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게르니카

1937년 4월26일 히틀러의 군대가 스페인 북구 바스크지역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대대적으로 공습한다. 당시 스페인은 공화파와 우파 국가주의 세력 사이에 내전 중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부터 39년까지 3년 동안 무려 100여 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 내전은 민주주의 대 파시즘의 충돌이었다. 총파업과 유혈폭동에 이어진 정치위기 속에 36년 공화파인 ‘인민전선’이 선거에서 이겨 정권을 잡자 파시스트 성향의 팔랑헤당과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군부가 봉기함으로써 스페인 내전이 시작됐다.

프랑코를 지지했던 히틀러는 바스크 지역을 선택해 최신 무기의 성능을 실험했다. 이런 소식을 접한 피카소는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한 분노를 대작 ‘게르니카’(1937, 350cm×780cm)에 담아낸다. 전쟁의 참상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은 게르니카 이외에 한국전쟁의 학살 사건을 다룬 ‘한국의 대학살’(1951)이 있다.

 

서경식 게르니카

서경식의 이 글(‘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 2002)은 일본이 참전한 전쟁에 관한 그림을 모아 전시한 미술전(쇼오와(昭和)의 미술전, 1989)에서 코이소 료오헤이(1903~1988)가 그린 ‘낭자관 행군’(1941, 260cm×193cm)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소회를 적은 일종의 수필이다.

그 전시회에는 태평양전쟁 이후 미군에게 접수된 일본 화가들의 그림 가운데 특별히 153점이 선별, 출품됐다. 그런데 전쟁을 담아낸 코이소의 글미에서 서경식은 전혀 전재의 상흔을 발견해 낼 수 없었다.

서경식은 “코이소의 손에 걸리면 전쟁마저도 세련되어 보인다”고 한탄한다. 이어 그는 “전쟁의 아비큐환은 고사하고 변사들의 탄식마저도 여기서는 들리지 않는다. 하물며 살육당하는 쪽인 중국민중의 모습이 보일 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와 달리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를 감상하던 서경식은 그 그림을 통해 종전 후 스페인에 짙게 드리워진 군군주의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는 더 나아가 근대 스페인의 역사가 사실은 침략과 살육의 역사였다는 점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게르니카에서 발생한 대학살은 스페인 역사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코이소의 그림을 보고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전쟁의 역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서경식의 대답이다.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에서 “스페인을 공포와 죽음의 바다에 잠기게 한 군사력에 대한 나의 공포를 확식하게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코이소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전쟁에 관한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두 그림의 차이는 코이소와 피카소의 역사인식의 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서경식은 1951년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하고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후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그는 퇴직 전부터 한국과 일본을 자주 왕래하면서 역사의 폭력에 의해 역사로부터 추방당한 자들에 대한 정서적 비평 에세이를 써왔다.

서경식은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기에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 감동을 받고 재일조선인이었기에 코이소의 낭자관 행군에는 냉소적이었을까. 서경식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통해 스페인의 근대 4~5세기에 관한 역사를 읽어낸다. 그는 스페인에 가면 투우나 플라멩고 춤보다 그 나라에서 진행된 군국주의 역사를 살펴보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림같은 문화예술작품에 대한 한낱 비평의 눈이 뭘 그렇게까지 진지할까마는 지구 곳곳에서 새로운 전쟁이 발발하고 있는 이 때에 침략과 분열 그리고 혼란을 야기시켜 놓고 애써 태평하게 세상을 호령했던 과거의 위정자들부터 다시 톺아 봐야 할까.

서경식은 이 글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일본에는 전쟁에 협력한 그림은 있어도 게르니카에 비길 만한 것은 없다. 전쟁 찬미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한다하는 명인대가들이 전쟁에 협력한 그림을 그린 그 자체를 ‘없었던 일’처럼 괄호 속에 묶어넣어둔 채 능청거리고 있는 퇴영적 정신에서는 게르니카가 태어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순전히 미술상의 관점’에서 말해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일본이야 어떻든 나는 차라리 내 민족을 한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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