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의 ‘특강’ ·· 영화 ‘공작’ 속 반공보수의 ‘민낯’
정동영의 ‘특강’ ·· 영화 ‘공작’ 속 반공보수의 ‘민낯’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8.08.15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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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과 단체 영화관람, 흑금성 박채서씨의 애국심, 반공보수 안기부의 정치공작, 대선 임박 때 자행, 훈령조작사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박채서씨는 군인이었지만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의 북파 공작원이 됐다. 우리의 정보기관은 북한에 있는 핵 시설을 파악하기 위해 그를 대북 사업가로 변신시켰다. 작전명은 ‘흑금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안기부가 소위 ‘총풍 사건’(오정은 전 청와대 행정관·사업가 한성기와 장석중이 중국에서 북한의 관리 박충을 만나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함)을 조작해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故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당선을 막으려고 하자 실체를 알아채고 비협조적으로 변한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14일 저녁 영화 <공작>을 공동 관람한 뒤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밥을 먹으며 “(반공보수 세력은) 국익을 지킨다. 대한민국을 지킨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북한을 이용했다. 역대 보수 정권이 민족사 앞에 저질러 온 죄악이다. 남북 분단을 국내 선거에 이용해온 것”이라고 밝혔다.

정동영 대표가 <공작>과 관련된 여러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공작>은 박씨가 북파 공작원으로 활동한 사연과 총풍 사건에 휘말려 인간적 고뇌를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정 대표는 <공작>에 대해 “분단을 어떻게 선거에 이용해먹는가 하는 것을 최초로 영화화한 의미가 있다. 남북 분단을 어떻게 총선과 대선에 이용해먹는지에 대한 실체적이고 실질적인 증언을 영화로 다룬 것”이라고 평가했다.

1997년 12월 당시 박씨(극중 박석영)는 실제 총풍 사건을 막기 위해 김대중 캠프에 찾아갔다. 그때 새정치국민회의의 대변인을 맡고 있던 정 대표는 박씨를 만났다. 

정 대표는 “(박씨를) 만나면 만날수록 공작·역공작·이중간첩·삼중간첩 등 기자 출신(과거 MBC 기자였던 정 대표)으로서 문제의식은 커졌다”며 박씨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진실에 다가가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 황정민은 박채서씨 역을 맡아 열연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공작>에서는 갑자기 안기부가 정치 공작을 자행하려고 했을 때 박씨가 겪는 내적 갈등과 문제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던진다. 

광명성경제연합회(북한의 대남 경제협력 사업 담당 조직) 베이징 대표부였던 리호남(극중 리명운)은 박씨의 사업 파트너이자 북한 정권의 실세다. 이 둘은 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같이 만나기도 했다. 또한 영화 속 스토리에서 결국 총풍을 막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된 ‘정치 공작’

반공보수 세력의 정치 공작은 끈질기게 지속됐다. 

정 대표는 “(그때 반공보수 세력이) 하루 전까지 북풍 공작을 했다. 경기도 일산에 김대중 후보 자택에 찾아온 사람들이 많은데 사진을 찍지 않는가. 이중에 한 사람이 (안기부가 심은) 간첩이었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간첩이 일산에 가서 말하자면 김대중 총재를 만나서 사진을 찍었고 그걸 공개하고 그 친구가 북경에 나타나서 기자회견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 일이 잘 먹히지 않으니 안기부는 또 다른 공작을 시도했다. 

기자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공작>의 배경 설명을 하고 있는 정 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정 대표는 “오익제라는 분이 새정치국민회의 지도위원회 의장이었는데 1997년 8월15일에 평양방송에 출연했다. 평양에 나타나서 故 김일성 주석 동상에 헌화 참배하는 장면을 나왔다. 인터뷰가 나와 버렸다. 당으로서는 경악할 일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씨는 이런 시나리오를 정 대표에게 미리 귀띔해줬고 또 당시 급하게 정 대표를 찾아온 목사 제보자 A씨는 오익제 의장이 안기부의 공작으로 기획 입북했다고 말해줬다. 정 대표는 기획 입북설로 여론을 반전시켰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박씨의 제보가 안기부 공작을 저지하는데 주효했다. 특히 박씨의 자세한 제보 내용을 계기로 국민회의는 ‘북풍저지 대책 TF’를 결성해 기민하게 대응해갔다.

