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역임)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역임)

[중앙뉴스=박근종]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4%에 그쳤다. 그나마 정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치는 달성했다지만 코로나19 첫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2020년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역대 기록을 보면 6번째로 낮은 실적으로 고(高)물가·고(高)금리가 지속하면서 소비 증가세 둔화에 기인한 내수 위축과 더딘 수출 회복 속도가 지난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해석이 된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 25일 발표한 ‘2023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보다 0.6% 늘었다. 우리나라는 2022년 4분기 수출 급감의 여파로 -0.3% 역성장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1분기(0.3%)부터 반등하기 시작했고, 2분기(0.6%), 3분기(0.6%)에 이어 4분기(0.6%)까지 내리 네 분기 연속 0%대의 성장을 이어감으로써 연간 성장률이 앞서 전망한 대로 1.4%를 기록했다. 특히 뚜렷한 큰 악재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2.0%)에도 못 미치는 1%대에 그치면서 저성장의 장기화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1980년 2차 오일쇼크(-1.6%)와 1998년 외환위기(-5.1%),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19 사태(-0.7%) 등 심각한 경제 위기가 덮쳤던 시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은 것은 1956년(0.6%) 이후 67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022년(2.6%)의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4분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다소 살아났으나 수출 증가율(2.8%)과 민간소비 증가율(1.8%)은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1년 4.3%에서 2022년 2.6%에 이어 2년 연속 내리막이다. 수출과 내수가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복지 투자 같은 정부 지출까지 격감해 저성장 국가의 대명사인 일본 1.8%보다도 낮은 처참한 1.4%라는 경제성적표를 받게 됐다.

우리는 오일쇼크나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도 아닌데 성장률이 1%대 초반으로 추락한 작금의 경제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해 대대적인 감세와 규제 완화로 내수 띄우기에 나서면서 부유층과 대기업에 혜택을 주면 투자·소비가 늘어 경제가 살아나고 중소기업과 서민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른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를 믿었지만 2022년 4.1%였던 민간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1.8%로 급감했다.

정부 소비 역시 지난해에는 1.3% 증가에 머물렀다. 정부 소비의 증가율은 2018년부터 2021년 사이는 매년 5~6%대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2022년에는 4.0%로 줄어든 뒤 지난해에는 1%대로 증가 폭이 줄었다. 통상 민간소비가 부진한 해에는 정부 소비 증가가 두드러졌는데, 지난해에는 민간소비와 정부 소비의 양 분야 모두 1%대로 위축됐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성장 폭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부진했던 정보통신(IT) 경기의 회복 흐름이 연중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정부도 상반기 재정집행 확대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성장률이 다소 반등할 것이라 예상은 하지만 중동 분쟁에 따른 수에즈 사태 장기화 가능성과 올해 11월 미국 대선 이후 보호주의 확산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등 안팎의 불확실성이 너무도 크다. 내수가 얼어붙고 글로벌 교역 둔화마저 예고돼 국내외 기관들이 제시하는 2%대 초반 성장률도 낙관하기 어렵다.

한편 정부가 지난 1월 4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2%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가 2.1%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고, IMF는 2% 초반대로 전망치를 내놨다. 국책연구기관 중에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산업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을 각각 2.2%, 2.0%로 예상했다. 민간기관 중에는 현대경제연구원이 2.2%, 하나·우리금융경영연구소 2.1%, 한국경제연구원 2.0%로 전망했다.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새해 벽두부터 잔뜩 얼어붙었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 25일 발표한 ‘1월 전 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경제심리지수(E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전산업 업황 BSI는 전월보다 1포인트 하락한 69를 기록해 경기 판단의 기준선인 100을 크게 밑돌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월 21일 발표한 ‘2024년 경제키워드와 기업환경 전망에 대한 전문가 의견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내년 경제를 표현하는 키워드로 ‘용문점액(龍門點額)’을 꼽았다. 용문점액은 중국 황하에 있는 용문(龍門)에 관한 전설로 물의 흐름이 강해 큰 물고기도 거슬러 오르기 어려운 협곡인 용문을 넘으면 용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가지만, 넘지 못하면 문턱에 머리를 부딛쳐 이마에 상처가 난 채 하류로 떠내려간다는 내용이다. 우리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통한 성장 또는 중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는‘기로(岐路)’에 서 있다는 견해다.

