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역임)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역임)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 ]글로벌 증시 지형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경쟁국들의 반도체 증시가 강세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을 보냈던 일본 주식시장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열풍으로 새로운 랠리 모멘텀이 더해지며 사상 최고치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고, 글로벌 반도체·인공지능(AI) 대장주인 미국 ‘엔비디아(NVIDIA)’ 주가가 급등세를 나타내면서 아마존과 알파벳을 차례로 제치고 뉴욕증시 시총 3위 기업에 오르고 있으며, TSMC와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AI 열풍의 수혜를 본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대만 증시도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반면 한국 코스피(KOSPI)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초 대비 마이너스 상태다.

지난 2월 16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뉴욕증시에서 14일(현지 시각) 기준 엔비디아 주가는 전장보다 2.46% 오른 739.0달러에 마감했다. 엔비디아 시총은 이날 종가 기준으로 1조 8,253억 달러(약 2438조 원)를 기록하며 미국 상장기업 중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에 이어 세 번째로 가치가 큰 기업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전날까지 시총 3위였던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이날 주가가 0.55% 오르는 데 그쳐 시총이 엔비디아보다 낮은 1조 8,145억 달러를 기록했다. 1993년 4월 5일 ‘젠슨 황(Jensen Huang)’에 의해 설립된 엔비디아는 초기에 게임용 PC에 들어가는 그래픽 카드를 만들어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다 1999년 세계 최초로 병렬 컴퓨팅을 도입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내놓았다. 대규모 연산을 빠르게 할 수 있는 ‘가속 컴퓨팅’의 시대가 올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AI 붐’을 타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 개발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분기 실적이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고 있다. 이런 여세를 몰아 엔비디아는 전날(2월 13일) 아마존을 제치고 시총 4위로 오른 데 이어 불과 하루 만에 다시 알파벳도 넘어섰다. 엔비디아 주가는 올해 들어 약 두 달 반 동안 무려 49%나 올랐고 지난 1년간의 상승 폭은 무려 230%에 달한다. 한편 지난 2월 15일(현지 시각) 미국 S&P500지수는 5029.73으로 다시 한 번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에 이어 일본 증시도 ‘신고가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 증시 지수가 34년 만에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하며 ‘거품경기’ 당시인 1989년 말의 역사적 고점에 바짝 다가섰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닛케이 평균주가)는 엔저에 따른 사상 최대 실적과 인공지능(AI)반도체 열풍으로 새로운 랠리 모멘텀이 더해지며 지난 2월 15일 1990년 1월 11일 이후 약 34년 1개월 만에 3만 8,100선을 넘어선 데 이어 2월 16일에도 닛케이225지수는 전일 대비 0.86% 오른 3만 8,487에 거래를 마쳤다.

특히 장중 한때 3만 8,800선을 넘으며 최고치에 바짝 근접하기도 했다. 역대 최고치(종가 기준)는 일본 경제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9년 12월 29일의 3만 8,915가 최고치다. 교도통신은 반도체 관련주가 최근 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고 짚었다. 최근 주식시장 호황에 힘입어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시가총액은 약 7년 반 만에 삼성전자를 재역전하면서 대만 TSMC에 이어 아시아 2위에 올랐다. 특히 일본 시총 4위인 도쿄일렉트론이 신고가를 경신하는 등 반도체 장비주들 상승으로 닛케이225지수는 연초 대비 15.6% 급등했다. 일본 증시에서 연초 반도체 섹터 상승률은 26.0%로 자동차 22.6%, 미디어엔터 16.3%, 금융서비스 14.1%를 크게 앞섰다.

일본 증시가 오른다면 ‘반도체 강국’ 대만 증시는 치솟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에도 매수세가 집중된 결과다. 이런 가운데 대만도 일본식 저(低)PBR(주가 순자산 비율)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설 연휴 이후 첫 거래일이던 2월 15일(현지 시각) 대만 대표 주가지수인 자취엔지수는 3% 이상 급등한 1만 8,644.57로 장을 마쳤다. 전고점(2022년 1월 4일 │ 1만 8,526.35)을 뛰어 넘은데 이어 다음날 기준 자취엔지수가 최근 5거래일 간 4% 가까이 올라 2년 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한국 코스피는 1% 상승에 그쳤다. 자취엔지수는 지수내 비중이 약 30% 인 TSMC 주가 강세 영향을 크게 받는다. TSMC 주가는 올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 이후 15% 급등했다. 엔비디아 AI용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꾸준히 매수세를 끌었다. 지난 2월 15일에는 애플로부터 3㎚(나노미터 │ 10억분의 1m) 제품 외에 첨단 패키징 제품의 대량 주문 계약을 체결했다는 연합보 등 대만언론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하루에만 9%나 급등했다. 현재 TSMC 시총은 미국 달러화 환산기준 약 5,651억 달러(17조 7,300억 대만달러)로 전세계 13위다.

