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나무 한 그루 / 이수풀 시인

[중앙뉴스= 최봄샘 기자]

최한나 시인
최한나 시인

 

창밖의 나무 한 그루

이수풀

 

나를 바라보는

내가 바라보는

술 취해 냅다 달려가

해대는 토악질 받아주고

호랑지빠귀 울어 뒷간이 멀다

내두르며 갈기는 오줌발 받아주는

나무가 한 그루 있소

 

날마다 자라고

아침이면 먼저 푸르고

손 흔들어주며

치렁거리는 푸념을 그늘로 감싸주는

나무가 한 그루 있소

 

바람 불면 빗자루 되어

하늘 청소해 주고

이따금 구름장 떠메다

마당에 패대기쳐

집안 즐거운 물소리로 가득 채워주는

이 나무에 꽃 피면

속 울렁거리도록 내 얼굴 붉어지고

 

이 나무에 새가 울면

울음청청 내 목청 높아지고

이 나무에 송충이 기어가면

몸이 근지러워 잠을 이룰 수 없소

 

휘영청 물러 터지도록 달 밝은 밤이면

그림자 드리워

내 옆에 와 아무 소리 없이 누웠다 가는

그런 나무가 한 그루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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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껍데기, 즉 감싸고 가려 줄 옷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존재다. 아무 걸칠 것 없고, 기댈 곳 없으며 그 누구도 나를 나로 인정해 주지 않으면 존재 가치를 찾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자칫 놓치기 쉬운 점도 있댜.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나누어 줄 수 있을 때 더 큰 존재의 의의와 최고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주고받는 상호적 관심과 사랑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를 이어온 에너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 자는 막대기 두 개를 기대어 놓은 모습에서 기인한 문자가 아니던가!

아무도 노크하지 않는 창밖 뜨락에 사계절 묵묵히 서서 지켜주는 나무 한 그루, 그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그런 사람 한 명 있다면 인생은 결코 실패함이 아닐 것이다. 위 시 속 화자의 나무는 참 근사하고 사랑받기에 충분한 그런 나무인 것을 시의 행간마다 위트와 재치 혹은 그 처연함으로 마저 강조함을 느낀다. ’이 나무에 송충이 기어가면 / 몸이 근지러워 잠을 이룰 수 없소이 두 행에서 화자가 그 나무를 얼마나 애틋하며 소중히 여기는지도 가늠할 수 있음이다. 실제로 화자가 지칭한 작품 속 나무가 부군을 의미한 것인지 확실히 물어보진 않았으나 이수풀 시인 지아비의 호가 나무라는 점을 떠올리면 아름다운 사부곡으로도 읽혀져서 마음이 뜨거워진다.

문득 위의 시를 음미하며 내 삶의 족적도 돌아다본다. 때로 어느 지점에서는 지워져 있기도 하고 어느 시기에서는 얼룩지고 어지러운 발자국들, 온갖 풍상에 내 작은 뜨락에 그 나무들 시들고 꺾이고 베어지고 황페하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다행인 것이 그루터기라도 남아 가끔 찾아가서 앉아보는 나무 하나 있으니 내 인생도 결코 씁쓸하지만은 않은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포근한 나무가 되어주고나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당신이라는 키가 큰 나무! 그리고 나라는 키 작은 나무, 한 그루 나무와도 같은 우리 모두가 모여 숲을 이루며 사는 세상! 지상의 모든 초록들이 기지개를 켜는 오늘은 춘삼월이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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