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 의원 ·· ‘비동의 강간죄’ 통과 위해 “법사위 설득할 것”
류호정 의원 ·· ‘비동의 강간죄’ 통과 위해 “법사위 설득할 것”
  • 박효영 기자
  • 승인 2020.08.12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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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넘어서는 게 관건
언론의 제대로 된 보도 중요
비동의 강간죄의 내용
무고 우려? ‘과잉 처벌’과 ‘동의 여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재작년 3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정치권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여성 의원들이 비동의 강간죄를 입법해야 한다고 나섰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비동의 “간음죄”로 명명됐었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 했다. 본회의로 가기 위한 길목에 법사위가 있는데 법안을 가장 보수적으로 심사하는 법률가들이 즐비한 곳이다.  

현재 법사위 구성은 18명(윤호중·백혜련·김남국·김용민·김종민·박범계·박주민·소병철·송기헌·신동근·최기상/김도읍·유상범·윤한홍·장제원·전주혜·조수진/김진애)으로 짜여져 있다. 더불어민주당 11명, 미래통합당 6명, 열린민주당 1명이다. 

류호정 의원이 비동의 강간죄를 담은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12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비동의 강간죄 입법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와 만나 “텔레그램 N번방이나 미투 운동 등을 통해서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이 많이 지지해주고 있고 법사위의 경우 저희가 함께 할 수 있는 의원들을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쉽지 않다.

비동의 강간죄 입법은 한국 성범죄 법체계의 골간을 바꾸는 것으로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전환하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소위 “법사위 꼰대”로 불리는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쉽게 통과시켜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안 전 지사 사태 직후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평의원 시절 여야를 막론하고 여성 의원들을 모아 토론회도 열고 법안을 발의해서 추진했지만 법사위 1소위(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조차 의결되지 못 했다.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도 나서서 크게 2개의 비동의 강간죄 법안으로 논의가 되는 듯 했지만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현재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재작년 8월 기자에게 “오늘 여가위 전체회의에서 비동의 간음죄 법안 관련해서 서둘러 처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법사위 소관이라 여가위 의원들의 마음만큼 되지 않을 수 있다. 법사위도 전향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미경 소장은 젠더 문제와 관련 언론의 보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그런 의미에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언론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 소장은 소통관 밖 백브리핑(비공식 질의응답) 공간에서 “기자들의 역할이 정말 크다”며 운을 뗐고 동석자들이 웃으며 호응했다.

이 소장은 “법안이 10개 발의되고 20개 발의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20대 국회에서 5개 정당에서 10개 법안이 발의됐음에도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1개의 제법 제대로 된 법안이 나왔으니 전국민이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것들이 모여져서 이제 우리 사회가 한층 성숙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로 가자는 약속으로서 이 법안이 기본적으로 통과돼야 한다. (기자들이) 잘 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백브리핑이 끝나고 이 소장에게 추가적으로 언론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이 소장은 “제목을 뽑는 것만 봐도 그렇고 지금까지 너무 (젠더 관련 보도가 남성 중심적으로) 그래왔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이 소장과 여성단체들 입장에서 편견 가득한 언론 보도로 인해) 저희는 박 시장 건으로 얼마나 많은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이어 “성범죄 사건은 기자들이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왜 언론이 (국민으로부터 성범죄 피해자를) 비난하고 의심을 하게끔 보도하는지 모르겠다. 기자가 기사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며 “저희가 보면 이 기자가 어떤 시각에서 쓰고 있는지 바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의 젠더 관련 보도 행태가) 너무 너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류 의원이 발의한 비동의 강간죄 법안의 풀네임은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동법 297조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는 조항을 뜯어고치는 것이다. 총 13명의 의원들(류호정·강은미·배진교·심상정·장혜영·이은주·권인숙·김상희·양이원영·윤재갑·이수진·정춘숙·최연숙)이 발의자로 참여했다. 

