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농협판 ‘숙청’ ·· 이성희 회장 시대 줄줄이 ‘물갈이’
반복된 농협판 ‘숙청’ ·· 이성희 회장 시대 줄줄이 ‘물갈이’
  • 박효영 기자
  • 승인 2020.03.05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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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농협중앙회장 시대 
잘 나갔던 이대훈 농협은행장 바로 물러나
이런 파워 게임은 왜?
숙청 바람 어디까지
존재감 보여줘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농협에 숙청 바람이 불고 있다. 244만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고, 자산 총액 60조원 규모에, 재계서열 10위인 농협이다 보니 컨트롤타워의 회장이 한 번 집권하면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이뤄진다. 계열사 사장이 돈을 많이 벌어다주고 직전에 연임됐더라도 전임 회장의 최측근이라면 숙청 대상이다. 

압도적인 분위기에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지난 1월말 신임 농협중앙회장으로 선출된 이성희 중앙회장(24대) 체제 하에서 이대훈 전 NH농협은행장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사실이 4일 알려졌다. 

지난 1월31일 농협중앙회장으로 당선된 이성희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 전 행장만이 아니라 계열 조직의 수장 6명(이상욱 전 농민신문사 사장/김위상 전 농협대학교 총장/허식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소성모 전 농협상호금융 대표/김원석 전 농업경제 대표/박규희 전 조합감사위원장)이 임기를 남겨놓고 쫓겨나다시피 관두게 된 것이다. 차기 수장들은 이 회장의 장악력을 높여주는 인사들이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 안에서 농협은행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 전 행장은 높은 실적 달성(당기순이익 1조원대)을 인정받아 농협 역사상 최초로 3번 연속 임기를 연장할 수 있었다. 3번째 연임 결정 시점과 이 회장의 당선 시점은 비슷하다. 그런데 날라갔다. 그만큼 중앙회장직의 힘이 막강하다는 게 재확인됐다. 이 전 행장은 김병원 전 회장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기 때문에 이 회장 입장에서는 전임 회장의 최측근으로 인식되고 그런 만큼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전 행장의 객관적 성과를 인정하고 놔두느냐 몰아내느냐의 선택지 중에 결국 농협의 숙청 전통을 따른 것이다. 농협 내부에서는 그래도 최근 연임됐기 때문에 그대로 갈 것이란 예측도 많았다.

중앙회장은 임기 4년에 단임이지만 중앙회 산하 계열사 △수장들에 대한 인사권 △예산권 △감사권 등을 쥐고 있다. 거대 공룡 조직인 농협은 중앙회장 선거 기간 때마다 그야말로 정치권 못지 않은 치열한 파워 게임을 치르게 되고 승리한 세력은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해왔다. 정권을 잃으면 주요 인사들이 감옥에 가는 한국 정치의 익숙한 풍경이 재현된다. 감옥에만 가지 않을 뿐이다. 사실 김 전 회장도 집권 이후 2016년 하반기에 일종의 항복 각서를 일괄적으로 받아냈다. 

(사진=연합뉴스)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은 끝내 스스로 물러났다. (사진=연합뉴스)

흔히 한국 재벌 대기업들 간의 형제의 난이 빈번하다고 하지만 농협은 족벌 오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정치적일까. 역사를 좀 볼 필요가 있다.

농협은 말 그대로 농업협동조합으로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1958년 탄생했고 3년 뒤에 ‘농업은행’과 합치게 되면서 지금의 거대 조직이 됐다. 농업은행은 20세기 초반 대한제국의 공적 금융조합 진흥 방침에 따라 출범한 ‘대한금융조합연합회’가 그 뿌리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부터 금융 자산의 기반을 갖고 있는 곳과 농협이 합병되면서 지금의 초공룡 조직이 된 것이다. 2000년에는 또 다른 협동조합인 축산업협동조합·인삼협동조합까지 통합시켰다. 이런 역사적 배경 아래 컨트롤타워인 중앙회는 2012년 비금융과 금융을 분리해 ‘농협경제지주(경제지주)’와 ‘농협금융지주(금융지주)’로 재편했고 그 아래에 50여개의 계열사가 있다. 그래서 농협은 중앙회장을 포함 회장직만 3명이다. 영화 <신세계>와 같이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2·3인자 간의 치열한 전쟁이 사이클처럼 반복된다.

당선 직후 현충원에 헌화를 하러 간 이 회장. (사진=연합뉴스)
당선 직후 현충원에 헌화를 하러 간 이 회장. (사진=연합뉴스)

금융지주는 임추위(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신임 은행장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그 후보를 내려받으면 농협은행도 자체 임추위를 열고 확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주총회 절차까지 밟아야 한다. 

이 회장은 내 사람으로 행장을 앉혀서 이 전 행장만큼의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데 불확실하지만 홍재은 농협생명 대표와 오병관 전 농협손해보험 대표 등이 차기 은행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흉흉한 분위기는 감돈다. 모든 수장들이 교체되는 것은 아닌데 그나마 남아 있는 수장들도 눈치보기 바쁘다. 사표를 냈지만 반려된 경우(최창수 농협손해보험 대표)도 있다. 곧 임기가 끝나는 2인자 김광수 금융지주 회장이 살아남을지도 관심사다. 2인자를 완전히 굴복시켜서 연임시킬지 못마땅해서 교체할지 알 수가 없다.  

이 회장은 쳐낼 곳은 쳐내고 놔둘 곳은 놔두는 숙청 작업을 마무리 한 뒤 완전히 새로워진 농협 체제에서 존재감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김 전 회장과는 뭔가 차별화되면서도 농협은행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의 성과 창출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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