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이 그동안 금기시해 왔던 한국형 토빈세 도입의 공론화에 나섰다. 정부가 공청회를 열어 외환거래와 채권거래에 세금을 매길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금융시장 참가자들과 학계의 반발도 거셌다. 그러나 정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때 준비한다면 때는 이미 늦다’며 ‘한국형 토빈세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30일 금융연구원과 함께 서울 은행회관에서 ‘국외자본 유출입 변동성 확대,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의 공청회를 열어 금융시장 관계자들에게 토빈세 도입을 포함한 정부가 검토 중인 ‘환율 변동성 완화 대책’의 상당수를 공개했다. 이날 정부 측 대표로는 외환정책을 담당하는 최종구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나섰다.

이날 공개된 정부 대책의 핵심은 ▲외환거래세 도입 ▲채권 거래세 도입 ▲공기업의 불필요한 해외차입 억제 ▲은행들의 선물환 거래 여력 축소 ▲NDF 거래분 가중치 도입 ▲NDF거래 중앙청산소(CCP) 이용 의무화 ▲ 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 강화 등이다.

이 같은 내용이 공개된 2시 30분. 원·달러 환율은 장 막판까지 10원 가까이 올랐다. 이날 발표된 대책 하나하나가 외환·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날 공청회에 참가한 상당수 금융시장 참가자들과 학계 관계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거래를 위축시킬 수 있고 환율 변동성이 한자릿수에 머물던 지난해 외환시장의 사정을 감안할 때 이런 논의가 시기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최근의 환율 하락세는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정부가 이 정도 하락세에 엄살을 떨면 시장이 혼란스러워진다”고 주장했다.

이정희 JP모건 대표는 “스웨덴과 브라질의 선례를 살펴볼 대 토빈세 도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50조원이 넘는 시장에 거래세를 단 0.01%만 부과해도 2조원”이라며 “이 비지니스가 2조가 되는 마켓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진우 NH농협선물 리서치 센터장은 한층 목소리를 높여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적절한 활력으로 토빈세를 도입할 경우 거래량이 급감할 것”이라며 “외환시장 거래가 중국에 모조리 뺏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을 열어줬으면 시장을 움직여 줘야지 기업도 정부도 아래위로 10원~20원으로만 움직이라고 하면 차라리 달러 배급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센터장의 강한 어투에 장내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최 차관보는 “이 센터장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 꼭 해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걱정이 많으신 거 보니 효과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가볍게 농담을 던지며 정부의 입장을 또박또박 읽어 내렸다.

마지막 발언자였던 최종구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파고가 더 세지는 것이 보이고, 아직 먼일이긴 하지만 보이는데, 제방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며 “3종세트라는 것들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지만 자본 유출입 규모를 조절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강조했다.

최 차관보는 “해외 투기 자본의 단기 유출입 규제를 위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수정한 다양한 외환 거래 과세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로서는 최소한 이러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해 공감대를 얻어 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최대한 빨리할 수 있도록 깊이 있게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교수들과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의 양적 완화 정책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에 최 차관보는 “미국과 일본이 양적 완화에 나서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문제는 기축통화국의 스필오버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에게 부과되는 숙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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