비동의 강간죄 입법은 정의당이 당론으로 채택해서 밀고 있는 5대 우선 입법과제(중대재해기업처벌법/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그린뉴딜 특별법/차별금지법/비동의 강간죄 입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 형법 체계에서 성폭력 범죄는 기본적으로 폭행과 협박을 동반해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야 성립된다. 하지만 자유로운 성적 의사를 침해하는 수단은 극단적인 폭행과 협박 외에도 많다. 위계(상하관계에서의 속임수), 위력(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적인 힘), 술을 먹여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등 이러한 상황들에서도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 신체적 물리력이 우위에 있는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하려고 할 때 죽도록 저항하지 않으면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우리 형법이 문제가 많은 이유다. 여성이 섣불리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더 큰 폭력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지 못 할 확률이 높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멍해져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폭행과 협박이 아닌 경우로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는 고통을 호소하지만 가해자는 혐의를 부인하면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왜 강렬하게 저항하지 않았느냐 또는 피해자라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식의 피해자다움 잣대가 들이밀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미 주요 선진국에서는 ‘NO means NO YES means YES’라는 비동의 강간죄 조항의 대원칙이 자리잡았다. 상대의 동의를 얻은 바가 없는 상태에서는 성관계 시도 자체를 하지 말라는 취지다.

류 의원은 공식 발언을 통해 “성범죄 처벌을 통해 보호해야 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며 “단순히 몇 가지 구성요건과 형량을 고치는 것이 아닌 성범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율하는 형법을 시대의 변화 국제적 흐름에 맞추어 재정비하는 법률”이라고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크게 3가지 내용이 핵심이다.

①“간음”이라는 법적 표현을 모두 성교로 교체(사전적 의미로 간음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 성관계를 맺음을 의미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한자 간(姦)은 계집녀(女)가 세 번 쌓아올려진 것으로 여성혐오적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음)
②형법 297조 강간죄를 유형에 따라 1항 <상대방의 동의없이> 2항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으로> 3항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등으로 세분화
③법적 표현과 구성요건의 개정으로 의미가 없어졌거나 다른 형법과 처벌이 중복되는 법 조항을 삭제하는 등 체계를 정리하고 <강간 상해치사>와 같은 중대 성범죄의 형량을 국민 법감정에 맞게 상향 조정

류 의원은 ②에 대해 “형법 303조(에 별도로 명시된)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삭제하고 기본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확장하는 것”이라며 “현행 303조는 의사와 환자 사이, 종교인과 신자 사이처럼 실제 위계·위력이 존재함에도 업무상 관계로 인정되지 않으면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배복주 정의당 여성본부장
여성단체 대표들과 류 의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기자회견에는 이 소장을 비롯 여성단체 대표자들(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김경숙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김태옥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한국여성민우회 소속 박지영님)이 참석했다.

김민문정 공동대표는 공식 발언을 통해 “성적 자기결정권은 폭행·협박 등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호 동의와 이해에 기초한 민주적 관계가 훼손될 때 침해되는 것이다. 동의없음을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범죄의 기본 유형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비동의 강간죄를 논의하는 담론에서 성관계 이후 여성의 변심 등 동의 여부가 악용될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는데 김 대표는 백브리핑 과정에서 “아이에게 밥을 먹어! 이렇게 얘기할 때 거부하면 안 먹이는 게 당연하다. 그걸 강제로 먹이면 학대로 인식하고 있다”며 “그런데 동의없이 신체적 침해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왜 이게 과잉 처벌이나 무고죄 가능성으로 생각되는지 왜 여성 폭력 문제와 관련해서만 이런 질문들이 제기되는지에 대해 기자들이 스스로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환기했다. 

류 의원도 “성범죄는 무고가 많을 것이라는 이런 인식 자체를 점검해봐야 한다. 사실 한국 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검찰과 연계해서 통계를 내봤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피해자를 압박할 수 있는 무고 문제에 대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배복주 여성본부장은 동의 여부나 과잉 처벌 문제는 입법이 완료된 뒤 검찰과 법원의 입증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배복주 정의당 여성본부장은 “비동의 강간죄 관련해서 가장 많이 백래쉬(반동)가 오는 것이 과잉 처벌과 동의의 판단에 대한 이 두 가지가 문제일 것이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과잉 처벌의 문제는 사실상 동의라는 것이 법적 개념으로 전환됐을 때 검사가 그걸 입증하게 된다”며 “단순히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어! 이런 게 아니라 동의되지 않은 성관계가 성폭력으로까지 이르렀는지는 수사기관과 검찰이 입증하는 것이고 동의 여부는 법적 용어가 되면 사회적 인식과 맞물려서 법원의 판례와 함께 쌓여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소위 말하는 연애관계에서 여성의 변심이나 여러가지 동의 문제는 법률화되면 엄격하게 해석될 것”이라며 “오히려 너무 엄격하게 적용될까봐 우려된다. 저희가 내일(13일) 국제사회에서 기준으로 제시되는 동의없는 성관계가 강간으로 의율되는 사례를 Q&A 형식으로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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