상이 떠오르고 회자 되며 사그라든다. 짧디짧은 계절의 탓이라 싶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비롯된 단풍이 이미 백두대간을 넘어왔고 막바지 호남의 내장산자락을 붉게 불태우고 있다. 빛깔 곱고 예쁜 환상적인 만산홍엽(滿山紅葉), 저처럼 붉고 화사하게 물든 단풍 진 풍광 풍경도 잠시일 뿐이리라.

누가 막을 자 있으랴! 흘러가고 흘러서 오는 대자연의 윤회하는 법칙을. 날과 달이 돌고 돌아 흘러 빙글빙글 돌아감의 천연적인 조합과 융합된 질서를! 그 아무도 인간의 힘으론 막을 자 없고 막아낼 길이 없다. 나이가 들어감일까? 요즘 들어 더욱 만감이 교차(交叉)한다.

게다가 눈앞에 맞닥트리는 농촌의 농가 농민에 힘겨운 여건과 현실의 실상을 보노라면 무척이나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대가 바뀌어 농사가 기계화 첨단화되었다지만, 바쁘고 고단한 노령층 농민들의 일상이 힘들어 쩔쩔매고 있다. 인간 삶이 그러려니 하는데도 왠지 허무하다. 이런 정서 때문일까?

11월 들어 도드라지게 움트는 단상이 많고도 많은 것이다. 회상해보니 숱한 기억 속에 여러 가지 단상이 떠오른다. 11월은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소중하게 남긴 중요한 사건과 일들이 많이도 있다.

1953년 제정되어 1973년까지의 11월 3일은 ‘학생의 날’이었었다. 학생들 중심이 돼서 ‘이래선 안 되겠다.’ 나선 시위로 비롯된 날이다. 88올림픽 전해 대한항공기가 북괴 공작원의 소행으로 피격돼 탑승객 115명 전원이 시신조차 확인할 길 없이 죽어간 날도 11월이었다.

문민정부가 첫발을 내디딘 달도 11월이고, 거슬러 1968년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증이 처음 발부된 것도 11월이다. 세계적으론 11월 11일은 세계 제1차대전이 종식된 날이요, 진화론의 주역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 발표한 날이 11월 24일이다. 뿐만이 아니다, 독일의 베를린장벽이 붕괴(崩壞)된 날이 11월 9일이다.

삭풍과 함께 추위가 밀려들며 몸과 맘이 자꾸만 움츠러드는 달이 11월 아닌가. 생각이 깊을 수밖엔 없는 달이고 여러 가지 단상이 돋아나고 솟아나는 즈음의 달이다. 복잡하며 미묘한 단상들을 정리 정돈하여 내일을 미리미리 예측 예상해 보기도 한다.

이를 기록하여 남겨 두는 것도 한 번뿐인 인생 삶을 제대로 반듯하게 매만지는, 삶을 살아나가는 방안이며 방편이 아닐까, 여긴다. 곱고 좋은 단상을 가꾸며 더더욱 좋은 날이 되길 바라면서 농부가 밭갈이를 하듯 조심조심 다뤄나가고 있다.

올 한 해의 끝을 향해 내달리는 빠른 말발굽이라 치더라도 결코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으려 한다. 생동할 수 있는 생(生)은 아직 여유가 충분하다. 천천히 차분차분 숨 돌리며 생각하고 판단하여 움직이자. 모두가 건전하고 건강한 삶의 길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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