지난 1월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고금리에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은행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1월 기준 0.46%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신규연체 발생액도 2조 7,000억 원으로 전월보다 3,000억 원 늘었고, 연체채권 정리 규모는 2조 원으로 7,000억 원 늘었다. 지난 1월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민생고와 직결되는 임금체불액은 작년 한 해 총 1조 7,845억 3,000만 원이었다. 이는 전년도 1조 3,472억 원보다 32.45%나 급증한 수치다. 주가는 주요국 가운데 꼴찌다. 1월 증시의 방향성이 그해 연간 증시 수익률을 결정짓는다는 미국 증시의 ‘재뉴어리(January │ 1월) 바로미터’ 이론이 코스피 지수에서도 셋 중 두 번꼴로 작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월 등락률이 ‘플러스’를 기록했던 해의 연간 수익률이 16%에 육박했던 데 비해 1월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해의 연간 수익률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첫 달 결과에 따라 한 해 주식 시장의 결과는 완전히 엇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1월 코스피지수가 상승했던 지난 18개년 간 연간 코스피 수익률 평균 등락률은 15.90%였는데 반해 1월 하락으로 마감했던 12개년 간 연간 수익률 평균치는 -3.62%를 기록했다. 사실상 1월 증시 상황에 따라 한 해 주식 시장의 분위기가 갈릴 확률이 높았다.

연초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국 증시가 연일 ‘역대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며 강세를 보이는 것과 비교한다면 한국 경제를 무겁게 짓누르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는 언제 해소될지 가늠조차 하기 힘든데 남·북 간 긴장 고조로 한반도 지정학적 위험 가중 등의 하방 압력의 직격탄을 맞은 코스피지수의 하락세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올해 들어 1월 22일 종가까지 코스피지수는 7.19% 하락했다.

지난 2008년 같은 기간 기록한 -15.19% 이후 16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다. 미국 뉴욕증시 3대 주가지수 중 하나인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3만 8,001.81에 거래를 마치며 사상 첫 3만 8,000고지에 올랐고,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가 3만 6,546에 장을 마치며 ‘거품(버블) 경기’ 이후 약 34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코스피지수의 약세는 눈에 띄는 수준이다. G20 국가 주요 주가지수 중에선 중국(상하이종합지수 │ -7.35%)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암울한 상황이다.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국제 정세와 중국의 경기 둔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 장기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등 산적한 악재들을 뚫고 저성장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해법은 의외로 명백하다. 경제 위기는 금융위기에서 시작되고, 금융위기는 대개 부실 대출에서 비롯됐음을 경제사적 경험을 통해 기(旣)학습한 바 있다. 옥석 가리기를 통해 부실을 도려내고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을 키우면서 혁신을 가로막는 낡고 무거운 규제들을 조속히 혁파해야 한다.

옥석 가리기를 통해 과잉 대출을 걸러내되, 성실한 대출자에게는 숨통을 틔워주고 빚만 늘어나는 ‘취약 차주’는 사회안전망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극복도 마찬가지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지원하고, 한계기업은 과감히 구조조정을 해야만 한다. 신속한 옥석 가리기로 파국과 줄도산을 막아야만 한다.

특히 ‘다중채무자’들의 채무 상환 능력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지속적 파악으로 이들이 감내할 수 있는 부채 수준을 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가라앉은 내수를 늘려 침체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투자와 함께 수출로 연계시켜 재도약할 수 있다. 부자 증세로 재정을 확충하고, 정부 지출을 늘려 소비와 생산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경제 회복을 외쳐도 정부의 정책과 국회의 입법으로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상황이 달라질 리는 만무하다.

성장 동력을 재점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전에 직면한 대내외적 도전과 엄중한 시대적 갈림길에서 국민 역량을 결집해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고 선진국으로 재도약하겠다는 결연한 인수위 초심으로 돌아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구호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민·관이 지혜를 모으고 총력을 경주(傾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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