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대열 대기자

[중앙뉴스 칼럼= 전대열 대기자]근래에 신문 방송을 어지럽히고 있는 기사 중에서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게 보복살인과 무작위 살인이다. 보복살인은 한 때 애인이었거나 처(妻)였던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일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애인이 싫다고 떠나갔으면 자신이 뭔가 부족한데가 있었는지를 돌아보고 그걸 보완할 생각을 해야지 상대를 야속하게 생각하고 극단적인 행위부터 행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인성의 소유자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그 수법이 지나치게 잔인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어둡게 만든다. 남녀가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 때문인데 일방적으로 사람 해치는 것을 능사로 삼는다면 사회를 어지럽히는 제일요소가 된다. 

또 생판 알지 못하는 사람을 공원이나 큰 길거리에서 마구잡이로 흉기를 사용하여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일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대부분 강간을 목적으로 휘두르는 칼질인데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지 아무도 모르고 당하는 일이다.

이러한 행위는 외신을 통하여 주로 미국에서 행해지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덧 한국까지 전이된 듯해서 불안하기 짝이 없다. 미국은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나라여서 오랜 세월 이 문제가 사회적 난제(難題)였다. 총기를 규제하는 법률로 아무나 소유하지 못하도록 해야 된다는 여론이 비등하지만 미국 총기협회의 압력으로 하원이나 상원이나 모두 꼼짝하지 못한다. 

총기협회의 무한정한 재력이 정치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아예 손댈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범인들은 성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요즘에는 나이 어린 소년이나 심지어 미성년자까지 총기 난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에 비해서 한국은 치안 질서가 비교적 완벽한 나라로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처지지만 이유 없는 칼 휘둘림이 계속 증폭한다면 관광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이러한 살인범죄에 대해서 가장 무거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조항이 엄존한다. 사형이란 사람이 사람을 법의 이름으로 죽일 수 있는 합법제도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 26년째 사형집행을 보류하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는 사형집행을 시행하는 나라와 사형제를 아예 없애버린 나라로 구별된다. 미국 중국 일본은 지금도 사형집행을 한다. 

한국은 사형수가 59명이나 있는 나라면서도 집행을 하지 않고 있어 ‘사형이 없는 나라’로 분류된다고 한다.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 것과 사형이 없는 나라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지만 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받고도 26년을 교도소에서 살고 있는 범죄자는 쾌재를 부를 듯싶다. 

나는 긴급조치로 수감되어 있던 ‘78년도에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된 정치범33명과 함께 유신헌법 철폐를 내걸고 단식투쟁을 벌였다가 독방에서 사형수가 있는 방으로 강제합방 되었던 이력을 가졌다. 교도소에서 사형수는 약간의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 사형수는 넌픽션 작가여서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고 항소심에서 15년형으로 감형되었다.

사형수는 막다른 골목에 들었다는 생각 때문에 자칫 딴 짓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나의 사형수 체험은 석방 후에도 계속되어 그가 장흥교도소로 이감된 후에도 그의 요청으로 여러 권의 책을 영치해주는 등 우정을 이어갔다. 이번에 한동훈 법무가 사형집행 시설이 있는 4개교도소에 시설점검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해서 사형집행이 재개되는 것인지 여부가 언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덕분에 왕년의 살인마로 알려진 유영철 등 몇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며 이들에 대한 집행이 보류되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잠시 커졌다가 사라졌다. 우리는 과거 일본군에 의해서 처형된 전봉준 안중근 윤봉길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금의 사형수와 비교할 수도 없거니와 비교해서도 안 된다. 

지금 사형수들은 아직도 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이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사형제도가 있으면서 사형집행도 하지 못하는 나라의 기강을 어디에서 찾을까. 사형수의 연명은 피해자들에게는 오히려 고통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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