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이사장
박근종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 이사장]환율 상승세가 천정부지로 매섭게 치솟고 있다. 지난 8월 23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40원을 돌파해 1,345원대까지 올라서더니 8월 24일에는 1,342.1원으로 마감했다. 하지만 외국발(發) 요인들이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어 연말엔 1,400원 선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는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4월 수준으로 무려 13년 4개월 만이다. 8월 24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2.11포인트(0.50%) 오른 2447.45에 장을 마쳤다.

최근의 환율 상승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우선 무역수지 적자 확대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의 연이은‘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란 공격적이고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강달러 현상이 심화하면서 나머지 통화는 요즘 공통적인 약세다.

중국의 경기둔화로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며 원화 가치도 동반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인 공급망 교란, 폭염ㆍ가뭄으로 인한 유럽 경기침체, 원자재 가격 상승을 타고 우리와 같은 제조업 중심 국가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반영되고 있다. 향후 더 커질 미국과의 금리 격차도 환율을 계속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문제는 ‘3고(高) 1저(低)’의 ‘악순환’이다. 이른바 ①고환율 → ②고물가 → ③고금리 → ④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고착화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왜냐면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린 후 소비자물가에 반영돼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유발하여 고물가를 이루고, 한국은행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어 고금리를 이루고, 고금리는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켜서 저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고환율은 ‘스태그플레이션(Stagnation │ 고물가 속 경기침체)'의 방아쇠로 작용할 공산이 클 뿐만 아니라 외국인 자본 유출의 부작용도 키울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원재료 수입 가격이 올라 생산자 물가를 밀어 올린다. 이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환율의 물가 상승 기여도는 올해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 3.8%의 약 9%인 0.34%포인트에 달했고, 지난 7월 기준 수입 물가지수는 원화 기준으로 1년 전보다 27.9% 상승했다.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원화 가치가 하락해 그만큼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는 셈이다.

고환율은 대외신인도에도 악재로 작용한다.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상승은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에 잠재적 불안 요소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나지만, 지금은 수출로 벌어들이는 것보다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 비용이 더 많아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8월1일부터 20일까지 수출액이 작년 동기 대비 3.9% 늘어난 334억2,400만 달러인데, 수입은 22.1%나 급증한 436억4,100만 달러다.

이번 달에도 20일 현재 102억1,700만 달러 적자를 기록 중이며, 올 누적 적자도 254억7,000만 달러에 이른다. 그 원인으로 원유·가스 등 에너지·원자재 수입 가격을 꼽지만, 일시적 현상이라 치부할 일이 결단코 아니다. 이달에도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대해 넉 달째 무역적자를 이어갔는데, 한·중 수교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당장 환율시장의 안전판인 외환보유액 마저 쪼그라드는 추세다. 7월 현재 외환보유액은 4,386억 달러로 전고점이었던 지난해 10월의 4,692억 달러 대비 6.6%인 작년 10월 이후 306억 달러나 줄었다. 특히 지난 2분기 말 한국의 대외 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준비자산(외환보유액) 대비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외채도 41.9%인 1,838억 달러로 3개월 새 3.7%포인트 올라 10년 만에 가장 높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 달에도 다시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는다면 자본 유출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매우 크다. 국가부도 사태에 몰렸던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재정동향 8월호’에 따르면 올해 1∼6월 누계 기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1조9,000억 원에 달한다. 적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2조2,000억 원 늘었다. 5월 말과 비교하면 30조7,000억 원 증가했다. 정부는 2차 추경 편성 당시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110조8,000억 원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상반기에만 100조 원을 돌파했다 재정수지가 만성적인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경상수지의 핵심 구성요소인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250억 달러를 넘으면서 ‘쌍둥이 적자’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달 20일까지의 무역적자 규모는 무역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56년 이래 66년 만에 최대액이다.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동반 적자를 기록하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 된다. 그야말로 비상한 각오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다.

정부는 “경제 기초에는 문제가 없다”라며 계속 우려를 애써 누르고 있지만, 경각심만은 더 높여야만 한다. 잇따르는 경제 불안 요인들에 대한 보다 장기적·다각적·다층적·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유연한 선제적 대비책을 강구 할 때다. 그야말로 정부와 외환 당국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한다. 국내외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꺼내 쓰고, 그것이 다시 대외신인도 하락과 환율 급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진 외환위기 때 실책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2011년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 했듯이 우리 앞에 발등의 불로 봉착한 고환율 파도는 뚫고 나가는 게 아니라 타고 넘는 것일 뿐이다. 그래야만 총성 없는 글로벌 경제·기술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금융·외환 시장과 실물 경제의 실상을 주도면밀히 분석하고 상황에 맞춰 정교한 위기 대응책을 마련하고, 한·미와 한·일 간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체결을 통한 외환 안전망을 구축하고, 자본 엑소더스(Exodus)를 막기 위한 다각적·다층적 시장 안전판을 구축해야 하며, 무역적자 축소 차원에서 수출업체 원·부자재 및 물류비 지원, 무역금융 확대, 재정 건전성 복원, 구조 개혁과 규제 완화로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을 키우는 등 가능한 수단을 모두 집주(集注)하여 총력 대응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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