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장터기행

예부터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상업 행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정이 오고 가는 소통의 장소로 문화창달의 랜드마크였다. 여기에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의 중간자 역할을 해왔던 보부상 역시 한국 유통업의 시작을 알린 주역으로, 오늘의 상업문화 성장에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제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장의 급성장으로 이 같은 전통시장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에 본지는 우리의 전통시장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나아가 미래세대의 문화 전달을 위해 베스트셀러 '악어새'의 저자 이재인 소설가의 ‘왁자지껄 장터별곡’을 기획으로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장터에서 계산기로 사용했던 '주판' (사진=이재인 소설가)
장터에서 계산기로 사용했던 '주판' (사진=이재인 소설가)

자린고비 설화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어느 이야기가 원조(元祖)인가를 가리는 일은 무모한 일이다. 그러나 충청도에서는 갈산지역에서 생겼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홍주의 갈산지역은 바다와 인접해 있다. 해산물이 풍족하여 생선이 많이 거래되는 곳이었다.

생선도 싱싱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부자들의 잔치 자리를 차지한다. 서민들은 건 생선, 즉 말린 것이 대부분 사들이거나 갯소금을 숭숭 뿌려 절인 것을 선택 할 수밖에 없다. 흔한 충청도 말로 가난이 죄이다. 그러니까 절인 생선에서 자린고비가 탄생되었다. ‘자린’이라는 말이 ‘절인’으로 음운이 이와 되어 ‘자린곱이’가 ‘자린고비’ 즉, 인색한 사람의 행동을 일컫는 언어로 고착되었다.

그런데 자린고비 설화는 청주의 자린고비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전래되어 있다. 소금에 절인 가오리가 마루 위 새끼줄에 걸어 놓은 게 한 마리씩 줄어드는 데 대하여 시아버지인 노인이 며느리에게 먹지 말고 이를 구경이나 하라고 분부했다. 살림살이가 지난하고 조상 젯상에나 올릴 가오리를 잘 관리하라는 엄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아버지 되는 노인이 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어 가오리 등에 앉아 간간함을 맛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옳거니, 네놈은 인제 죽었구나! 우리 조상에게 제물로 드릴 것을 네놈이 미리 맛을 본 다구? 예 이놈!” 파리채를 찾아들고 살짜기 내리쳤다. 이크! 이놈이 절명하자 그만 이  노인이 파리 꽁무니를 붙잡았다. 그러곤 파리 입술에 자기 입을 대고 쪽쪽 빨아 먹어서 ‘자린고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청주 설화도 있다. 지방에 따라, 지역을 넘어 이 이야기는 산과 강과 바다를 건너 탐라 제주까지 건너가 ‘자린고비’가 인색함의 대명사로 정착되었다. 그러니까 생선을 절여서 천정에나 빨랫줄에 걸어놓는 구태에서 전이된 명칭이 되었다. 포구가 상업으로 이끌어 충청남도는 포구가 발전되어 이른바 ‘내포’라는 고유명사가 탄생되었다.

가난한 농부가 ‘돈’이라는 대명사를 소유하게 되었다. 어염, 생선, 건어물, 즉 실치, 멸치, 오징어, 가오리, 갈치 등등의 고기가 물길을 타고 포구에까지 조류를 타고 밀려왔다가 잡힌 고기 탓에 농민이 그만 돈맛을 알았다.

예산 보부상, 홍주, 대전의 보부상들이 경제적 발달을 하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은 생선거래로 서해가 중심이 되자 그만 농사가 천직인 줄 알았던 농민이 상인으로 변신하게 된 것도 모두가 까닭이 있다.

죽은 생선전에도 우열은 있다. 광어, 우럭, 조기, 명태, 문어 등등의 고귀한 신분의 생선들이 좌판을 차지한다. 저쪽 맨 끝에는 밴댕이와 갑오징어가 구겨진 모습으로 누워있다. “갑오징어 한케미 주시요! 양반 귀족이 증말요, 맛을 알면 그들이 요절날테니께 맛있고 야밤에 직효라고 소문내지 마시오”

흰 바지저고리 입은 사내가 조끼 왼쪽 주머니에서 배춧잎처럼 시퍼런 만 원권 지폐를 불쑥 내밀었다. “아직 마수걸이도 못 헸싱께 이따가 주시면 쓰겄는디…”
생선 장수는 그가 누구이고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장날 장꾼으로 만났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아래 위 정갈한 옷차림으로 보아 광산 덕대쯤으로 보는 것 같다. “알았으닝께 파전 전에 줄텡이니께 갑오징어두 이따 가져가지 뭐…” 사내 곁에는 손에 소다 넣어 더부룩하게 부풀어 오른 찐방 봉지가 들려있다. 아마도 애머슴을 데리고 온 것처럼 보인다. “자, 이따가 보자구…”

점잖은 사내가 사라진 뒤로 청요리 집 젊은 색주가가 종종걸음으로 덕대 뒤를 쫒아갔다. 그 뒤로 꽃샘바람이 거칠게 생선좌판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이 먹고 사는 생선좌판 거기에도 값비싼 것들이 순서대로 누워 있다. 세상이 모두가 공평정대하다는 말은 모르고 지껄이는 말이다. 사람에게도 계급과 신분이 따르듯이 생선전 좌판의 고기들도 제 각기 맛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금값으로 높은 생선 팔던 생선장수 신세타령이 아슴하다. 

오늘장에 건건이될 생선풍년 널렸다오
이아침에 개시전에 파리떼가 몰려오나
여러분여 천주모셔 화개하세 너두나두
스산당진 트럭타고 가기전에 얼릉사쇼
생선장사 묻지마오 우리조상 삐까뻔적
할아버지 의병나가 삼촌형제 동학당에
태어날 때 계급없구 사해동포 국경움써
나아간다 믿어대구 오늘장에 싸다싸네
생선먹구 기운차려 이대통령 따라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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