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 적자 시대, 첨단기술 보호로 기술무역수지 개선 기반 마련
5년간 기술유출 범죄 판결, 실형보다 ‘집행유예+무죄’ 많아
기술유출 법정형 발맞춰 법원 양형기준 상향 필요

[중앙뉴스= 이광재 기자] 반도체 등 첨단기술 우위 선점을 위한 국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기술 유출의 수법 등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첨단기술이 바로 경제력이라는 기술 패권주의가 확산되면서 해외로의 기술 유출을 막고 첨단산업을 엄격히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9월까지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로열티 확보 등 기술무역수지를 개선하는 차원에서라도 첨단기술 보호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공=전경련)
(제공=전경련)

기술무역이란 국가간 이루어지는 기술지식과 기술용역의 수출, 수입(도입)을 의미하며 기술무역의 대상으로는 특허, 실용신안/디자인, 상표권, 노하우, 기술서비스 등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기술무역수지가 만성 적자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기술수출액과 기술도입액이 동시에 늘어나면서 기술무역 규모가 점차 커지고 해외와의 기술거래 시장이 확대되는 상황이다.

또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나타내는 기술무역수지비(기술수출액/기술도입액×100, 한 국가의 종합적인 기술 경쟁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되며 숫자가 높을수록 높은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도 점차 좋아지고 있어 향후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기술무역수지 개선이 기대된다.

기술무역수지 흑자를 확보하고 무역수지 적자를 보완하기 위해 첨단기술 보호 및 육성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전경련은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기술 유출·침해행위에 대한 처벌법규 및 양형기준의 검토와 정책과제’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다.

보고서에서는 첨단기술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 기술 유출 관련 양형기준(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형량이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법원이 범죄 유형별로 지켜야 할 형량 범위를 정한 것으로, 합리적 사유 없이 위반하기 어려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 기술평가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전담 평가기관의 설치와 첨단기술의 국제동향 변화에 적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이 대법원 사법연감을 기반으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형사공판 사건 81건을 검토한 결과 집행유예(39.5%), 무죄(34.6%), 재산형(8.6%), 유기형(6.2%) 순으로 판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5년간 1심 재판에서 유기징역(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총 5건에 불과했으며 산업기술 유출사건의 무죄 선고 비율은 같은 기간 전체 형사사건 무죄율(3.0%)보다 11.5배 이상 높았다.

김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기술 유출에 대한 법의 처벌 규정 수위는 주요국과 비교해 낮지 않으나 실제 법원에서 선고되는 형량은 법정형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기술 보호 관련 법률인 산업기술보호법은 2019년 8월 개정을 통해 벌칙 규정의 법정형을 상향했다.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15억원 이하의 벌금 병과가 신설됐고 국가 핵심기술 외의 산업기술을 해외에 유출할 목적으로 침해한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업기술의 국내 유출은 기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억원 이하의 벌금에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됐다.

하지만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법원이 실제 판결을 내릴 때에는 ‘지식재산권범죄 양형기준’의 ‘영업비밀침해행위’를 적용해 판결하고 있다. 해외로 기술 유출을 한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제2유형으로 기본 1년에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제시하며 가중 사유를 반영해도 최대 형량이 6년에 그친다. 이는 산업기술보호법상의 해외 유출 처벌 규정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강화된 법률 개정 내용이 실제 법원의 판결에 반영되려면 경제안보와 관계되는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 적극적인 양형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가핵심기술 등은 유출시 일반적인 영업비밀과는 달리 국가 경제 전체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별도의 범죄 군으로 분리해 양형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해 산업기술보호법과 방위산업기술보호법상의 기술 유출·침해행위에 대해서는 별도의 산정기준을 만들 것을 제언했다.

주요국은 첨단기술 보호를 위해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기술유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다. 일본의 경우 최근 기술유출 방지와 중요물자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하며 내각부에 경제안전보장을 담당하고 관련 행정기관 간 업무를 조율하는 장관직을 신설했다.

대만은 지난 5월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핵심기술의 유출에 대해 경제간첩죄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반영해 우리나라도 경제안보 차원에서 민·관·학 등이 기술유출 방지와 보호정책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또한 기술유출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 컨트롤타워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2006년 산업기술보호법 제정 이후 2015년까지 국무총리 산하에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뒀다.

하지만 2015년 1월 법 개정으로 위원회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교육부 등 관련 다른 부처와 조율하는 기능이 약화됐다.

보고서는 경제안보와 기술보호 등에 대한 종합계획과 국가정책의 수립·추진은 대통령 직속 또는 국무총리 산하의 정책 컨트롤타워에서 총괄하고 국가핵심기술 지정 등 시의성과 효율이 필요한 업무는 실무위원회에서 담당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기술유출과 침해에 따른 피해액 산정을 위해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을설치해 법원의 양형기준과 배상액의 합리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기술유출 사건은 개발 중이거나 시장에 출시 직전인 제품과 관련된 기술들이 많아 피해액을 산정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에서 기술의 내용과 가치를 평가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피해액 산정과 양형기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기술유출은 개인의 윤리적 책임과 위법의 문제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산업 발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행위”라며 “기술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은 물론 국민적 공감대와 경각심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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