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밥상

[중앙뉴스= 최봄샘 기자]

최한나 시인
최한나 시인

 

오래된 밥상 

이삿짐을 싸다가 

부엌 한 켠에 걸려 있던 밥상을 꺼내 닦는다

뜨거운 냄비에 날개가 다 타버린 원앙이 안스럽다

고단한 살림이야기 들어주느라 귀가 허옇게 닳았다

바래고 긁힌 상처들만 배가 부르다

지붕이 낮아서 마음도 낮아지던 변두리 단칸방

설익은 밥에 등 다 까진 고등어구이 올려놓고

철대문 밖 지친 발자국소리에 귀 기울이던 시간들

첫아이 돌잡이에 환호하던 박수소리도

아이의 재롱에 깔깔거리던 웃음꽃도 좋,았,다

인형 눈을 붙이다 엎드려 잠이 들면

요정들이 꿈의 궁전으로 데려다주기도 하던 밥상

솜씨 없는 내 삶을 다시 세우듯 상을 펴본다

네 식구를 저 바다 건너까지 무사히 태워다 줄

방주가 아직,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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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도 다 큰 성인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산 것도 아닌데 이제 보내야 한다.일생의 짝을 만났다 하니 어미는 가슴 뿌듯하고 기특해서 축하해 주며 혼사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가슴 속에 다섯 살 아가로만 살아가는 아들 녀석인데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 그 풋풋했던 한 시절, 고생이 고생인 줄 모르고 아장아장거리는 아가들과 젊은 어미의 마냥 부풀던 그 날들이 오늘은 그립기도 하다. 해서 십 여 년 전의 시 한 수 올려보았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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