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중앙뉴스 칼럼=박근종 이사장]세계 경제는 미국 금리 인상·중국 지역 봉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트리플(Triple) 악재’의 어려움에 직면해 미국 월가의 투자 심리를 측정하는 심리 지표로 꼽히는 ‘공포·탐욕 지수(Fear & Greed Index)’는 지난 5월 4일(현지 시각)부터 이날까지 10거래일 연속 ‘극도의 공포(Extreme Fear)’ 구간(0~25)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누구도 예상 못 한 위험을 뜻하는 ‘블랙스완(Black Swan │ 예측 자체가 어려워 대응 곤란)’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환율·저성장으로 인한 ‘트리플(Triple) 악재’의 난관에 봉착해 있다. 코스피(KOSPI)는 연저점을 환율은 연고점을 찍으며, 17개월 만에 지수 2,600선을 내줬고, 환율 상단은 1,300원을 내다보이는 등 안팎의 경제 상황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nation │ 고물가 속 경기침체)'이 덮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경기는 식고 물가만 오르니, 부작용을 감수하고 용감해질 건지, 미세 조정하면서 시간을 벌 건지, 계산은 복잡해지고, 선택폭은 좁아지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디딘 경제토대가 이렇다. 명철과 지혜 그리고 통찰과 혜안이 필요할 때다. 무엇보다도 원·달러 환율 급등이 가장 큰 현안이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 강화 등으로 미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면서 신흥국 통화 일부를 제외한 주요국 대부분의 통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5월 4일 ~ 11일) 기준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ollar Index │ 미국 달러화의 평균적 가치 지표)는 102.6에서 103.8로 1.2% 상승했다. 같은 기간 주요국의 미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 변화율을 비교한 결과 일본 엔화는 –0.7%, 유로화는 -1.1%. 영국 파운드화는 -3.1%로 모두 약세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 역시 1266.3원에서 1275.5원으로 올라 원화가 미 달러화 대비 –0.7%로 약세를 나타냈다. 이렇듯 최근 급등하는 원·달러 환율은 우려감을 더하고 있다. 주요 통화국 대비 원화 절하율은 높지 않더라도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특성상 충격파가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은 고스란히 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무역수지 적자는 올 1월 사상 최대규모인 47억3,500만 달러를 나타낸 데 이어 대통령 선거를 앞둔 2월만 8억9,200만 달러 흑자로 돌아섰을 뿐 3월의 적자 1억1,500만 달러에 이어 4월에는 26억6,000만 달러로 적자 폭이 오히려 더 커지면서 두 달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지난 1월과 3월에 이어 올해 들어 4개월 중 3개월이 적자다. 한 해 3개월 이상 적자를 나타내기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치며 연중 9개월 적자를 나타냈던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올해 들어 4월까지 누적 수출액은 2,306억 달러로 사상 처음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수출은 18개월 연속 성장세이자 1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의 호조였다. 그러나 지난달 수입액은 18.6% 늘어난 603억5,000만 달러였다. 무역수지는 2개월 연속 무역적자에 빠지면서 올해 1~4월 누적 무역적자 규모는 66억1,900만 달러로 불어났다. 이달 들어서만도 5월 10일까지 무역수지 적자는 37억2,000만 달러에 이른다. 올해 들어 무역수지 적자 규모만 98억6,000만 달러로 1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공급망 교란이 가중하면서 세계 경제는 다시 뒷걸음치고 있다. 우리 교역과 경제환경도 갈수록 나빠진다. 무역수지 적자 기조가 호전될 전망은 어두워지고 재정건전성까지 악화일로다. 일각에서는 지금과 같은 무역수지 악화 상황이 길어지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재정수지와 경상수지 모두 적자인‘쌍둥이 적자’에 봉착할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다.

특히, 경상수지는 무역적자 폭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쌍둥이 적자’는 국가 신용등급 하락과 외국인 자금 유출,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원화 가치 하락 등 여러 부작용 초래와 함께 경제활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게다가 그동안 지속적인 확장 재정으로 재정수지는 4년 연속 마이너스 상태로 100조 원 내외의 재정수지 적자가 구조화되고 있고, 올해에만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70조8,000억 원을 넘을 전망이다. 또한, 거듭된 적자 국채 발행에 국가 채무가 1,000조 원 이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이 50%를 넘는다.

