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오너를 향한 느슨한 법적 잣대는 더 이상 기대하지 말라'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려 개인적인 선물 투자에 전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53)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로써 경영비리로 기소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이어 최태원 회장까지 실형이 선고되자 재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경영공백이나 경제기여란 미명하에 온정주의로 흘렀던 그동안의 재벌우대 관행을 더이상 기대하기 힘들어진 양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에 이어 최태원 회장에 이르기까지 사법부가 보여주는 일련의 흐름은 '재벌 봐주기'를 더 이상 기대하지 말라는 선긋기 모습"이라며 "현재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여타 재벌총수들도 긴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재벌총수 '실형' 이어지나…집행유예 관행 깨져

이날 법원은 최근 재벌총수의 경제 범죄에 대해 실형이 선고되는 추세를 그대로 보여줬다. 앞서 횡령, 배임 등으로 회사에 4800억 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 8월 징역 4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현재 구속집행정지 상태다.

박찬구 회장은 300억원가량을 횡령하고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100억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도 판결을 앞두고 있다. 담 회장은 300억원대의 회사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작년 6월 구속돼 10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지난 1월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풀려났다.

검찰의 항소로 3심이 진행 중이다. 1400억원대의 회사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은 2월 1심에서 징역 4년6월을 선고받았으며 2심이 진행 중이다.

탈세와 재산해외 도피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300억원대 CP(기업어음) 부정발행 의혹을 받고 있는 구자원 LIG 회장과 구본상 부회장 등도 검찰수사와 재판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이에 대해 대기업 관계자는 "죄가 있다면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경제 위기로 강력한 오너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에 대기업 총수가 법정구속돼 안타깝다"며 "앞으로의 재판에서 기업인들이 지나치게 중한 형량을 선고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 재계 "각오는 하고 있지만..."... 새정부 기조에 촉각

최태원 회장의 실형을 바라보는 재계의 심정은 '충격'과 '당혹' 그 자체다. 어느정도 느낌은 있었지만 실형까지는 안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유죄 선고에 대해 SK 관계자는 "힘들 게 됐다"며 "아직 구체적인 대응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 변호인단과 상의를 해서 항소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같은 사태에 대비해 이미 '따로또같이 3.0체제'를 공표하는 등 어느정도 준비를 했다"며 "다만 최 회장이 직접 챙겨온 글로벌 또는 사회적 기업 사업 부문은 조금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법정 최소형량 선고했다" 시선도 여전

이날 최태원 회장에 대한 법원의 선고내용을 놓고 '최소 형량'이라는 시선도 여전했다. 엄중한 법적용을 원칙으로 삼는 듯하지만 여전히 상하한선의 하한선으로 맞춰주고 있다는 것.

실제로 이날 판결에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윤석열)는 지난해 11월22일 결심 공판에서 최태원 회장에게 징역 4년, 최재원 부회장과 김준홍 대표에게 징역 5년을 각각 구형했다.

대법원 양형 기준은 300억 원 이상 횡령과 배임 범죄에 기본형으로 징역 5~8년, 감경시 징역 4~7년을 권고하고 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원범 부장판사)는 이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날 재판부는 "최 회장이 펀드 출자금에 대한 선지급금 명목으로 계열사로부터 교부받은 497억원을 횡령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관련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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