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 겹친 '재계 10위 한화',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한화 그룹이 김승연 회장 구속된 이후 좌초하고 있다. 투자도 인사도 신규 사업도 올 스톱인 상태로 그룹이 사상초유의 위기에 처했다.

80억 달러의 이라크 건설사업이 회장 구속으로 인해 지지부진하고 사내 팀장들 역시  총수의 공백으로  큰 사업과 관련된 사안들은 결정을 짖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악재가 겹쳐 주가가 곤두박질하고 있다.

코스피가 5.2% 상승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한화 주가는 26.5% 하락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대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태양광 사업과 석유화학도 실적악화로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 그룹은 요즘 이라크 사업 때문에 그룹 전체가 애를 태우고 있다. 한화는 지난해 5월 80억달러짜리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추가 수주와 관련해서 이라크 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당혹해 하고 있다.

한화는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맘때 발전소, 정유시설, 병원, 태양광 등 100억달러(11조원) 규모의 추가 수주에 대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처럼 이라크가 별다른 연락을 해 오지 않자 그룹의 한 임원은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 측에서 대화 상대였던 김승연 회장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자 이라크 정부가 한화 그룹의 중장기 전망이 불확실하다고 의구심을 갖는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화의 걱정 근심은 이것만이 아니다. 벌써 4월이지만 한화는 올해 투자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또 49개 계열사 대표이사와 임원 승진과 같은 정기인사조차 실시하지 못하고 있어 그룹내의 모든 시간은 제로 상태다. 

부장급 이하 인사는 지난달 1일자로 단행했지만, 최소 인원만 발령냈을 뿐이다. 한화 내부에서조차 불안해 하는 모습이다. 한화가 외환위기 때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그룹이 뒤숭숭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중장기 전략, 투자, 인사 면에서 비정상적인 상황은 없었다는 것이 그룹 임원진들의 말이다.

재계에선 한화그룹의 이런 상황을 2년 반이 넘게 걸린 검찰 수사와 재판의 후유증이라고 본다. 2010년 9월부터 검찰은 13회에 걸쳐 서울 장교동 본사빌딩 등 37곳을 압수수색했고, 소환된 임직원만 350명에 달했다. 이때부터 그룹이 해야할 목표가 엉뚱한 곳으로 방향타가 맞춰졌다. 중장기 전략보다는  검찰 수사와 재판 대응이 그룹의 우선순위가 되어 버렸다.

한화 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8월 1심에서 계열사에 손실을 끼친 업무상 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된 이후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더욱이 지난 1월에는 구속집행정지를 받고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기까지 했다. 그룹 관계자는 "법정 구속 이후 지금까지 한화 임원 중 어느 누구도 그룹 현안을 들고 회장님에게 보고한 적이 없다"고 했다.

속담에 구관이 명관이라 했다. 총수 체제를 대신하는 계열사별 경영도 한계는 있다. '최금암' 그룹 경영기획실장이 모든 업무를 주도하며 그룹 일을 꾸려가고 있는 상황이고 각 계열사는 자체적으로 일상적인 일을 처리한다. 가장 큰 문제는 결정권자가 없다는 데서 오는 업무의 한계다. 계열사별 팀장급 이상은 오전 7시까지 출근한다. 하지만 총수가 '오케이'하지 않는 천억, 조(兆) 단위 중장기 투자전략 설정은 이 시점에서 꿈도 못 꾼다. 참 어려운 실정이다.

한화의 전략적인 사업으로 잘 알려진 중국에 있는 태양광업체 한화솔라원은 한화가 모든 역량을 쏟는 사업이다. 그러나 기획실장으로 재작년 발령냈던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차장은 부친인 김 회장의 재판과 관련해 요즘 중국보다 한국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부친의 재판에 직접 관여하고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재판과는 별도라고 하지만 총수가 없는 사업이 제대로 굴러갈수가 없다. 태양광, 석유화학 사업이 이를 입증하듯 한화그룹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신성장 동력으로 지목했던 태양광 산업의 경우 실적 악화로 적자 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화케미칼의 연결 기준 지난해 영업이익은 단 52억원이었지만 계열사인 한화솔라원은 1491억원의 적자를 냈다.

주가도 예외일순 없다. 업황과 그동안의 재판 결과가 주가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  서울 서부지검이 서울 장교동 한화 본사를 압수수색한 날짜는 2010년 9월 16일이었다.  4만4100원의 종가를 유지 했지만 2년 반이 지난 8일 종가는 3만2400원으로 26.5%나 내려갔다. 또한 같은 기간 코스피는 1823.9에서 1918.7로 5.2% 올라간 것을 감안하면, 유독 한화 주가가 맥을 못 추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일부 재계에서는 한화의 김승연 회장의 구속을 두고 경제 민주화 바람에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동정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좌초하고 있는 한화를 향해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국내 자산순위 10위인 한화그룹이 총수 한 명 때문에 흔들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런 우려에 대하여 장일형 한화 경영기획실 사장은 그룹이 구조적으로 "시스템으로 움직일 만한 일과 그룹 총수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 것이다"며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의 총수는 미래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고, 사업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지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김승연 한화 그룹 총수의 구속이 주는 의미를 다시한번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제 과거와는 달리 그룹 총수에 대한 높아진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사법부가 보여준 태도는 김승연 회장 등에게 적용한 업무상 배임 죄목에 대해선 엄격하게 적용하고 과거 재판부가 재벌 총수 재판에서 배려했던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도는 사라지는 것을 봐 왔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는 15일 내려질 김승연 회장에 대한 2심 판결은 향후 재벌 총수에 대한 재판부의 잦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해 판결의 결과를 주의깊게 모두가 바라보고 있다.

어찌되었던 한화 그룹이 선장도 없이 바다 한 가운데서 지금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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