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맛

[중앙뉴스= 최봄샘 기자]

최한나 시인
최한나 시인

 

- 숨맛 -

헉헉거리면서도 아직 맛을 모르겠다

평생 쉬지 않고 먹었는데

어쩌다 쓴 맛만 입술에 묻혀놓고

늙기만 했다

때로는 숨맛 지겨울 때가 있다

일희일비 하는 맛

이빨이 없는 아이도 이빨 잃은 노인도

날카로운 이빨의 포식자도

참 쉽게 삼킬 수 있는 숨맛

병실에서 링거 줄 타고 스미던 도리질의 맛, 위아래 길 다 잃은 나무토막의 맛, 소풍날 두근거리던 도시락의 맛도 먹어봤고 아무 맛도 모르고 헐떡거리거나 소리를 죽여가면서도 먹어봤고 끄덕거리며 먹어봤고 눈 찡긋 감으며 먹어봤고 때론 눈물을 섞거나 코를 벌름거리며 먹어봤고 깔깔거리다가 캑캑 사레가 걸리며 온갖 음용의 방식으로 먹었던 숨맛.

돌아보면 사실 모두 한 맛이었다

그 숨맛이 살찌운 것은 눈물의 농도

구수한 얼룩들이나 꽃향기,

네 식구의 숟가락 소리,

눈 내리는 풍경의 눈물만큼 두툼한 적체의 찬 맛.

사랑은 왜 늘 쓴맛으로 끝이 나고

달콤한 복수의 맛만 들숨으로 기록되는 걸까

여러 가지 새로운 숨맛은 왜 없을까

점점 가늘고 날카로워져 가는 혀가

노래하고 춤추는 맛을 찾아 날름거린다

문득 마지막 숨, 맛을 보던 누군가의

부릅뜬 눈동자가 숨맛에서 뜨겁다

아, 목에 걸려버린 이 숨맛

꿀꺽 넘어갈 듯 삼켜지지 않는.

------------------------

굳이 열대야를 핑계대지 않아도 새벽부터 일찍 눈이 떠진다.

우리 동네 옆 블럭에 한창인 아파트 단지 공사장의 소음 때문이다. 이 폭염을 뜷고 키를 더해가는 아파트 층 수에 몇 곱절로 비례하는 노동자들의 노고가 오늘도 뜨거워서 아프게 와닿는다.

오전 11시가 되면 쏟아져 나오는 일꾼들의 땀 젖은 옷,

동네 함바 식당마다 가득차는 것을 보며 저 한 끼 먹기 위해 저토록 이 포악한 여름과 사투하나보다. 사는 게 참 쉽지않고 매미들이 대리해서 악을 써대며 것이 숨맛을 토해낸다.

사는 맛, 호흡의 맛이 뜨거운 날,

왕년에 발표했던 넋두리 한 수 또 올려본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