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 이광재 기자] 최근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온라인 플랫폼 ‘다크패턴’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소비자 피해를 막겠다는 규제 움직임이 오히려 소비자 권익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학계에서 제기됐다.

또 현재 공정위에서 분류한 ‘다크패턴’ 유형이 실제 규제로 도입될 경우 온라인 플랫폼은 물론 비영리 NGO 단체와 언론사, 그 외 복잡한 의사결정이 수반되는 구매 활동 전반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24일 ‘넛지인가? 다크패턴인가? 다크패턴의 정의와 규제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제공=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24일 ‘넛지인가? 다크패턴인가? 다크패턴의 정의와 규제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제공=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24일 ‘넛지인가? 다크패턴인가? 다크패턴의 정의와 규제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다크패턴’은 흔히 웹사이트와 앱상에서 소비자를 속이기 위해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통용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다크패턴의 성급한 입법에 대한 우려점을 지적하고 바람직한 규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박정은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넛지 마케팅과 다크패턴의 경계에서’라는 주제의 발제를 통해 “규제 대상이 모호해 일반적인 마케팅까지도 규제에 포함될 우려가 크며 기존 규제의 틀 안에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다”며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의 본질적 행위로 일부 기업의 불법적인 기만 행위에 천착한 관점으로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장인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함과 피로감만으로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며 “망라적, 무차별적 규제는 경제적 자유의 심각한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섣부른 규제가 기업 혁신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다크패턴 규제 또한 ‘킬러 규제’로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현규 김앤장 변호사 역시 “각 다크패턴 유형의 해석이 모호하기 때문에 기업은 행위 자체를 자제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권과 정보제공 범위가 줄어들게 돼 소비자 보호라는 선의의 목적이 소비자 권익 제한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다크패턴의 규제가 곧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어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무재고 경영은 기업이 시장 경쟁력과 민첩성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자동 갱신은 기존 고객에 대한 유지 비용을 낮춤으로써 전체 서비스 비용이 낮아져 오히려 시장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며 기업의 비용 상승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지출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일괄적인 규제를 할 경우 시장 전체의 신뢰가 깨져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비대면 거래 시장이 확대되면서 다크패턴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실질적으로 인터넷 쇼핑 뿐만 아니라 제조사, NGO, 언론사 등 홈페이지와 앱이 사용되는 모든 곳에서 공정위 등 정부당국이 유형을 분류한 다크패턴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박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업체의 다크패턴을 지적하던 시민사회단체 홈페이지에서도 다크패턴이 발견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어디까지가 넛지이고 어디서부터가 다크패턴인지 명확하지 않아 이러한 논란이 나오는 것”이라며 다크패턴의 정의와 범위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크패턴의 유형이 애초에 명확히 규정하기가 어렵고 동일한 행위도 목적에 따라 일상적인 마케팅이 될 수도 다크패턴으로 분류될 수도 있는데 자칫 국내 모든 민관 기관이 규제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크패턴 법제화가 궁극적으로 소비자 보호로 이어지려면 실제로 소비자가 피해를 받는 명백한 기만 행위의 범위를 특정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네거티브식 규제가 이뤄질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동일 교수는 “소비자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지나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게 되면 오히려 주의가 분산돼 의사 결정을 오도시킬 수 있어 규제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같은 잣대를 오프라인에 적용할 경우 적발이 어렵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온라인에 국한해 규제하게 되는 것”이라며 온라인 규제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언급했다.

유럽연합(EU)의 다크패턴 규제 입법을 따라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다크패턴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규제 움직임이 있다면서도 국내 상황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서종희 교수는 “EU가 다크패턴을 규제하는 것은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 미국 등 거대 플랫폼으로부터 자국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목적이 1순위이며 자국 플랫폼에 발생하게 되는 비용 분석까지 오랜 기간 거쳤다”며 “우리나라는 국내 시장 보호에 대한 목적 없이 개별 사업자 패널티를 위해 규제하겠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현규 변호사는 “EU의 경우 불공정행위에 해당하는 법 체계가 촘촘하지 않아 규제 시도가 유의미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미 전자상거래법과 표시광고법 등이 20년 이상 운영되고 있고 그에 따른 선례도 대단히 많이 축적되어 있어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서종희 교수는 “현행법상 이미 규제가 가능하며 규제기관 입장에서 과태료 등 처분할 방법이 없었을 뿐 해석이 모호한 부분까지 민법 등 개별 소비자에게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구제 법안들은 충분하다”며 “전세계적으로 규제를 하니 우리도 규제하자는 식의 트렌드적 발상을 버리고 현행 법안의 역할과 규제 대상에 대해 우선적으로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하명진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실장은 “국내 초기 온라인 시장에서 상당 수 발견되던 유형들도 사업자들의 자정 활동으로 많이 사라지고 있다”며 “현 정부가 자율 규제 기조를 갖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자율 규제는 자율 규제대로, 법안은 법안대로 이중 규제가 되고 있어 사업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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