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의 장터기행

예부터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상업 행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정이 오고 가는 소통의 장소로 문화창달의 랜드마크였다. 여기에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의 중간자 역할을 해왔던 보부상 역시 한국 유통업의 시작을 알린 주역으로, 오늘의 상업문화 성장에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제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장의 급성장으로 이 같은 전통시장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에 본지는 우리의 전통시장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나아가 미래세대의 문화 전달을 위해 베스트셀러 '악어새'의 저자 이재인 소설가의 ‘왁자지껄 장터별곡’을 기획으로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사진=이재인 교수)
(사진=이재인 교수)

장터국수는 국밥보다 값이 헐하다. 그래서 궁핍하거나 허기진 등짐꾼들한테는 반가운 음식이다. 시래기 고아 삶은 쇠뼈다귀를 우려냈기에 맛도 구수했다. 실고추 얹힌 국물은 덤으로 요새말로 무한 리필, 거듭 무한정 사발에 채워주었다. 여기에다 보리쌀 섞은 마걸리 한잔이면 장군들의 볼때기가 얼얼해진다. 이럴 때쯤 가물가물했던 노래가락도 되살아났다. 마누라 일찍 여윈 사내가 어디서 얻어들은 노랫말에 가락을 붙였다.

국수사발 매콤매콤 / 쇠기름도 동동 / 섬섬옥수 그대손에 
잔치국수 건네주는 / 남편도 잃었다네 / 슬픈전설 아낙네여  
장날만나 정이들어 / 내마음도 흔들대오 / 그대와 살고지고 

아마도 국수말이 아낙네의 남편이 6·25 전쟁 중에 철원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미망인을 투고 하는 남정네 노랫말이다. 그가 건네주는 장국밥이 어찌나 마음이 짠했던지 쇠장수 홀아비는 무슨 말보다도 누군가 지어낸 노래 가락을 흥얼흥얼 읊조렸다.

그 노랫말 뒤에 국수말이 아낙은 어떤 말로 대꾸하였을까...쇠장수 사내의 입안에 뱅뱅도는 그의 고백은 무슨 말로 고백하였을까? 아직도 그 대답이 궁금하다. 그런데 옆에 앉아서 죽물(竹物)을 파는 늙수그레한 사내가 화답하듯 목청을 뽑았다. 빈속에 털어넣은 막걸리에 취한 듯 얼굴이 앵두처럼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개다리 소반위에 / 겉절이도 새맛이오 
저동네 아낙네가 / 미망인이 되엇다오 
혼자서 살지마오 / 나를따라 고개넘세 
누군들 쑤군대도 / 갑남을녀 어울리세  

장날은 이렇게 홀아비도 미망인도 사방에서 모이게 되었다. 서로의 정분이 생기면 중매 잡이 없이도 시집도 가게 되고 장가도 간다. 떡장수, 국수말이, 엿장수, 찐빵장수, 약장수 가축 전에 도야지 장수 꼬기오 장수 등이 몰려들면 사고팔고, 더불어 구경도 반반이다. 그야말로 오일장은 마을의 축제이다. 유량극단이 들어서면 장판은 난장이 되었다. 어디 부산 국제시장만이 붐비나…

“아니, 장판에 책 나부랭이까지도 나왔네요!”
신문화 영향으로 애기 아버지 뻘되는 성년이 국민(초등)학교에 진학했다. 떠거머리 총각의 얼굴에 마른버짐이 멍석처럼 하얗게 자리 잡았다. 사범학교를 나온 애송이 선생님이 열변을 토했다. 배워야 산다. 그래야 과학적 위생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땅을 일구고 경제 개발에 참여해야 산다. ‘우리의 맹세’, ‘혁명공약’을 외워야 한다고 선생님이 강조하였다. 

‘책속에 길이 있고, 그 안에 스승이 있으니 책을 읽어라’ 선생님은 이광수의 '무정'과 '마의 태자'를 들고 스토리를 전개시켰다. 어린애들이 듣기에도 재미있었다. 우리 학생들은 책을 읽어야만 하겠다고 스스로가 다짐을 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싸전 옆댕이 좌판에 알록달록한 6전 소설이!"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엿들었는지 광목천 위에는 춘향전, 심청전, 구운몽, 한즁록, 곽재우전이 형형색색 장마당을 화려하게 수를 놓았다. 뿐만 아니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윤동주의 '별 헤이는 밤', 이육사의 '노랑나비', 김소월의 '진달래꽃'도 뽐내기라도 하듯이 제각기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다.

책속에 길이 있고 스승이 계셨다. 40년대생, 50년대생인 우리들은 지식에 굶주렸고 책과 가까이 하고 싶었지만 그간 장판에 책전이 없었다. 그런데 장마당에 책이 등장하게 되자 그만 우리들은 책을 사들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문학의 힘이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광수, 채만식, 박종화, 방인근, 김동인, 양주동, 홍사용 등등의 작가 시인의 이름도 외우게 되었다. 그것은 나만이 걷는 독서의 늪은 아니었다. 내 또래들은 경쟁하듯이 독서에 몰입을 했다. 그 배후에는 담임선생님들의 강력한 권고와 격려에 의해서 대한민국이 독서시장으로 들어섰다. 그것은 선생님들의 노력이 오늘 우리가 숨길 수 없는 고백이다.

계몽사, 현암사, 문예출판사, 삼성출판사, 동화출판공사, 국민서관, 교학사, 민음사, 지학사라는 출판사가 드디어 지식 산업의 선도자로 자임하고 나섰다. 이들의 외국 서적의 번역은 한국 사람들에게 바다 건너 지식인들의 삶과 정서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것이 서양문학이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5·16 군사혁명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귀에서는 아직도 ‘혁명공약’이 쟁쟁하다.

사상계와 문학예술, 현대문학, 자유문학도 등장

5·16 군사혁명은 '사상계'를 널리 알리는 역할도 했다. 시골청년 김지하가 '오적'이라는 담시를 사상계를 개재했다. 이 시는 부패한 사회를 고발하여 우리 사회의 곪아진 내부를 폭로하는 시였다. 드디어 김지하는 유명 시인이 되었다. 남정현 작가의 '분지'가 북한의 '조선문학'이 실리는 바람에 반공법 위반으로 그게 크게 문제가 되었다.

이 분지(糞池)는 '현대문학'지에 실린 것을 북한에서 전재하여 문제가 되었다. 스토리는 남한땅은 미군의 오물로 뒤덮인 땅이라고 풍자했던 남정현의 작품이었다. 드디어 일반 독서인들한테 '사상계', '현대문학'이 각인이 되었고 드디어 이 월간지는 낙양의 지가를 올리면서 일반 독자를 파고들었다. 그것이 근대문학 꽃, 현대문학의 초석이자 발전단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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