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중앙뉴스 칼럼=박근종 이사장]통계청이 지난 5월 31일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을 살펴보면 참으로 충격적이다. 올해 한국 경제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지표가 온통 마이너스로 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소비·투자가 동시에 줄어드는 이른바 ‘트리플(Triple) 감소’는 2020년 2월 이후 무려 26개월 만에 처음이다.

당시는 코로나의 공포가 휩쓸던 때라 당연히 그럴 만했지만 지난 4월은 거리두기가 대폭 완화되면서 일상을 되찾아가는 시점으로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이 컸다. 따라서 ‘트리플(Triple) 증가’가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정 반대 결과가 나왔다. 더구나 하반기 경기 전망도 암울한 회색빛 일색이다. 현재와 미래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와 선행지수가 4월에 모두 전월 대비 0.3p씩 하락했다.

특히, 향후 경기를 보여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6월 이후 10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처럼 10개월 연속 떨어진 것은 2009년 1월까지 14개월 연속 감소한 이후 처음 있는 하락으로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경제의 버팀목인 기업과 가계에 들이닥친 위기로 성장엔진이 빠르게 식고 있다는 참으로 불길한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경제 지표에 대해 통계청은 “경기 회복 흐름이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다.”라고 설명한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감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경기 하강의 시작”이란 반대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장의 경기는 이미 불황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건설 현장은 좁아진 공급망에 철근과 레미콘 조달이 어려워 공사장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고, 조선업체들도 수주를 받아놓고도 급등한 자재비용 때문에 손해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가계는 외식 물가가 오르면서 1만 원으로 냉면 한 그릇 사 먹기조차도 빠듯한 실정이고, 공공요금 인상으로 가계부 쓰기가 겁날 지경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삼중고에, 생산과 소비 및 투자마저 위축으로 경기 부진의 총체적 악순환에 빠져 있다.

우선 생산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의 봉쇄 조치에 따른 공급망 불안으로 전월 대비 0.7% 감소했다. 올해 들어 1월과 2월에 감소하다 3월에 힘겹게 증가로 전환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도돌이표가 되어 다시 감소했다. 반짝 증가에 그친 셈이다. 소비는 지난 4월 18일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소비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고물가로 인한 소비심리가 꺾이고 의약품, 음식료품 등에서 판매가 줄어 전월 대비 0.2% 감소했으며, 투자는 반도체 제조용 등 특수산업용 기계가 포함된 기계류가 9.0% 감소하고 항공기 등 운송장비가 2.1% 줄어 전월 대비 7.5% 감소했다.

결국 글로벌 인플레이션 여파로 투자와 소비도 동반 부진에 빠진 셈이다. 이렇게 줄어든 투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수요까지 걱정했던 소비마저 오히려 0.2% 감소한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보조지표들마저도 하나같이 좋은 지표가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 생산능력도 0.4%나 떨어지고, 가동률도 1.6%나 계속 떨어졌다. 그 와중에 재고는 설상가상으로 0.2%나 늘어났다. 일반적인 경기순환 이론에 따르면 경기 하강기에는 출하 물량이 줄면서 재고가 늘어나고 경기 침체가 심해지면 출하와 재고 물량이 모두 감소하게 된다. 제조업 재고·출하 동향만 보면 경기가 하강 흐름 초입에 들어섰다고 해석할 수 있는 국면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16일부터 23일까지 3,15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2022년 6월 중소기업경기전망조사’ 결과를 살펴봐도, ‘6월 업황 경기전망지수(SBHI│Small Business Health Index│Business Survey Index│중소기업건강도지수)’는 86.1로 전월인 5월 87.6 대비 1.5p 하락했다. SBHI는 응답 내용을 5점 척도로 세분화하고 각 빈도에 가중치를 곱해 산출한 지수로, 100 이상이면 긍정적으로 응답한 업체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는 업체보다 더 많음을 나타내는 낙관이며,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뜻하는 비관으로 구분한다. 당연히 비관적인 결과이다. 또한 한국은행이 지난 5월 25일 발표한 ‘5월중 업황(BSI│기업경기실사지수)’도 86으로 전월 대비 1p 하락했다.

이렇듯 물가는 급등하는 데 경기가 나빠지면 한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심리적으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들어섰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연구기관은 앞다퉈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도 그나마 포스트 코로나 소비가 성장률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 5월 30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민간 소비 증가율을 지난해 3.6%보다 0.3%포인트 낮은 3.3%로 제시했다. 또한, “올해 수출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됐음에도 원·부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입 증가세가 더 가파르게 나타나 연간 158억 달러 규모의 무역수지 적자가 예상된다.”라고 분석했다. 만약 현실화하면 이는 1996년 206억 달러 무역적자를 기록한 이후 26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리두기가 해제되어 완전한 일상으로 회복되더라도 소비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민간 소비 증가세가 유지되겠지만, 금리 인상 추세는 더 가팔라질 것이 분명하고 가계부채 및 원리금 상환 부담은 가중될 것이며, 물가는 계속 오른다.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소득이 떨어지는 데 소비가 계속될 리 만무하다. 결국 성장률은 2% 중·후반대를 유지하기도 버거운 상황이 눈앞에 선명하게 목도될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공포’는 현실이 되어 옥죄어 오고 있다. 생산(-0.7%)·소비(-0.2%)·투자(-7.5%)가 동시에 줄어드는 ‘트리플(Triple) 감소’와 고물가(4.8%)·고금리(1.75%), 고환율(1,260원)의 ‘트리플(Triple) 악재’가 위기 상황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5월 30일 밥상·생활물가 오름의 어려운 상황에 관세나 재정 지원 등의 수단으로 생산비를 낮추는 3조1,000억 원 규모의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앞으로 상황을 진단하면서 추가 대책을 지속 마련해나가겠다고 한다.

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법인세 인하 등 세제개편에 대해서도 실기하지 않도록 하되, 관세 폐지 등을 통한 원가 인하 방안이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역량을 집주(集注)하고, 수출 착시 효과를 걷어내고 수출 장기 침체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 유가 등 원자재가격이 하반기에도 고공 행진을 이어가 기업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관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금리 인상은 단행할 필요가 있겠지만 금리 인상으로 모든 문제가 만능으로 해결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 긴축은 부채의 총량을 줄일 수 있겠지만, 저소득층의 대출을 더 어렵게 만들어 취약층의 연쇄 도산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물가를 강제로 끌어내릴 수도 없다. 그만큼 부작용이 더 클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물가 안정과 성장동력 확충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도 없는 난제다. 물가와 성장대책 중 한쪽에 비중을 더 두기 힘든 딜레마에 빠져든 총체적 난국이다. 따라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눈치만 보다가 실기한다면 고물가 상황에서 경기까지 추락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만 앞당기는 치둔(癡鈍)의 우(愚)를 범할 수도 있다. 실제 물가를 잡으려고 금리를 빨리 올리면 1,862조1,000억 원의 가계부채가 부실해지는 반면 경기를 살리려고 지출을 대폭 늘리면 물가를 더 자극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정부는 취약계층이 빚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에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정부의 역량을 다하여야 하고, 관련 경제 당국은 관세를 포함한 탄력적 물가 조절 방안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따라서 점진적 금리 인상으로 취약계층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한편 민간의 혁신을 지원하는 산업정책으로 투자를 유도해 나가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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