정 대표는 “역대 대선 때마다 항상 북풍이 터졌다. 87년 북풍 대선(대한항공 858기 폭파)·92년 북풍 대선(이선실 간첩단 남조선노동당 사건)·96년 북풍 총선(북한의 정전협정 파기 선언 및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무력시위)·97년 마지막 북풍 대선(총풍 사건)이 있었고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며 또 다른 공작 사례인 1992년 ‘훈령조작 사건’을 거론했다. 

90년대 초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북방 외교를 적극 추진하면서 남북 기본합의서를 이끌어낼 정도로 대북 유화책에 기울어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1992년 한 해에만 남북 ‘총리·장관·차관·실무’ 회담이 연달아 열렸다. 9월 평양에서 8차 남북 총리 회담이 개최됐는데 정원식 전 국무총리는 급하게 노 전 대통령의 훈령을 받았다. 회담을 깨고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훈풍 분위기에 명분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옹색하게도 의제가 아니었던 동진호 납북 선원에 대한 송환을 급 요구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회담을 파투내고 돌아왔는데 알고보니 대통령의 훈령인 것처럼 안기부가 조작했던 것이었다. 대선 석 달 전 반공보수의 선거 공작이 이런 수준으로 자행됐다.

영화 속 박채서와 리호남은 서로 의심하면서도 각각 애국을 위해 사업 파트너가 된다. (사진=CJ 엔터테인먼트)

그 즈음 한미 군사훈련 역시 해빙 무드에 따라 중단된 상태였는데 1992년 10월 한미 국방부가 팀 스피릿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통상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연간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2월에 진행되지만 이례적으로 10월에 급 재개가 발표된 것이다.

정 대표는 “내부의 냉전반공 세력이 뭉친 것이다. 남북관계를 깨버리고 한미 군사훈련을 재개하고 그러면서 북이 반발하고 이때 시작된 것이 북한 핵 위기였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때부터 북의 핵 개발이 본격화됐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북한이 남한의 손을 잡고 나오려다가 갑자기 (선거 공작 차원으로 남한이 먼저) 손을 놔버렸으니 1993년 3월12일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했고 핵 위기가 시작된 것”이라며 “(반공 세력이) 대선에 전략으로 써먹기 위해 남북관계를 희생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90년대 초 탈냉전 시대에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은 남북 화해 조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하고 5년을 허비했다. 1993년 2월25일 김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떤 동맹도 민족을 우선할 수 없다”고 선언했지만 정 대표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상태였다”며 “북한은 이미 핵으로 체제를 지킨다는 결정을 내린 뒤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공작>의 포스터. (포스터=CJ엔터테인먼트)

<공작>에서는 어쩌면 흑금성 작전을 수행했던 박씨의 진정성 있는 애국심을 부각했다고 할 수 있다. 안기부의 제안에 응했던 이유도 거절했던 이유도 다 애국심이었다는 대사가 배우 황정민에 의해 읊어진다.

하지만 박씨는 이명박 정권이던 2010년 6월1일 국가정보원 요원들에 의해 긴급 체포됐고 징역 6년을 복역하고 만기 출소했다. 안기부의 특수공작원이었던 그는 간첩으로 몰렸다. 반공보수의 정치 공작 굴레를 벗어날 수 있도록 희생했지만 보수 정권 하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한편, 정 대표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존치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것도 참 안타깝다. 2004년 12월 정기국회 때 독소조항을 걷어내고 국가보안법을 대체 입법으로 협상할 수 있던 부분인데 당시 원리주의자 의원들이 폐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서 못 건들었다”며 “그 바람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나왔는가. 그때 국보법을 개정했다면 세상이 바뀌는데 기여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종전 선언이 이뤄지고 비핵화로 가면 사실상 사문화되고 자연스럽게 소멸이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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