향후 수출증가세가 꺾이고 수입은 계속 늘어나 무역수지 적자 구조가 고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불편한 진실로 확산하고 있다. 천연자원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해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제의 최후 보루인 무역이 적자 늪에 빠져든 셈이다. 투자와 소비 부진 속에서 홀로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에 그야말로 빨간불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의 ‘빅 스텝(Big step│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과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 중앙은행의 보유자산 축소)’의 공격적 통화 긴축에 따른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당분간 ‘강(强)달러 현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2000년 5월 이후 22년 만인 지난 5월 4일(현지 시각) ‘빅 스텝(Big step)’으로 기준금리를 기존 연 0.25~0.5%에서 연 0.75~1%로 0.5%포인트 올린 데 이어, 6월과 7월 연이은 ‘빅 스텝(Big step)’ 즉, ‘점보 스텝(Jumbo step │ 두 차례 이상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미국이 두 차례 ‘빅 스텝(Big step)’을 밟으면 한·미 간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달러 강세는 외국인 자본이탈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역사의 흐름을 뒤돌아보면 연준(Fed)이 고물가를 잡기 위해 돈줄을 조일 때 신흥국에선 ‘긴축 발작(Taper tantrum │ 신흥국에 유입된 자본이 이탈하면서 발생하는 충격)’이 일어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 신흥국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이 일제히 빠져나가면서 발생하는 충격이다. 예컨대 1997년 초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달러 투자금이 대거 유출되면서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바 있어 결단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충격에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 연준(Fed)이 기준금리 인상의 가속페달을 더 밟아 속도를 더 낼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 국내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 금융 불안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공세로 주식 및 채권 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어 주식·채권·원화 값이 동시에 모두 하락하는 약세 금융현상인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다. 지난 5월 13일 ‘코스피(KOSPI) 지수’가 9거래일 만에 ‘반짝’ 상승했지만 최근 한 달간 무려 5조5,000억 원의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건 이를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외국인 ‘엑소더스(Exodus │ 대탈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면, 달러 강세가 강화되며,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더 이탈하기 쉽다. 외국인들이 원화를 팔고 떠나면 원화 가치가 더 하락해 환율 상승의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셀 코리아(Sell Korea │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다시 파는 것)’만은 막아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한국 경제의 가장 화급한 문제는 ‘고물가’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4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올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 올랐다. 지난 3월 4.1%에서 0.7% 상승해 오름세가 계속됐다. 하지만 이는 분명 양날의 칼이다. 물가·환율 방어를 위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필연적으로 경기침체와 고용둔화를 불러온다. 가뜩이나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사상 최대규모인 59조4,000억 원의 추경안을 편성했다. 국채 발행 없이 초과 세수와 지출 구조조정으로 충당한다지만 ‘생활안정자금’ 등을 합쳐 36조 원의 현금성 지원이 시중에 풀린다. 인위적인 재정지출로 경기 부양에 나서면 물가만 자극하는 형국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원화의 국제 경쟁력이 취약해 외환시장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잠재한다.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 원유와 원자재 등 수입 물가 부담이 커져 국내 인플레이션도 한층 더 크게 자극하게 된다. 대외요인에 민감한 우리 경제 특성상 경기 방어와 물가, 무역수지 적자를 한 번에 해소하긴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정책 운용의 묘가 절실히 필요하다. 환율 방어를 통한 무역수지 회복이 발등의 불이다.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는 결국 기업들의 고용 확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이 외환위기를 염려할 정도의 위기 상황은 결단코 아니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 안전판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과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유연한 선제적 대비가 필요하다. 미국의 긴축에 금리 인상만으로 대응엔 한계가 있는 데다 환율이 안정돼야만 물가도 잡을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때마침 오는 5월 21일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위기를 기회를 만드는 반전의 기적을 일궈내야 한다. 선제적으로 한·미 간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 자국의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의 통화를 빌리는 통화교환) 체결을 통한 외환시장에 켜켜이 쌓인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해야만 한다.

통화스와프(Currency swap)란 외환위기에 대비하여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비상시에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차입할 수 있도록 약속하는 계약이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위기 상황에서 달러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율 안전판’으로 여겨진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위기 때 원화를 미국에 맡기고 그만큼의 달러를 빌려오는 제도다. 위기 상황을 대비해 평소 쌓아두는 외환보유액을 적금이라고 한다면 통화스와프는 마이너스 통장이다. 성사만 되면 미국에 ‘달러화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는 셈인데, 그 상징성만으로도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크다. 환율 안정은 수입 물가를 끌어내려 결국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은 금융허브 국가인 유럽연합(EU)과 영국, 일본 등과만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나머지 국가와는 위기 때만 한시적으로 맺는다. 한국은 그동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300억 달러, 2020년 코로나19 때 6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위기를 넘겼으나 작년 말 종료됐다. 역사의 시대적 흐름을 보면 한·미 동맹은 군사 동맹을 넘어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구축 등 포괄적 경제·안보 동맹으로 진화하고 있다. 차제에 반드시 한·미 통화스와프를 성사시켜 한국의 금융시장 안정성을 강화하고 미국에도 플러스가 되도록 양국의 공고한 경제동맹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흔히들 ‘안미경중(安美經中 │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과 협력)’을 일컫고 있지만, 이제는 다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안경동반(安經同伴│ 안보와 경제를 함께 함)’ 전략을 취해야만 한다. 한·미동맹의 지난 68년이라는 긴 시간이 군사와 안보 분야에서는 혈맹(血盟)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불가분(不可分)의 밀접한 관계 그 이상이었다. 이젠 그에 못지않게 경제, 산업,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혈맹(血盟)의 ‘안경동반(安經同伴)’ 내지 안경동미(安經同美│ 안보와 경제를 미국과 함께 함)’하며, 최소한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를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와 동격화(同格化)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글로벌 가치사슬(GVC │ Global Value Chain)의 뉴노멀 시대가 도래했다. 외교와 통상의 벽이 무너지는 ‘경제안보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미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 온 주요국들이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내 공급망 강화 기조로 태세를 전환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주의 체제와 글로벌화의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급망 위기를 절실히 경험한 세계는 ‘가치사슬 재구축’에 나서고 있다. 한편, 국제 정치는 그동안 지리적 위치 중심의 지정학(地政學) 시대에서 이제 과학적 기술 중심의 기정학(技政學) 시대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음도 눈여겨봐야 한다.

특히, 미국을 포함한 해외 주요국이 향후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수시로 커질 수 있는 만큼 통화스와프 네트워크 확충에 가일층 정려(精勵)해 나가야 한다. 이제는 재정과 통화 그리고 외교당국 간의 긴밀한 조율과 공조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 중국, 베트남 3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수출 다변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물론, 중국과는 일정 수준의 경제협력이 불가피한 현실이지만 공급망 안정성 강화를 위해서라도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역내 핵심 소재·부품·장비 가치사슬 구조상에서 ‘허브 국가(Supply Hub)’를 발굴하여 대체 가능한 지역 공급선(供給線)을 마련하고 거점별 특화된 산업군의 특성을 고려해 최적의 거점을 선정하는 전략을 구사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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