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구원등판 뿌리친 이유있다

민주당에서 서청원의 대항마로 손에꼽던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10월30일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손 고문은 지난7일 오전 김한길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당 대표의 충정을 생각해 나 자신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았으나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지금은 자숙할 때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불출마 입장을 최종적으로 통보했다.

손 고문의 의지와는 다르게 당내 초선 의원 35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손 고문 개인에겐 가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려운 시기에 국민이 손 고문을 부르고 있다"며 화성갑 보선 출마를 촉구했으나 결국 손 고문의 결심에 영향을 주진 못했다.

손 고문의 이러한 결심은 지난 4일 김 대표와 회동에서 불출마 입장을 전달한 데 이어 5일에도 김 대표의 재회동 요청까지 거부하며 확고한 불출마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화성 갑,보궐 선거에서 서청원 후보의 대항마가 오로지 손 고문이라는 생각에 지난 6일 김 대표가 당내 손학규계 인사 20여명이 모인 자리까지 직접 찾아와 '삼고초려'의 모양새를 갖추기까지 했지만 손 고문은 "조금 시간을 갖고 국민 뜻을 들어보겠다"고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분위기로 봤을때 당 안팎에선 손 고문이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출마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손 고문은 장고를 거듭한 끝에 불출마를 선택했다. 이에 따라 이번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된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 고문간 거물정치인들의 '빅매치'는 이루워지지 않게 됐다.

불출마를 결심한 손 고문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손 고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의 한 사람으로서 대선에서 패배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이 시점에서 보선에 나가는 데 대한 부담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손 고문측이 전한 말이다.

손 고문의 한 측근은  "손 고문이 김 대표에게 밝혔듯이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인 그가 좀더 시간을 갖고 지금은 자숙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다며 국회의원 보선이 생기자마자 출마를 한다는 것이 자칫 국민들의 눈에는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비쳐질 것 같아 우려가 컸다"고 밝혔다.

또 한가지는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상임고문이 2009년 4·29 전북 전주 덕진 재보선에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가 정치적 타격을 입었던 전례도 손 고문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아울러 단수후보로 내정된 정세균계인 오일용 현 지역위원장은 물론 일부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손 고문의 출마를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리는 등 당내 반발이 있었다는 점, 이번 공천 문제가 당내 계파간 문제로 비화됐던 것 또한 손 고문이 불출마 의지를 굳히는 요인이 됐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했다.

손 고문측은 김 대표가 손 고문을 찾아와 설득하는 과정에 정세균 상임고문이 오 위원장의 후원회장으로 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후원회 초청장을 보내고, 오 위원장이 손 고문의 출마반대 기자회견을 했던 것들에 대해 손 고문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마음이 떠난 손 고문에게 정세균 상임고문이 지난 6일 손 고문측에 "출마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전달하긴 했지만, 손 고문의 마음을 돌리는 데엔 역부족이었다.

오 위원장 역시 지역 위원장으로서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출마 의사를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 고문 주변에선 "당 대표가 어려운 상황에 출마해 달라고 삼고초려까지 하고 있는데, 정세균 고문이 손 고문의 출마를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맥빠진 소리 아니냐"라는 항변의 목소리가 나온다.

손 고문측의 항변에 대해 정세균 고문측에선 "정 고문이 손 고문에게 직접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고, '적극 돕겠다'고 문자 메시지까지 남겼다"고 손 고문측의 의견에 반박했다.

그러나 외형적인 면들만을 가지고 손 고문의 불출마설을 합리화 시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당 일각에선 손 고문의 불출마는 결국 '당선 가능성'이라는 현실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는 것이 다소 설득력이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화성갑 지역은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은 지역"이라며 "손 고문이 당을 위해 희생한다는 의지가 컸더라도 대권에 도전하려 하는 거물이 결국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겠느냐"라고 지적했다.

한 점의 희망도 손 고문이 최종적으로 불출마 입장을 통보함에 따라 김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민주당으로서는 손 고문의 출마를 계기로 지금 민주당이 수세에 몰려있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과 관련, 검찰의 중간수사결과를 수세국면용 정면 돌파라는 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이런 통보를 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김한길 대표는 일단 화성갑 공천을 마무리하기 위한 공천심사위 개최를 지시하고 상황 수습에 나섰다. 공심위는 이날 오후 4시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갖고 화성갑 보선에 지역구 위원장인 오 위원장을 후보로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공심위 이후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오 위원장 공천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가진 시민사회원로와의 오찬간담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재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화성 지역에 대한 공천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의 대항마로 민주당이 그토록 구원을 요청했던 손 고문이 출마를 거부하자 김 대표와 손 고문간에 미묘한 감정도 이어질듯 하다.

출마 시소게임에서 공천이 지연된만큼 향후 선거 결과에 따라 김 대표와 손 고문의 정치적 리더십에 어느 정도 타격은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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