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정치경제학①] ‘사회보장’ →‘사회안전망’으로 변화 “노동의지 있는 사람만”
[홍기빈의 정치경제학①] ‘사회보장’ →‘사회안전망’으로 변화 “노동의지 있는 사람만”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9.11.26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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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 사라지고 사회안전망
웰퍼어 아닌 워크페어
좌파의 저항 실패
경제성장이 지상 목표
교육적 기회균등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흔히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자는 말을 좋은 의미로 자주 쓰는데 사실 그 말에 담긴 함의에는 곱씹어볼만한 논점이 있다.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20일 저녁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인권중심 사람’ 강의실에서 열린 <거대한 경제 전환이 필요한 이유> 특강에 연사로 나서 “사회보장이 사회안전망으로 대체됐다”며 “소셜 시큐러티(Social security)와 소셜 세이프티 넷(Social Safety Net)은 엄연히 다르다”고 밝혔다. 

이어 “세이프티는 서커스를 할 적에 사람들이 떨어져서 죽지 말라고 깔아놓은 것 같은 것이다. 떨어진 단원이 세이프티 넷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된다. 나는 서커스를 왜 하게 됐는가. 인생을 회고하면 안 되고 빨리 다시 기어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세이프티 개념은 소셜 시큐러티와는 다르다. 이제는 사회보장이란 말을 잘 안 쓴다”고 설명했다. 

홍기빈 소장은 사회보장에서 사회안전망 개념으로 바뀌어버린 것의 의미를 설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홍 소장은 사회안전망 개념이 지배적인 위치에 올라서게 된 한국적 맥락을 설명했다.

홍 소장은 “김대중 정부 때의 복지 정책은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한테 주던 모든 사람의 안녕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웰페어(Welfare)였는데. 지금은 워크페어(Workfare)가 됐다”면서 “노동시장에서 들어와 일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주겠다. 노동시장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줄 수 없다. 그 사람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돕는 사람에 한해 주겠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아울러 “이게 노동연계형 복지라는 어려운 용어로 번역됐는데. 웰페어에서 워크페어로 바뀌었을 때 서구권에서도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밝혔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고 자본주의가 고도화되어 신자유주의 시대가 30년 넘게 지속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현대인의 경제활동은 오직 시장에서의 노동 활동과 거래에 집중됐다. 국가적 거시지표 상승이 지상 목표가 되기도 했다. 

홍 소장은 “두 발 자전거는 멈추면 쓰러진다. 민주적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성장을 안 하는 순간 쓰러진다”며 “국가는 어떻게 해서든 경제성장이 벌어지게 해서 투자가 일어나게 하고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1차적인 목표로 놓는다”고 운을 뗐다.

이어 “1945년 이전에는 근대 국가의 1차적인 목표가 군사 안보였다. 1945년 이후에는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 소련의 위성 국가로 들어간다. 제3세계 국가 몇 개 말고는. 미국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군사적 보호 아래 들어가고 공산권 국가들은 소련의 보호 아래 들어간다”며 “(그때 이후로는) 더 이상 군사 안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주요국의 좌파진영에서는 “이 부분에서 협조하면서 최대한 따내는 것”이 주요 전략이 됐고 “(신자유주의자와 경제성장 지상론자들) 너희들이 맞다. 경제성장이 최고의 목표이고 경제성장을 하려면 옛날식 방법으로 안 하겠다. 노동운동으로 임금협상을 하고 그런 걸 안 하겠다고 합의를 해주고 중도좌파가 90년대에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홍 소장은 “그걸 상징하는 사건이 바로 토니 블레어가 영국 노동당을 뉴 레이버라고 이름 붙이고 신장개업을 하는 것”이라며 “당 강령까지 바꾼다. 사회주의적인 용어를 다 없애버리고 중도좌파 시장의 효율성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등등. 누가 보더라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다 바꿔버린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다 받아들인다”고 강조했다.

좌파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세계사적 배경에 대해 홍 소장은 “사람들 머릿 속에 경제성장이 종교처럼 종교보다 더 세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별로 안 다르다. 내가 말한 이때의 영국 정치구도가 2019년의 한국의 정치구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좌파나 우파나 무슨 소리를 하든 됐고 그래서 일자리와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처럼 돼 있다”고 묘사했다.

