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장터기행

[중앙뉴스= 신현지 기자] 예부터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상업 행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정이 오고 가는 소통의 장소로 문화창달의 랜드마크였다. 여기에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의 중간자 역할을 해왔던 보부상 역시 한국 유통업의 시작을 알린 주역으로, 오늘의 상업문화 성장에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제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장의 급성장으로 이 같은 전통시장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에 본지는 우리의 전통시장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나아가 미래세대의 문화 전달을 위해 베스트셀러 '악어새'의 저자 이재인 소설가의 ‘왁자지껄 장터별곡’을 기획으로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초롱산 (사진=이재인)
초롱산 (사진=이재인)

초롱산 장타령이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들었던 우리 타령 쪽 민요이다. 이것을 채록했기에 이 지면에다 되살린다.

초롱산은 임존성 봉수산에 발을 붙인 지상(地上)이다. 해발 340m의 산이다. 두 갈래로 각기 우뚝 서 있으므로 홍성과 예산 등지에서 애칭으로 형제봉, 문필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초롱산 깊은 골짜기를 넘어야 공주, 청양, 대흥, 예산으로 사십 리길 홍성장에 오갈 수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벌목이 없어 숲도 울창했다. 그러므로 대낮에도 혼자서는 장길을 나설 수 없는 험지였다. 더러는 풍문으로 산적도 나타났다고 했다. 그리고 산짐승이 출몰하여 오가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큰 사건도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장날은 고개 밑 삼거리 현경 주막집에서 모여 길을 오갔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길손들은 주막집에서 밀주로 배를 채운 다음 목청 좋은 사람이 장타령을 시작한다. 이 민요는 장삿꾼의 신세타령이요, 일제하 가난한 백성들의 애환이 서린 일종의 고백이기도 하다. 이런 민중사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림이기도하다.
 
홍성장에 주막집에 큰애기가 움써졌어 
누구말에 순사따라 대흥으로 갔다는디 
대흥이라 말만듣구 따라갔어 에헤라딱 
광시장에 광채나는 삶이있어 이바보야 
품바품바 잘헌다아 인물나서 광시라네 
 
돼지새끼 시마리나 팔아먹어 큰애한테 
홀딱주니 이내신세 능수버들 늘어지듯 
이제라도 공주장에 공짜술을 먹어보구 
태안스산 가을철에 어리굴젓 사다먹구 
품바품바 잘헌다야 바람쟁이 신세한탄 
 
오늘장날 홍성주막 큰애기나 만나려나 
인연이면 만나주고 새끼낳아 키워보세 
왜놈순사 양반이면 나는장차 태양이라 
품바품바 장돌뱅이 잘논다구 막걸리라 
천안장날 천안가면 큰애기나 볼것인가 
 
돼지새끼 세 마리를 팔아다가 눈에 든 주막집 큰 애기에 바친 사내 처지의 노래이다. 큰 애기를 왜놈 순사 첩으로 떠난 그녀를 찾아 나선 민요이다. 가슴 시린 서사적 스토리이다. 옛날에 큰산 골짜기를 넘으려면 인적도 무섭고, 산 짐승의 해악도 자주 들려왔다.

주막거리에 민중이 모여드니 그곳이 우리 구비 전설이 모이고, 또한 구비 전설은 전해주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재를 넘어가기 전에 으레 장돌뱅이들이 모여서 길을 나섰던 곳이 주막집이다. 주막집 호롱불 밑에서는 우리의 고전소설의 소재가 샘솟듯이 솟아났다.

이제는 소재가 디지털 시대가 빨아들여 슬픈 전설만이 되고 말았다. 그때 그 시절 민요는 산을 넘고 재를 지날 때 우리들의 민요는 지역을 넘고 경계를 지나 새로이 변형을 꿈꾸는 것이 바로 민요였다.

짚신 신고, 게다 (나무신)을 신고 험한 산길, 꼬부랑길 마을을 지나던 장타령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추억이다. 초롱산 기슭에 많은 지사, 영웅이 태어났다. 하지만 필자는 문학을 연구하는 자이므로 여기 초롱산 문인 몇 사람은 기억해 본다. 서창남, 김광희, 장동수, 이정룡, 한철수. 하금수. 유문동... 이들이 초롱산 문필동 정기를 받은 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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