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중앙뉴스 칼럼= 전대열 대기자]무릇 정치란 미래를 바라보는데 역점을 둬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현재에만 만족하는 정치는 발전이 없다. 유사 이래 현대적 의미의 정당은 아니었지만 국가를 경영하는 주체는 정파의 몫이었다. 크고 작은 정파들이 붕당을 형성하여 집권자인 임금의 비위를 맞추고 눈에 들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꾸며왔다. 

정상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정도 한 정파의 이익에만 부합된다면 무리수를 써서라도 관찰시키려고 노력했다. 대부분 왕이라는 상징적 실권자의 입맛에 맞는 결정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일 뿐 실질적으로는 정파 혹은 당파의 구성원들에 의해서 그 명분은 내세워졌다. 

이를 위해서 정파끼리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으며 엄청난 파문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기기 위해서 상대를 모함하고 심지어 나라를 배신한 역적으로 몰아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것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양상이 비슷했다. 반대파를 제거하는 죽음의 잔치도 흔했다.

모든 임금들이 세종대왕처럼 화해와 설득을 주특기로 하지 않고 아첨과 아부에만 놀아나는 암군들이 많았기에 모략과 모함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조선시대의 정란(靖亂)과 사옥(史獄)은 피비린내의 연속이었다. 이는 결국 국력을 쇠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조선왕조가 결국 500년 역사를 지탱하지 못하고 왜적에 의해서 합병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임금과 신하들이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하다가 허망하게 진상한 셈이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애국지사들이 의병을 일으키고 자결을 감행하여 저항했지만 기득권자들의 이해에만 눈이 벌개 진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 죽음으로서 군신(君臣)이 모두 저항했다면 그처럼 치사하고 허무한 망국은 피할 수 있었으리라. 이는 확고한 신념을 골수에 파묻어야만 가능하다. 조선왕조의 왕과 신하들에게 이를 기대할 수 없었기에 의병들이 들었던 총칼은 무의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는 문명이 크게 꽃을 피운 현대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권을 잡은 여당은 국민의힘이지만 의회권력은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었지만 사사건건 야당의 견제를 받는다. 장관은 청문회를 거쳐 부적격 판당을 받아도 그냥 임명하면 되지만 대법원장은 인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견제구에 걸려 중도하차했다. 사법부의 공백은 좌우파로 갈라진 판사들의 성향 때문에 매우 심각한 사법 리스크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6개월 앞으로 다가선 국회의원 총선이다. 

총선에서 거대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의석을 차지해야만 정치다운 정치를 해볼 수 있다. 또 다시 과반수의석을 야당이 가져간다면 여당은 남은 정권 내내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여당은 수도권에서 우위를 차지하거나 야당과 대등한 의석을 획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금 여당은 TK와PK에서만 56석을 가진 지역정당에 머문다. 이번에 시행된 강서구청장 보선은 수도권에서 희망의 빛을 건져보려는 뜻에서 여야가 대결했지만 야당의 대승으로 끝났다.

이 선거는 애초에 여당이 참여하면 안 되는 선거였다. 김태우 사면과 공천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일개 구청장선거를 전국선거로 몰아간 것이 제일 큰 오산이었다. 정치는 과거나 현재보다 내일을 내다볼 줄 알아야 제대로 가동된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당 지도부가 이번 보선 참패를 겪고서도 전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눈속임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총선이야 지든 말든 나만 살겠다는 수작이다. 책임져야할 지도부가 그대로 남으면 해보나 마나다. 혁신위원회나 비대위원회를 꾸며도 국민이 예측하지 못했던 신선한 인물을 추대해야만 해볼 만할 것이다. 

이 문제는 정치경력은 짧지만 결단할 줄 아는 대통령이 나서서 쾌도난마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책임 있는 집권여당은 미래를 지향하는 전진적인 자세를 보일 때만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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