홍 소장은 재차 “경제성장이 신으로 숭앙되는 한 좌파 정당이 들어설 수 없다”며 “(유럽의) 좌파 정당들과 사회민주당이 계속 해왔던 것들이 1970년대에 한계에 부딪치니까 이걸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했고. 레이건(로널드 레이건 미국 40대 대통령)이나 대처(마가렛 대처 영국 71대 총리)가 했던 방법을 받아들이자. 그람시(안토니오 그람시 20세기 초에 활동한 맑스주의 사상가)가 썼던 용어가 아이러니하게 거꾸로 적용되는데.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를 우파가 가져갔다. 진지전에서 좌파가 완전 대실패를 한다”고 풀어냈다. 

사실 좌파 정당이 신자유주의 바람에 저항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홍 소장은 “대처나 레이건 물러나라고 미국과 영국의 국민들이 그랬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일이 안 벌어지고 신자유주의가 주류 정책이 됐을까”라고 환기하면서 “여기에 답을 내려야 지금 좌파 정당이나 진보 정당이 어떻게 정책을 세워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이것에 대해 답을 세우지 않고 대부분 교과서에서 그냥 (좌파가) 패배했다고만 나온다. 데이비드 하비(뉴욕시립대학 인류학 교수)가 쓴 신자유주의(의 역사에 대한 책)도 그런 면에서 문제가 많은데 왜 좌파의 저항이 실패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저항을 안 한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전환하면 우리 다 죽는다고 해서 영국 노동당도 80년대에 저항을 세게 했다. 노동자들도 파업을 많이 했다. 영국에서는 광산 노조의 투쟁이 제일 유명하고 미국에서는 화물트럭 파업이 가장 유명하다. 그런데 다 실패했다. (대중의) 지지를 못 받았다. 영국 노동당은 대처가 하도 이런 무지막지한 정책을 하고 사회복지를 다 삭감하고 노동조건을 불안정하게 만드니까 금방 잘릴 것 같았는데 막상 선거를 해보면 박살나는 것은 다 노동당이다. 한 세 번 연속 그랬다”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좌파 정당에 대한 대중의 혐오 정서는 “노조는 이익집단이라고 보고 사민당은 노조에 휘둘리는 정치집단에 불과하고 사회 전체가 살아남으려면 경제성장이 되어야 일자리도 늘어나고 자본도 축적되고 그렇게 경제가 굴러가야 사회가 유지되는데 저것들한테 나라 맡겨봐야 이게 될리가 있나”라는 결론으로 수렴됐다.

하지만 홍 소장은 당대 일반 대중에게는 “우파 쪽에서 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설득력있게 들렸다”고 강조했다. 

좌파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1990년대 미국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42대)이 집권했고, 영국에는 토니 블레어 총리(73대)가 들어섰다. 

홍 소장은 이들 정치세력을 두고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했고 “블린턴(블레어+클린턴)이 상징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도 좌파 신자유주의를 말했는데 그게 사실 정확한 표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좌파의 저항이 있었음에도 패배했다. 결국 좌파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도입하기에 이른다. (사진=박효영 기자)

우파도 좌파도 모두 신자유주의를 채택했다면 둘의 차이는 뭘까.

홍 소장은 “시장경제의 활력을 살려주는 것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는 것은 좌파나 우파가 똑같은데. 좌파 정당은 기회균등이라고 말한다”며 “영국 신노동당이 진행한 원칙의 수정이 중요한데. 그전까지 영국 노동당은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내건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누구도 굶어서는 안 되고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등등. 하지만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영국의 77대 총리)이 평등의 의미를 기회균등으로 바꿔버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난한 사람들도 시장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좌파 정책”이라며 “우파는 무지막지하게 시장만 들이대고 사회는 신경도 안 쓰고 있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시장 경쟁에 뛰어들 수 있도록 기회의 균등을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경쟁에서의 자유에 중점을 두는 우파와 기회균등에 중점을 두는 좌파로 차별점이 형성된 것이다.

홍 소장은 “그래서 나온 것이 교육 정책”이라며 “이때 좌파 정당이 한 것이 대학의 수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학자금 대출을 대폭 늘린다. 이게 이른바 기회균등”이라고 결론내렸다. 

한국에서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인해 대학 설립요건이 대폭 완화되면서 대학 수가 폭증했고 모든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일종의 절대적 과제가 되어 버렸고 이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됐다.

노동시장에서 더 나은 기회를 제공받기 위해 누구나 대학에 가야 했다. 하지만 국가가 대입의 문턱을 낮추는 재정적 지원을 쏟아내더라도 대학 서열화에 따른 불평등과 격차는 날로 커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좌파의 교육적 기회균등이라는 비전은 결과적으로 평등 보다는 서열과 불평등으로 귀결됐다.

홍 소장은 “김대중 정부 때 대학이 무지하게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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