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미 교수(가천대학교 의료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권영미 교수(가천대학교 의료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오늘날 병원은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와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의료서비스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행위이지만, 동시에 병원 운영에는 막대한 에너지 소비와 폐기물이 뒤따른다. 

국내 대형병원 한 곳의 전기·수도·가스 사용량은 중소도시 전체에 맞먹는 수준이며, 의료폐기물 발생량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절감, 친환경 설비 도입, 사회적 가치 창출은 단순한 이미지 제고 차원이 아니라 병원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병원, 에너지 다소비 기관이라는 현실
병원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시설이다.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 공간은 항상 가동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의료장비 대부분이 고전력 소모 기기다. 또한, 항온·항습 시스템, 중앙공조, 살균 장치 등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서울 시내 대형병원들의 연간 전기요금은 수백억 원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처럼 에너지 비용은 병원 재무 구조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에너지 절감과 고효율 설비 도입은 단순히 친환경 차원을 넘어 병원 운영비 절감이라는 실질적 이익으로 직결된다.

친환경 설비 도입이 만드는 경영 효과
최근 국내외 병원들은 친환경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 패널 설치, 고효율 LED 조명 교체, 스마트 에너지 관리 시스템 도입은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병원은 빗물 재활용 설비, 폐열 회수 시스템, 친환경 단열재 등을 활용해 냉난방 비용을 크게 줄였다.

이러한 투자 효과는 눈에 띄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한 대학병원은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뒤 연간 전기료를 30% 절감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병원이 ‘녹색 건축 인증’을 받아 장기적으로 관리 비용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는 보고가 있다. 

이처럼 친환경 설비는 초기 투자비용이 크더라도, 장기적으로 재무 건전성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다. 결국, 이는 병원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된다.

사회적 가치 창출과 병원의 브랜드
병원은 지역사회의 중요한 공공기관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단순히 수익을 내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CSR)을 실천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도 크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기업 전반의 화두가 되면서, 병원 또한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의료폐기물 관리 강화, 친환경 에너지 사용, 지역사회 건강 캠페인 등은 단순히 ‘좋은 일’이 아니라 병원의 신뢰도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요소다. 환자들은 이제 단순히 의료 기술만 보고 병원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좋은 병원’에 더 큰 호감을 갖는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ESG 활동이 적극적인 병원이 투자자와 환자 모두에게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장기적으로 환자 유치에도 유리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친환경 경영과 경쟁력의 연결 고리
그렇다면, 왜 친환경 경영이 병원의 경쟁력으로 연결되는가?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비용 절감 효과다. 에너지 효율화와 설비 교체는 직접적인 운영비 절감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재무 안정성을 높이고 진료 인프라 개선 등, 다른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환자와 직원의 만족도 제고다. 친환경 설비를 갖춘 병원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깨끗한 공기, 적절한 실내 온도, 친환경 건축 자재는 환자의 회복과 직원의 근무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셋째, 사회적 신뢰와 평판이다. ESG를 충실히 이행하는 병원은 지역사회와 환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병원’으로 각인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병원의 이미지 개선과 환자 충성도 강화로 이어진다.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소병원이나 지방 병원은 친환경 설비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다. 초기 자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병원 친환경 설비 도입을 위한 금융 지원, 세제 혜택, 인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녹색 병원 네트워크’를 구축해 병원 간 모범 사례를 공유하고 전체 의료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병원경영에서 에너지 절감·친환경 설비·사회적 가치 창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병원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기관인 동시에, 환경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조직이다. 지속가능한 병원 경영은 단순한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며, 곧 경쟁력이 된다. 

앞으로 환자와 사회는 ‘좋은 진료’를 넘어 ‘좋은 가치를 창출하는 병원’을 선택할 것이다. 친환경 경영을 외면하는 병원은 결국 경쟁에서 뒤처지고,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병원의 미래는 이제 수술실 안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설계하는 경영 전략 안에서 결정된다.

권영미(現 가천대학교 의료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