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 이사장]지난달 소비자물가가 3.8% 올랐다. 작년 7월 6.3% 정점을 찍고 올해 7월 2.3%까지 내려 안정되는가 싶었던 물가상승률이 3개월 연속 올라 4%대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이상 저온으로 수급에 차질을 빚은 농산물은 13.5%나 뛰면서 2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란이 트리거(Trigger │ 방아쇠)가 될 경우, 유가가 120~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이란이 하루에 석유 1,700만 배럴이 운송되는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는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중동 전쟁 양상에 따라 유가마저 불안해질 경우는 정부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 3.3% 달성도 물 건너갈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물가 상승이 실질소득 감소, 구매력 저하, 소비 충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그만큼 영세 서민의 삶이 팍팍하다는 의미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가계 기업 정부 모두 빚이 너무 많아 빚의 늪에 빠진 위기의 부채 공화국이다. 특히 과도한 가계 부채는 우리 가계의 어깨를 짓눌러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 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현재 국내 가계 대출 차주 수는 모두 1,978만 명에 달하고,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은 1,845조 7,000억 원에 달하며,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332만 원에 이른다.

가계 부채 중에서도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끌어다 쓴 ‘다중채무자’는 가장 약한 고리로 지목된다. ‘다중채무자’가 전체 가계 대출자 1,978만 명의 22.6%인 448만 명에 달해 역대 최대치에 이른다. 은행권 가계 대출 평균 연체율은 7월 말 현재 0.4%로 1년 전의 2배로 뛰었다. 다중채무자 연체율은 무려 1.4%(올 2분기 말 기준)로 이보다도 3배를 넘고 있다.

대출자의 상환 능력이나 부담의 정도를 나타내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더욱 심각하다. 다중채무자의 DSR은 2분기 말 현재 61.5%로 처분가능소득의 거의 3분의 2를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특히 다중채무자 중 저소득 저신용인 취약 차주가 127만 명에 달하며 이들의 DSR은 67.1%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임직원 평균 소득이 지난해 모두 1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연합회가 지난 11월 1일 공시한 ‘은행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임직원 평균 연봉은 1억 1,006만 원으로,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이 1억 1,485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국민은행 1억 1,369만 원, 신한은행 1억 1,078만 원, 농협은행 1억 622만 원, 우리은행 1억 476만 원 순이었다. 하나은행은 “노사 간 협상으로 지난해 임금이 3.0% 인상됐고, 경영 성과급이 지급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스톡옵션(Stock option)을 포함하면 인터넷 은행 3사(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중 카카오뱅크의 1인당 평균 소득이 1억 3,579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 은행의 희망퇴직자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희망 퇴직금도 3억 5,000만 원을 웃돈 것으로 집계됐다. 땅 짚고 헤엄치기 이자 장사로 번 돈으로 두둑한 위로금을 내밀자, 5대 은행 모두 지난해 희망퇴직 신청을 해 2,357명이 퇴직했는데 기본 퇴직금 외에 별도의 희망 퇴직금 1인당 평균 3억 5,548만 원을 챙겨 은행을 떠났다. 지난해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한 씨티은행의 1인당 희망 퇴직금은 6억 435만 원에 달했다.

한국의 은행이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거나 혁신을 이루는 곳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모든 국민이 잘 알고 있는 터다. 거의 단순 업무에 불과한 일을 하면서 떼돈을 벌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돈을 바치는 사람들은 은행에 꼬박꼬박 이자를 내는 서민들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라고 은행권을 에둘러 비판한 바 있다. 은행들의 연봉 잔치는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5대 시중은행이 올해 들어 9월까지 거둔 이자 이익이 30조 9,366억 원에 달했다. 3분기까지 누적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이자 이익이 30조 원을 넘긴 해는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달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3분기까지 KB국민은행은 7조 3,319억 원의 이자 이익을 냈고 신한·하나·NH농협·우리은행 등의 이자 이익도 각각 5조~6조 원대에 이르렀다. 은행의 이자 이익 급증은 금리 상승기에 예금 금리는 천천히 높이고 대출금리는 더 빨리 올리는 식으로 막대한 ‘예대 마진(Initial Margin │ 예대금리차)’을 챙긴 영향이 컸다. 손쉬운 ‘이자 장사’의 결과인 셈이다. 이러한 은행의 과도한 이자 장사에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야권 등에서는 은행의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횡재세(초과이윤세)’를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은행원들이 돈 잔치로 비판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은행은 정부의 보호 아래 과점의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큰 금융위기에 처할 때는 국민 세금과 마찬가지인 공적자금으로 지원을 받는 데 정작 이익이 나면 은행원들이 다 챙겨가는 구조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휘청거리던 은행들은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 지원 덕분에 회생했으므로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 역할을 해야 한다.

부동산 버블과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빚더미에 앉은 영세 서민들이 지금 무엇 때문에 절규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과점체제 은행의 책임과 역할을 결단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은행 스스로 영세 서민의 고통을 줄여 줄 방안을 찾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은행들은 단순 이자 장사에서 탈피하여 서민금융 상품 확대 등 소상공인과 가계의 고통 완화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

또 업무 영역을 넓혀 이자수익의 8분의 1에 불과한 비이자수익 비중을 획기적으로 키우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은행들이 금리 산정 시 대출자에게 부당하게 비용을 전가하지는 않는지, 예금자의 이익을 희생시켜 자기 이익을 늘리는 것은 아닌지 촘촘히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금융 당국의 개입이 불가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융산업 전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은행과 비은행 간에 가로놓인 높은 경계벽을 과감히 허물어 공정하고 공평한 운동장을 마련해 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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