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들이 사라지고 /최한나
[중앙뉴스= 최봄샘 기자]
닭들이 사라지고
닭들이 사라질수록 아침이 조용해졌다 닭을 많이 잡아먹은 할아버지는 매일 닭보다 더 먼저 일어났다 시간은 닭장 속에서 푸드득거렸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붉은 깃털의 시계들이 홰를 쳤다 시간을 하나 둘 잡아먹은 식구들은 시간만큼 늙어갔다
붉은 벼슬과 아름다운 깃털을 뽐내며 자주 굴러 깨지는 시간들을 관리했다 암탉의 몸에는 시간이 없었고 비가 오는 날이면 횃대는 자주 신경통을 앓았지만 칸나빛 얼굴에선 늘 막걸리 냄새가 났다 흰 벼슬이 점점 늘어지는 노인들, 손등은 닭발처럼 거칠어지고 꾹꾹거리는 목울대가 마을 노인들의 목에 걸려 있었다 잔소리 주머니를 달고 잔기침으로 아침을 열고 잔소리로 저녁상을 물리곤 했다
시간이란 늙을수록 질겨진다 아침의 시간이 다 빠진 수탉은 질긴 시간의 맛이었다 계란을 부화시키면 잠이 짧은 아침만 알을 깨고 나왔다
어느 날 사라진 닭들이 내 몸에서 구구구 돌아다닌다 이른 아침 구겨 넣은 토스트 조각들이 모래주머니에서 서걱거린다 점점 아침형 인간이 되어간다 무거운 눈꺼풀위로 보이는 닭장 같은 아파트들, 저 곳엔 닭이 없다
교회당 지붕 꼭대기에 울지 못하는 닭 한 마리가 달랑 앉아있을 뿐, 사라진 닭들의 혼이 첫새벽 버스에 시동을 건다 눈썹 끝에 매달린 잠을 종종 걸음으로 털어내며 아파트를 나서는, 한 낮의 아파트는 텅 빈 닭장 같다
/ 최한나 시집 <꽃은 떨어질 때 웃는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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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시끄러운 세상, 귀를 막고 살고 싶었다.
돌아보니 그런 나는 더 떠들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아서였을까? 다 허공을 치는 헛소리였음을 깨달을 때마다 낯이 뜨거워진다.
오늘도 메스컴은 시끄럽고 나는 입이 있어도 꾹 잠그고 살지만 귀는 뚫려 있으니 정말 진정성과 진취성이 있는 단 한 마디라고 흡수하고 싶다. 그 옛날 새벽닭의 아침 깨우던 그런 일침의 소리는 다 사라졌나보다. 그저 고막만 울리며 상처를 내다가 내성만 상승시키는 그런 소리, 말, 말들이 스크린 속에서 또는 sns에서 넘치고 넘친다.
나에게 일침의 목소리가 있으니 순종하자. '아무 것도 염려치 말라.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는 말씀을 새긴 지가 언제던가? 알아 들었으면 실행해야하지 않겠는가?
아무 영양가 없는 닭소리만 듣다가 또 하루가 간다.
[최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