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역임)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역임)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고물가·고금리의 장기화로 건설 비용이 급증한 가운데 내수 경기까지 나빠지면서 상업용 설비에 대한 건설 투자액도 덩달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쇼핑몰·오피스 등 상업용 건설 수주가 1년 전보다 90% 가까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나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약 26년 만의 최대 낙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조업의 주요 투자 지표인 공장·창고 건설 수주액이 올 1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51.4% 감소한 7,024억 원에 그쳤다. 1월 기준으로는 2014년(-58.6%) 이후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사무실·점포 건설 수주액은 86.67%나 줄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월 86.72%의 감소 이래 최악의 감소 폭을 기록한 것이다. 공장과 사무실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는 것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과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올해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 Business Survey Index)에서 기업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전체 산업 기준 BSI가 3년 5개월 만에 최저인 68에 그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마이너스(-) 7포인트로 부진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BSI가 100을 밑돌면 기업인의 경기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은행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 대출 부실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만큼, 적극적인 건전성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채위험이 증가하면 금융권 부실이 증가하고 거시건전성이 악화해 자본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자구 노력과 금융사 및 금융당국의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다수 국내외 기관들은 반도체 경기 회복에 따른 수출 개선에 힘입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1.4%에서 2%대로 올라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지난 3월 15일 발간한 ‘KERI 경제 동향과 전망 : 2024년 1분기’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가까운 2.0%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했다.

하반기에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내수도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한경연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세계 경제 개선에 따른 수출 호조로 회복세를 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내수는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하반기 이후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사이 기업들의 성장 동력이 꺾이고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면 경기 회복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일부 민간 연구소들이 올해 1.7~1.8%의 낮은 성장률을 예고할 정도로 우리 경제가 직면한 불확실성이 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2.2%로 전망했고,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정부 전망보다 낮은 2.1%로 내다봤지만, 신한투자증권(1.7%), LG경영연구소(1.8%), KB금융지주(1.8%), 자본시장연구원(1.9%) 등이 나란히 1%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기관은 수출 개선세에 비해 내수 회복이 더뎌 성장세 확대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와 가계의 이자 부담, 부동산 경기 부진 등이 성장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둔화가 지속되고 있으나 수출이 회복되면서 경기부진을 완화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KDI는 지난 3월 10일 발표한 ‘3월 경제동향’에서 “건설기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였으나 고금리기조가 지속되면서 소비와 투자부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라면서 “그러나 반도체 호조에 따른 수출회복세로 경기부진 완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반도체 중심의 수출 경기 회복에서 소외된 대다수 중소·중견 기업들이 고물가·고금리 등의 파고를 넘지 못해 도태된다면 우리 경제가 입을 손실은 심히 막대할 것이란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지난 3월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사무실·점포 건설 수주액 감소세는 2022년부터 본격화한 것이라 분석된다. 서울경제(심우일 기자) 보도에 의하면 통계청의 연간 데이터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년보다 8% 감소한 2020년을 제외하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사무실·점포 건설 수주 총액은 줄곧 증가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2022년 들어 2.6%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무려 38.1% 급감했다. 연간 감소 폭으로 보면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당시인 1998년 -67% 이후로 가장 컸다.

제조업의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창고·공장 건설 수주액도 지난해 35.1%나 감소해 2009년 -42.9% 이후 감소 폭이 가장 가팔랐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건설 수주는 발주자와 건설사가 공사 계약을 맺은 금액을 말한다. 통상 실제 건설투자(건설기성)에 반영되기까지는 1년에서 1년 6개월 사이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동안 사무실·점포 부문 건설 수주가 2022년 무렵부터 내림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상업용 시설에 대한 건설 투자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전문가들은 고물가로 인해 금리가 당분간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소비 악화가 건설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 설령 금리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물가 대비 소득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내수 진작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 분명해 보인다.

소비가 이자율보다는 실질소득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로서는 향후 금리가 떨어진다 해도 실질소득 수준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결코 소비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커 내수 부진은 계속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이처럼 소비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대표적인 투자 지표인 건설수주마저도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향후 건설경기 불확실성도 커졌다.

한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과 경기 부진에 따른 국내 주택경기 침체를 해외 수주로 돌파한다는 전략을 세운 건설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수주 실적이 전년 대비 48.3%나 급감한 것이다. 수주 목표로 제시한 400억 달러의 달성은 현대건설·대우건설 등의 대형 원자력발전소의 수주 여부에 좌우될 전망이다.

지난 3월 13일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거둔 수주 총액은 올해 2월 29일 기준 21억 5,000만 달러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거둔 41억 6,000만 달러에 비해 겨우 51.7%에 머무른 수치다. 수주 건수는 전년 109건에서 올해 133건으로 22%, 진출 업체는 152개 사에서 163개 사로 7.2%나 각각 늘었음에도 수주 규모는 전년 대비 20억 1,000만 달러(48.3%↓)나 줄어 반토막난 것이다. 이는 주요 건설사들이 올해 2월까지 대형 수주에 실패한데다, 중동과 유럽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수주가 급감한 결과로 보인다.

꺼져가는 경기의 불씨를 살리고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릴 비책(祕策)은 기업들의 적극적 투자로 성장 동력을 재점화하는 것뿐이다. 그러려면 우선 면밀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정부 지원에 의존해 연명하는 ‘좀비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

기업 대출의 경우 대부분 보증상품이기 때문에 은행의 손해가 크게 발생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기업들이 대출부실화로 죽어간다. 은행은 더 늦기 전에 기업 대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고, 자산과 부채, 자본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 대출부실화를 막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그 대신에 생존 능력이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모래주머니’ 같은 규제 사슬을 과감히 풀고 금융·세제 등의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정부와 건설사들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형 도시 건설 계획인 ‘네옴시티’에서의 대규모 수주를 비롯해 해외 초대형 원자력 발전소의 수주, 체코 두코바니(Dukovany) 신규 원전 사업 수주, 9,0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 등 수주에 국가역량을 총 집주(集注)하여 유연한 선제적 대응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또한 “기업이 뛰어야 경기가 살아난다”라는 결연한 의지와 각오로 대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허리인 중견·중소 기업들도 마음껏 뛰게 할 수 있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경기 부진의 어둡고 긴 터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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