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업 최태원 회장이 주도… 신인도 하락·자금조달도 걱정

1일 아침 7시 30분. 서울 서린동 SK 본사 35층 대회의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김창근 의장(부회장)을 포함한 주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 20여명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 나타났다.

그룹 CEO 회의가 이렇게 아침 일찍 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전날 법원에서 전격적으로 최태원 회장을 법정 구속하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CEO들은 "계열사마다 자금 조달 상황을 점검하고 해외 파트너 사이에 신인도가 내려가지 않도록 뛰자"고 결의했다.



중·장기 투자 건 올스톱 우려

회의결과에 따라 SK그룹은 최 회장의 부재(不在)로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사업에 대해 긴급점검에 들어갔다. 가장 큰 현안은 SK하이닉스 투자다.

최 회장은 지난해 그룹 대부분의 권한을 수펙스추구협의회로 넘겼지만, SK하이닉스와 자원개발 등 해외사업은 직접 관장하기로 했다.

하이닉스는 작년 4분기(10~12월) 흑자 전환했지만 여전히 매년 3조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집행해야 한다.

최 회장은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에서는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과 존 챔버스 시스코 회장 등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거물들을 만났다.


또 하나는 해외 사업이다. 해외에서는 그룹을 대표하는 대주주 겸 오너가 움직이는지에 따라 사업 추진 결과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SK그룹은 하나의 기업으로 봤을 때 미국 포천 500대 기업 중 60위권으로 평가된다. 이런 기업을 대표하는 회장이 활동을 못한다는 것은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 회장은 지난달 태국 등 동남아시아를 방문했다. 앞서 지난해 태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PTT그룹 페일린 추초타원 CEO를 만나 미얀마와 같은 동남아시아 시장에 공동진출하기로 합의한 것에 이은 후속 절차였다.

이어 최 회장은 3월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열리는 보아오 경제포럼 참석에 이어 미국 실리콘밸리·중남미·두바이 출장도 연이어 잡아 놓고 있었다.

다른 기업도 노심초사

재계에선 SK그룹이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국 기업 대부분은 그룹 회장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룹 회장에게 경영상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흔들리게 된다.

한화그룹은 작년 8월 김승연 회장 구속(현재 건강악화로 구속집행정지) 이후 이렇다 할 경영 진척이 없다.

이라크에서 8조원짜리 신도시 공사를 따내고 정유플랜트·태양광 사업 후속 공사를 노렸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올해 초 예정돼 있던 정기 인사도 미뤘고, 올해 투자 계획도 확정하지 못했다.

10대 그룹에 속하는 한 임원은 "재계 3위 회장이 법정 구속당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기업도 문제가 생기면 이제 큰 피해를 각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일 경찰청이 중소기업에 횡포를 부리는 대기업을 직접 수사하겠다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자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당초 예상보다 더 큰 정치·사회 리스크가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본업인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우리 정치·사회에서 요구하는 투명 경영·사회 공헌·중소기업 상생 경영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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