월가에서는 10위 내 입성도 가능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지난 2월 13일 미국 투자사 서스퀘하나 파이낸셜 그룹은 TSMC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로 유지하면서 12개월 목표가를 23% 올려 잡기도 했다. 이렇게되면 세계 2위 파운드리 업체인 삼성전자(23위)와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됐다.

이렇듯 경쟁국들은 반도체 특히 증시 지형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데 편승하여 활황에 기댄 ‘반도체 증시 잔칫상’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정작 조용한 터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AI 반도체가 탑재된 IT 기기가 향후 신규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KB증권(김동원 연구원 │ 이투뉴스 윤수은 기자 취재)은 글로벌 온디바이스 AI(스마트 폰 + PC) 출하량은 2023년 2,900만 대에서 2024년 3억 대로 무려 10배 증가하고, 출하 비중(스마트 폰 : 23년 1%, 25년 43% / PC : 23년 10%, 25년 32%)도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어 “향후 수년간 AI 반도체 수요는 공급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AI 반도체 공급 업체는 극히 제한돼 있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실적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강조한다. 한편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삼성 파운드리 사업은 향후 AI 반도체 수요 증가가 실적 개선의 돌파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김동원 연구원은“따라서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SAFE) 파트너인 팹리스(딥엑스, 리벨리온), 디자인하우스(가온칩스, 세미파이브) 업체들도 중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AI 업체마다 자체 반도체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반도체 위탁생산, 파운드리 분야가 한층 더 주목받고 있다. 챗 GPT를 만드는 ‘오픈 AI’의 ‘샘 올트먼(Samuel Harris Altman)’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한국을 찾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1월 25일 저녁 늦게 한국을 찾았으며 26일 오전 반도체 생산라인 등을 둘러보기 위해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했다. 삼성전자의 경계현 사장 및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잇따라 만났다.

울트먼 CEO의 이번 방한은 ‘오픈 AI’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선두업체로 자리잡고 있지만, 최근에 반도체 등 하드웨어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반도체 분야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한국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AI 연산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량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는 이 시장을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다. ‘오픈 AI’는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합쳐 시대를 이끌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울트먼 CEO는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업체를 물색하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오픈AI 주도로 엔비디아의 독점에 대항할 연합군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의 삼성전자는 메모리 생산능력은 물론 파운드리 사업을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삼성과 칩(Chip) 설계부터 손을 잡으면 최근 ‘생성형 AI)’로 급격하게 뜬 고대역폭메모리(HBM │ High Bandwidth Memory)까지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오픈 AI’에게 삼성전자는 최적의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어쩌면 AI 서버 구축에 쓰이는 HBM 등 D램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요 회복이 더뎠던 낸드플래시 메모리도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기기 자체에서 AI를 구현하는 이른바 ‘온 디바이스 AI’가 보안성과 작업 속도 등의 강점을 인정받으며 저장 용량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양대 축인 메모리 반도체와 위탁생산 분야 모두 긍정적 전망이 지배적인 만큼 반등의 강도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호기(好機)를 맞은 셈이다.

무역 의존도가 75%나 되는 한국으로서는 수출 확대 없인 먹고살기 힘든 나라다. 첨단산업의 수출경쟁력 상실은 당연히 국가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급물살을 탄 인공지능(AI) 혁명과 이로써 촉발된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은 한국 경제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이제라도 서둘러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통찰력과 시장 지배력 강화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선제적·공격적 경영을 통해 우리 대표 기업들이 글로벌 수출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길 기대한다.

정부는 경제활력 촉진을 위해 수명을 다한 악성 규제들을 면밀한 재점검을 하고 과감한 수술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탄탄한 공급망을 뒷받침하고 ‘팹리스(Fabless │ 반도체 설계)’,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 생산)’ 등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최첨단 시스템반도체 허브로 키워야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두뇌의 전문인력 육성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지난 1월 16일 미국의 AI 개발 업체 AIPRM은 한국이 지난해 수준으로 AI 투자를 이어갈 경우 미국이 2040년에 도달할 기술력을 따라잡는 데 447년이 걸릴 거라는 분석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AI 크레바스(Crevasse │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를 넘기 위해서는 결국 기업에 대한 강력한 지원과 규제 완화가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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