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대학교 이윤범 교수(자료사진)
이윤범 청운대 교수

[중앙뉴스=이윤범 칼럼니스트] 예전에는 베트남하면 베트남전쟁을 떠올렸다. 요즘에는 베트남하면 박항서다. 그는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한 기업가도 아니고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주석과도 관계가 없다.

그는 본인이 고백했듯이 한국 축구의 변방에서 퇴출 위기에 있었던 감독일 뿐이다. 그랬던 그가 베트남의 영웅이 되어 베트남인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고 있다.

베트남은 길고 긴 고난의 역사를 간직한 체 경제도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국가다. 천년 이상 중국의 지배를 견뎌내고, 식민 지배국이었던 프랑스를 물리쳤다.

간곡히 피하고만 싶었던 미국과의 전쟁에서 베트남은 불사조처럼 미국전에도 승리를 이루었다. 그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축적된 인내와 불굴의 정신이 베트남을 상징하는 축구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다.

베트남은 알려진 것과 달리 축구에 울고 웃는 국가이다. 120년 전 프랑스에 의해 소개된 축구는 베트남인들의 삶속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놀랍게도 동남아시아와 관련된 축구 경기뿐만 아니라 유럽의 프로축구와 전 세계의 축구 경기가 매일 중계되고 있다.

수많은 베트남인들은 밤을 새워 전 세계의 경기를 시청한다. 심지어 밤새도록 축구 경기를 보다가 아침에 그냥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즘 베트남의 축구 광풍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꾸준히 그 열풍이 잠재되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실시한 혁신이 선수들의 단합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주석이 국민을 단결시켜 세계 최 강대국들과 전쟁을 해서 승리를 거두었듯이 박 감독도 개인주의가 만연한 선수들을 단합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스마트 폰과 멀어지고 대신 팀원들과 소통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베트남 문화를 아주 잘 간파한 박 감독의 통찰력도 눈에 띈다. 주의가 필요할 때 개인적으로 따로 불러 아무도 모르게 설득을 하여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 준 것이다.

이는 베트남 노동자들을 관리해야 하는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 인력 관리팀들이 익혀야 하는 필수 지식인 것이다. 베트남이 세계 최강국들과 전쟁에서 승리한 자존심이 베트남인들에게 고스란히 내려온 다는 것을 박 감독은 파악한 것 같다.

그럼 박 감독의 이런 리더십은 어디서 왔을까? 우선 그는 선수시절에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좌절을 수없이 겪으면서 겸손이 몸에 밴 것이다. 자칫 선수들을 무시해서 소위 갑질로 변질되기 쉬운 순간순간을 특유의 스킨십을 통한 아버지 리더십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주 세밀하고 강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감독이라는 평가도 많다.

이제 박 감독은 베트남의 영웅이 되었다. 베트남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최고의 외국인이 된 것이다. 베트남에서 그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는 베트남인을 쉽게 볼 수 있고, 심지어 그의 헤어스타일을 모방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말을 베트남인들에게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그는 단지 베트남의 영웅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그는 한국의 영웅이기도 하다. 베트남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히 열광적이다.

베트남 전에 한국군 참전으로 인한 반한감정도 그가 모두 바꾸고 있는 분위기다. 또한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대략 3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도 박 감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박 감독이 베트남에 한류를 폭발적으로 고취시키고 있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5천여 개의 한국 기업이 베트남의 내수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호감도에 따라 상품을 선호하는 베트남인들의 문화에 비쳐볼 때 박 감독이 한국에 이바지한 효과는 가히 측량할 수 없다. 그 어느 누구도 이처럼 한국의 국익에 기여한 인물은 예전에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전후무후 한 것이다.

심지어 아세안 컵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한국인들도 한국 축구팀의 경기를 보는 것보다 베트남 축구팀의 경기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유사 이래 이렇게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밀접해지는 시기는 없었다.

경제교류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 베트남의 직항 비행기는 연일 만석을 기록한다. 이런 양국의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스포츠 감독이 절대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다만 “인기는 바람과 같다”라고 한 박 감독의 말이 한순간의 드라마로 끝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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