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 이사장]올해 들어 이사를 앞두고 전·월세 세입자들이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2월 18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들어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지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3,719건으로 2021년 같은 기간 신청 건수 2,954건에 비해 무려 25.9%(765건)나 증가했다.

서울지역의 경우 12월 통계까지 보태지 않더라도 이미 연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다. 같은 기간 전국적으로 봐도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은 1만3,80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1만989건 보다 25.6%인 2,814건이나 늘었다. 이는 임대보증금을 제때 반환받지 못한 세입자 수가 올해 가장 많았다는 방증으로 세입자들의 전 재산이나 다를 바 없는 임대보증금을 지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전·월세 계약만료 시점에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세입자의 신청에 의해 법원이 내리는 명령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전셋집 실거주와 확정일자가 필요하다. 만약 임차인이 이사하게 되면 확정일자가 있더라도 실거주가 아니기 때문에 우선 변제권이 사라진다. 그러나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아 등기가 이뤄지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못 받은 채 이사를 한 이후에라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가 유지된다. 문제는 임차권등기명령 제도를 활용하더라도 보증금이 이들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다른 주거지를 구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11월 전국에서 발생한 전세보증금 사고금액은 1,862억20만 원으로 한 달 전인 10월의 1,526억2,455만 원보다 22%인 335억7,565만 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사고 건수는 704건에서 852건으로 늘었고, 사고율도 4.9%에서 5.2%로 상승했다. 임대차 보증사고는 지난 8월 511건 1,089억 원, 9월 523건 1,098억 원에 이어 최근 4개월 연속 증가세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월 발생 건수는 1,000건, 사고금액은 2,000억 원도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보증사고의 92%가 수도권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자에게 대신 지급한 전세보증금도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HUG의 전세보증금 대위변제액은 지난 11월 606가구 1,309억 원으로 전달인 10월 1,087억 원보다 20.4%인 222억 원이나 늘어났다.

수도권 빌라·오피스텔 1,139채를 임대해온 40대 임대업자 김모씨의 사망으로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 세입자들이 속출한 ‘빌라 왕 사태’에서 보듯 피해자들은 임차권등기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집주인이 사망했을 경우처럼 상속인을 상대로 임차권등기를 하면 되지만, 김모씨는 생전에 62억 원의 종합부동산세를 체납해 부모가 상속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요즘 부동산 시장 상황을 보면 ‘제2의 빌라 왕 사태’가 언제 터질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지난 7월부터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전세 사기’ 의심 사례가 1만4,000여 건에 달했다.

지난 9월 28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문을 연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지난달 30일까지 1,068명이 방문했다. 이 중 770명이 ‘전세 사기’ 의심 사례를 접수했고, 121건에 대해서는 경찰 등 수사기관과 정보를 공유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방문한 69명이 긴급 주거지원 상담을 받았고, 이 중 9명이 긴급주택을 신청해 6명이 입주 승인을 받았다.

악의적인 ‘전세 사기’ 말고도 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기’를 벌이다 집값이 하락하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전세가율이 80%를 넘는 공동주택이 40%에 달하는 상황이어서 집값 하락이 지속되면 세입자 피해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2020년 이후 주택을 구매한 사람 10명 중 3명은 실수요자가 아닌 ‘임대목적’ 구매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임대목적 구매자들의 주택 매입자금 중 세입자 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2.5%로 절반을 넘었다.

상황이 이러자 지난 11월 21일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깡통전세’를 포함한 ‘전세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한 ‘임대차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주택임대차보호법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을 맺기 전 집주인에게 선 순위 보증금, 세금 체납 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세입자가 확정일자 부여에 관한 임대차 정보를 요청할 때 집주인이 이에 동의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법제화한다. 시행령 개정안엔 최우선 변제를 받을 소액 임차인 범위는 1,500만 원, 최우선 변제금은 500만 원씩 상향 조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서울에서는 보증금 1억5,000만 원 이하일 경우 소액 임차인에 들어가고, 전체 보증금 중 5,000만 원까지만 최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1억6,500만 원 이하에서 5,500만 원까지 최우선 변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 우선 세입자가 집주인의 정보 제공을 강제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집주인이 거부해도 이를 강제할 처벌 규정은 없다. 소액 임차인의 변제금 1억6,500만 원도 서울 전셋값이 평균 6억 원을 넘는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현 입법 예고(안)보다 실효성을 대폭 높이는 방향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 계약 체결 전 임대인이 국세 및 지방세 완납 증명서를 임차인에게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우선 변제받는 임차보증금 한도도 현실화해야 한다. 국회는 서둘러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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