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 이사장]지난 8월 16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The Inflation Reduction act)’ 충격에 후폭풍이 거세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향후 10년 동안 4,850억 달러(약 657조1,750억 원 │ 9월 1일 기준 1달러 : 1,355원)의 예산을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 헬스케어 등에 투자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예산의 80%에 달하는 3,860억 달러(약 523조300억 원)는 태양광, 풍력, 전기차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하되, 관련 제품 부품 조달 등은 중국 의존도에서 벗어나 공급망 재편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은 전기차 구매자에게 7,500달러(약 1,016만 원), 중고 전기차 구매자에게 4,000달러(약 542만 원) 규모의 세액 공제를 지원한다. 문제는 미국에서 생산되고 일정 비율 이상 미국에서 제조된 핵심 광물과 배터리 부품을 사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도록 규정함에 따라 전기차 전량을 국내 생산 중인 현대ㆍ기아차의 북미 판매 5개 모델(아이오닉5, 코나EV, 제네시스 GV60, EV6, 니로EV 등)이 모두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8월 1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과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위반 소지가 있다.”라며 “미국 측에 여러 채널로 우려를 전달하는 한편, 다른 수출국과도 대응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지난 8월 19일 대책회의에서 “매년 전기차 10만 대 수출이 막힐 우려가 있다.”라며 “정부가 한국산과 북미산을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미국 정부와의 협상에 즉시 착수해 달라”고 촉구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지난 8월 30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이원욱(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미국의 수입산 전기차 및 배터리 세제지원 차별금지 촉구 결의안’을 수정·보완해 의결한 데 이어서 9월 1일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발효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지급 배제를 우려하며 미국에 세제지원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북미지역에서 조립·완성된 전기차에만 소비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도록 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세제 차별 시정을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안성일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손웅기 기획재정부 통상현안대책반장, 이미연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 등 정부 합동대표단을 꾸려 지난 8월 29일부터 8월 31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 상무부, 재무부, 국무부 등 관련 부처를 모두 방문했고, 전기차법이 입법 사항인 만큼 상원 수석전문위원도 만나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대표단은 구체적인 방안으로 현대차의 북미 전기차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까지 해당 조항을 유예하고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해당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조립국에 북미뿐 아니라 한국 등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파트너 등을 포함하도록 할 것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은 뒤늦은 느낌이 강하다. 최근 미국은 하루가 멀다고 대중국 견제용 입법과 국제공조망을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입법은 물론, 인도-태평양 경제협력체(IPEF)와 칩4 등 외교적 압박까지 동시다발로 쏟아지는 형국이다.

관련 흐름을 미리 파악해 선제 대응했어도 모자랄 판에 정부는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입법에 어떤 대처를 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애초 ‘중국산 배터리 사용 전기차에 보조금 제외’ 항목이 상원을 거치며 ‘북미 내 조립’으로 훨씬 강화됐는데도, 정부는 고작 “미국에 보조금 제외 요건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라는 수준의 대응에 그쳤고, 정부대표단의 안성일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지난달 31일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 취재진과 만나 “공동 협의 창구를 제안했고, 미국 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라고 말하는 정도다. 더구나 한국 정부가 요청한 2025년까지 적용유예 또는 최종 조립국에 북미 외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포함 등 대책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 당장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 의회가 관련 법 개정에 서둘러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날이 갈수록 거세져 가는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재편 압박을 생각해서라도 우리의 핵심 경쟁력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는 역발상과 함께 우리의 경제·통상 외교 전반을 재점검해 정부와 기업, 관련 단체들이 하나가 되어 선제적 대응태세를 갖춰 국가적인 산업 피해 예방 체계를 서둘러 구축하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 초강경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수입품 대신 국내 상품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한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3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조 2항은 이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준용하는 데다 한국산 제품을 미국산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산 수입 전기차에 한국 차와 같은 보조금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국내산과 수입산의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고 유럽 국가들과의 공조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큰 기여가 있다. 한국이 올해 대미 최대 투자국이자 올해 미국에서 리쇼어링(Reshoring │ 해외 생산시설 본국 회귀)과 외국기업 직접투자(FDI : Foreign Direct Investment) 덕에 일자리 35만 개가 새로 늘어났는데, 국가별 기여도에서 한국이 1위를 차지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올해 34개 한국 기업이 미국에 생산설비를 옮기거나 새로 지어 미국에만 일자리 3만5,000개 창출에 기여한 것이다.

그런 핵심 동맹국에 대한 차별적 조치는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내년은 한·미 동맹 70주년이다. 한국이 미국에 꼭 필요한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제조기술을 가진 핵심 동맹국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