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만한 물가 둔화 속도·가계부채 증가 등에 긴축기조 유지

[중앙뉴스= 박주환 기자]경제성장 긴축경제로 성장기조가 대외 여건 변회에 한국은행이 지난 2·4·5·7·8월에 이어 19일 기준금리를 다시 3.50%로 묶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금리 동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금리 동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민경제의 부담이 되는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고 원/달러 환율도 11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는 등 금리 인상 요인이 분명히 있지만, 최근 소비 부진과 중국 등 주요국의 성장 둔화로 뚜렷한 경기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일단 동결한 뒤 상황을 지켜보자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고조된 미국의 추가 통화 긴축 압력이 최근 다소 줄어든 점도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에 여유를 줬다. 만약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이미 너무 많이 뛴 미국 장기 채권 금리, 근원 소비자물가(에너지·식품 제외) 상승률 하락,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에 따른 경기 불안 등을 고려해 연내 0.25%포인트(p) 추가 인상에 나서지 않으면, 당분간 한국과 미국 간 금리 격차가 2.0%p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기준금리(연 3.50%)를 조정 없이 동결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에서 동결 배경에 대해 "물가상승률이 기조적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지만, 주요국 통화 긴축 기조 장기화,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등으로 물가와 성장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완만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가계부채의 증가 흐름도 지켜볼 필요가 있는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관련해 "상승률이 올해 말 3%대 초반으로 낮아지고 내년에도 완만한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다만 높아진 국제 유가와 환율의 파급 영향,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에 따른 물가 상방 리스크(위험) 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대)에 수렴하는 시기는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국내 경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수출 부진 완화로 성장세가 점차 개선되면서 올해 성장률도 8월 전망치(1.4%)에 대체로 부합할 것"이라며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주요국 통화 긴축 기조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향후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앞서 2020년 3월 16일 금통위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p 낮추는 이른바 '빅컷'(1.25→0.75%)에 나섰고, 같은 해 5월 28일 추가 인하(0.75→0.50%)를 통해 2개월 만에 0.75%p나 금리를 빠르게 내렸다.

이후 무려 아홉 번의 동결을 거쳐 2021년 8월 26일 마침내 15개월 만에 0.25%p 올리면서 이른바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섰다. 그 뒤로 기준금리는 같은 해 11월, 지난해 1·4·5·7·8·10·11월과 올해 1월까지 0.25%p씩 여덟 차례, 0.50%p 두 차례 등 모두 3.00%p 높아졌다. 하지만 금리 인상 기조는 사실상 지난 2월 동결로 깨졌고, 3.5% 기준금리가 이날까지 약 9개월째 유지되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이 6연속 동결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배경은 역시 불안한 경기 상황이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 0.6%)은 1분기(0.3%)보다 높지만, 세부적으로는 민간소비(-0.1%)를 비롯해 수출·수입, 투자, 정부소비 등 모든 부문이 뒷걸음쳤다. 다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 순수출(수출-수입)만 늘면서 수치상으로는 겨우 역성장을 피했다. 8월 산업활동동향 통계에서도 소매판매액지수는 내구재·준내구재 소비 부진과 함께 전월 대비 두 달 연속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천79조8천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4조9천억원 많았다.
그렇다고 가라앉은 경기에만 초점을 맞춰 한은이 기준금리를 서둘러 낮추기에는 가계부채·환율·물가 등이 걱정이고할 수 있다.

은행권과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지난달 각 4조9천억원, 2조4천억원 또 늘어 4월 이후 6개월째 증가세를 유지했다. 미국(5.25∼5.50%)과의 기준금리 역전 폭이 사상 초유의 2.0%p까지 커진 가운데 이달 초 환율은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1,363.5원까지 뛰었다.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자금도 8월과 9월 두 달 사이 31억달러 이상 순유출됐다.

원론적으로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3.7%)의 경우 한은의 전망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으로 유가가 들썩일 경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불씨도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금통위 동결 결정에 앞서 미국·중국 등 주요국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올려 경기를 위축시키기 어렵다며 "그렇다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까지 겹쳐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는데 금리를 낮추기도 힘들다. 금리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어려운 상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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