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의 죽음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서울시의 장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추모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6년간 박 시장의 비서로 근무하다가 최근 그만두게 된 알파씨는 박 시장으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알파씨는 8일 밤 변호인과 함께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박 시장은 그 직후 고소 사실을 알게 됐고 보좌진들과 급하게 대응 방안을 논의하다가 9일 오전 유언을 남기고 공관을 나섰고 익일 자정(10일) 숨진채 발견됐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 정치사 최초로 3선 서울시장에 성공한 정치인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9일 18시부터 6시간 동안 경찰과 소방당국의 수색 소식이 속보로 타전되는 등 온국민이 박 시장의 생사를 걱정했던 만큼 그의 비보에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박 시장의 시신은 서울대병원에 안치됐고 빈소는 같은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곧바로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됐고 10일 오전 시청에서 긴급 브리핑을 통해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갑작스러운 비보로 슬픔과 혼란에 빠지셨을 시민 여러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서울시정은 안전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박 시장의 시정 철학에 따라 중단없이 굳건히 계속돼야 한다. 이날 부로 시장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부시장단과 실국본부장을 중심으로 모든 서울시 공무원이 하나가 돼 시정 업무를 차질없이 챙겨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장례 절차와 관련 △서울특별시 ‘장’ 5일장으로 치르기로 했고 △13일에 발인을 하고 △청사 주변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박 시장은 공관에 자필 유언장을 남겼다.

박 시장은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 밖에 주지 못 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이라는 말을 남겼다.

일반적인 사과의 표현만 있을 뿐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공개된 박 시장의 자필 유언장. (사진=연합뉴스)

인권 변호사, 시민운동가, 3선의 서울시장이자 대권 주자인 고인이 너무나 황망하게 떠난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성추행 고소를 당한 뒤 모든 책임을 미뤄둔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의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날 아침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시는 서울시장장과 시민조문분향소를 취소 중단하라.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다. 그 세금과 그 인력 피해자 보호와 보상에 사용하라”며 “박 시장의 시민운동가로서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야 시민사회의 몫으로 별론이다. 하지만 박 시장은 자신이 서울시장으로 서울시 모든 직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권력을 이용하여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성추행을 하고 텔레그램 등으로 자신의 사진을 보내고 죄질이 좋지 않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사회에서 기부금품법에 따라 통장 만들고 돈 걷어 시민사회 주도로 장례를 치르던 말던 하기 바란다. (서울시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서울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서울시 직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전 비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일부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알파씨에 대한 2차 가해를 일삼고 신상털기를 시도하고 있다. 10일 오전 딴지일보 게시판에는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밤새 일반 시민이 접근 가능한 자료로 2017년 회의록 문답 내용까지 다 뒤졌다. 같은 여자로서 그분(을 찾아내서) 참교육 시켜줄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박 시장은 서울시민들로부터 세 번의 정치적 선택을 받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런 흐름을 우려한 상당수 시민들은 정세랑 작가의 책 <시선으로부터>에 나와 있는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라는 대목을 인용해서 “위력에도 용기를 낸 피해자와 연대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페이스북에서 “모두가 고인을 추모할 뿐 피해 여성이 평생 안고 가게 될 고통은 말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고소가 사람을 죽인 것 같은 트라우마에 갇힐 것이 걱정된다. 무엇보다 앞으로 벌어질 광경 앞에서 외롭지 않기를 빈다.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나 혼자라도 이 얘기는 꼭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에 대한 추모의 목소리들과 피해 여성의 고통이 정비례할 것임을 알기에 다른 얘기는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 하겠다”고 표현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사람들의 애도 메시지를 보고 읽는다. 고인께서 얼마나 훌륭히 살아오셨는지 다시금 확인한다”면서도 “나는 당신(알파씨)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존경하는 사람의 위계에 저항하지 못 하고 희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당신이,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비로소 고소를 결심할 수 있었던 당신이, 벌써부터 시작된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가슴팍 꾹꾹 눌러야 겨우 막힌 숨을 쉴 수 있을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영화 <굿 윌 헌팅> 속 등장 인물 숀이 주인공 윌에게 전한 말이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다시 회자되었던 이 말을 닿을지 모르는 공간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를 당신에게 전한다”며 “우리 공동체가 수많은 당신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여 2차 피해를 막을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나는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모든 죽음은 애석하고 슬프다. 유가족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1998년 2월23일 서울대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열린 성희롱 사건 승소 축하연에 참석한 당시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왼쪽 끝)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8년 12월3일 서울 중구 시민청에서 열린 성희롱 근절을 위한 '서울 위드유(#WithU)' 출범식에서 박 시장과 기관 및 단체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떠난 자는 말이 없다. 정확하게 어떤 심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여성 인권을 위해 힘써왔던 그의 삶을 되돌아 봤을 때 스스로의 행위에 너무나 큰 자괴감을 느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박 시장은 변호사 시절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1986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1993년~1999년) 등의 변호를 맡을 정도로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바 있다. 박 시장은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시의 수장이 된 뒤에도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성평등위원회 설치 △2012년 여성의날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서울 비전’ 발표 △시 예산에 성인지적 관점 반영 △성평등 조례 제정 △여성건강지원센터 설치 △범죄예방환경설계 도입 △싱글 여성을 위한 안심주택 보급 △시장실 직속으로 젠더특보 신설 등 실천하는 페미니스트의 모습을 보여줬다.

비단 여성 인권 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평생 노력했던 정치인이 박 시장이다. 그래서 경계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박신영 작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고인에게 평소 호감을 가졌고 고인을 지지했으며 고인과 좋은 추억이 많다는 것이, 고인이 이룬 사회적 업적이 크다는 사실이, 고인이 무죄라는 근거가 되지 못 한다. 너무 놀라워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이라는 말을 고인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음모다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당 사건 고소인과, 이 한국 사회에 너무나 많이 존재하지만 고소하지 못 하고 참고 있는, 위력에 의한 직장 성폭력 피해자들이 보고 있다”며 “피해자인데도 가해자로 몰리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정말 고인을 아끼고 사랑했다면 1993년 서울대 (성희롱) 사건을 비롯하여 성폭력 문제에 발벗고 나섰던 진보적 남성마저 권력을 갖게 되니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구조적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해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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