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부재에 '발목잡기 야당' 이미지 되살아나

민주통합당이 대선 패배 이후 석달이 지나도록 방향타를 잃은 난파선처럼 표류하고 있다.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 전열을 새롭게 가다듬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을 확립하고 국민이 바라는 정치개혁과 정당 쇄신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지만 민주당의 속살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대선 패배 책임 공방만 벌이다 논란끝에 5·4 전당대회 개최를 결정했지만 계파간 이전투구식 '전대 룰' 다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반성과 성찰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대선판에 넘쳐나던 '새 정치' 구호도 실종된 지 오래다.

5·4 전대의 대결구도 역시 식상하긴 매한가지다. 주류-비주류, 즉 '친노(친노무현)냐, 아니냐'의 낡은 구도에 파묻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나 정책 노선 경쟁 가능성을 엿보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전대 효과'가 불투명해졌다는 점도 어떻게든 위기에서 벗어나 보려는 민주당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전대 열흘 전에 치러지는 4·24 재보선이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출마 선언으로 애초보다 판이 커져 버려 5ㆍ4 전대의 흥행 가능성이 작아진 때문이다.

수도권 출신의 한 재선 의원은 10일 "지도부 공백 속에 계파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또다시 안 전 교수 눈치를 보게 됐다"며 "개혁도, 쇄신도, 정치력도 모두 실종됐다"고 한탄했다.

19대 국회 들어 의석이 127석으로 크게 늘었지만, 원내 전략은 여전히 미숙하기만 하다. 벌써 두 달째 표류하는 정부조직법 협상은 민주당의 '발목잡기 야당' 이미지를 되살리고 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새누리당의 '무기력'을 꼬집는 여론도 많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트집이나 잡고 딴죽을 거는 야당성은 없어져야 한다"고 했고, 박기춘 원내대표도 "발목잡는 국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국회로 비쳐선 안 된다"고 누차 말했지만, 허언이 된 셈이다.

지도부의 협상력 부족은 '발목잡기 야당'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민주당은 그동안 정부조직법 원안 통과에 반대하다 지난 6일 돌연 3대 조건을 수용하면 원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MBC 김재철 사장 퇴진 및 검찰 수사, 언론청문회 개최 등 요구사항은 정부조직법 본질과는 사실상 무관한 것들이었다. "정부조직법을 '볼모'로 활용한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민주당은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이처럼 내우외환의 총체적 위기 국면에서 허덕이는 민주당은 안 전 교수의 정치 재개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미디어 리서치가 지난 6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안철수 신당'이 등장하면 민주당 지지율은 20.1%에서 10.6%로 급락해 23.6%인 안철수 신당에 2위 자리를 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전문가는 물론 당내 의원들은 한결같이 민주당이 지금이라도 서둘러 돌파구를 찾아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조직법 문제에서 벗어나 5·4 전대에 주력하며 향후 안 전 교수 진영과 선의의 경쟁이나 협력을 통해 '윈-윈'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충고했다.

자치단체장 출신의 한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청와대와 여야 3각축이 참 볼품없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며 "먼저 통 크게 양보하는 쪽이 결국 게임에서 이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출신 재선인 노웅래 의원은 "안 전 교수가 신당을 만들든 말든 간에 전당대회를 치러 책임있는 지도부를 선출하고 당을 혁신해 안 전 교수와 하나가 되든, (경쟁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노원병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방법으로 안 전 교수의 국회 입성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안 전 교수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고, 안 전 교수도 만약 이번에 신세를 지면 마음의 빚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5·4 전대에서 민주당이 어떤 지도부를 배출하느냐에 따라 양측이 앞으로 연대할지, 따로 갈지가 결정되지 않겠느냐"며 "어떤 경우든 간에 민주당은 안 전 교수 측과 혁신경쟁을 하면서 가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호남 출신의 황주홍 의원은 두 진영의 경쟁 방식과 관련해 "양측이 '제로섬' 게임처럼 배타적인 경쟁을 벌이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도 그렇고, 국민의 일반적인 정치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협력적 경쟁 관계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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