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 칼럼= 전대열 대기자]지난 9월26일 대전에 소재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단순히 건물에 불이 난 것 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화재다. 일반인들은 그런 국가기관이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기관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신경망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핵심부서다. 과거와 달리 현대는 컴퓨터 세상이다.
손으로 기록하고 남겨야 했던 모든 시스템은 이제 IT에 의해서 움직인다. 산더미처럼 크기만 했던 국가기관의 서류들이 칩 하나에 모두 들어가 있어 운반과 보관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국가기관 간의 연락과 서류 발급도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으면 소통이 될 수 없는 구조로 바뀌었다. 소설가 평론가 시인과 같이 200자 원고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야 했던 원고도 이제는 컴퓨터 이메일을 이용하지 않으면 아예 접수조차 하지 않는 세상이다.
신문기자들이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뛰어야 했던 시절은 이미 옛날얘기가 되었다. 현장에서 노트북으로 편집국에 송고하는 것으로 취재 기사는 끝난다. 음식점에서 주문하던 방법도 식탁이나 문 앞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터치하면 되고 카드 결제도 내가 한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을 모두 IT라는 이름의 새로운 발명으로 사회 전체가 바뀐 셈이다.
야전군들이 산과 들판을 누비며 적군을 무찌르던 육탄전은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하지만 이제는 드론이라는 무인 비행기로 먼 곳에 있는 적의 심장부를 폭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동안 상대국의 주요 목표를 향하여 드론을 날리는 것으로 전쟁의 양상을 바꿔버렸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AI를 하지 못하면 국가의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다. 미국이 가장 앞섰던 AI 기술은 지금 중국의 맹렬한 추격으로 뒷전에 밀렸다. 세계 3위라고 자랑을 멈추지 않았던 한국은 투자를 못해서인지 아니면 인재가 부족해서인지 AI 전쟁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AI로 보여줄 아무런 기술력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이다. 그런 판국에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너무나 큰 충격이다.
647개 행정업무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을 멈췄다는 것은 사람의 심장이 정지된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심폐소생술로 회생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인터넷이 한꺼번에 멈추면 많은 시간이 걸려야 복구가 가능하다고 한다. 불난 지 벌써 열흘이 넘었는데 현재 복구율은 10% 정도라고 하니 국민의 불편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데 한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국정 운영의 핵심인 정보 시스템을 오직 대전에만 두고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500년 전 조선왕조 시대에도 왕실에서 간행하는 실록과 각종 기록물 등 중요 역사서는 똑같은 기록물을 4대 사고(史庫)에 나눠 보관해 왔다. 혹시 화재나 전란에 대비하여 분산 보관한 것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춘추관 사고, 충주 사고, 성주 사고, 전주 사고 네 곳을 뒀다. 왜적은 호남을 점령하지 못하여 전주사고의 기록물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워 없애버렸다.
전주(全州) 사고의 기록물은 정읍 내장산 깊숙한 암굴에 보관하여 오늘날 자랑스러운 세계 역사문화 유산으로 조선왕조실록이 등록할 수 있는 길을 텄다. 그 뒤 조성왕조에서는 역사 기록물의 보관 중요성을 재삼 인식하고 5대 사고로 확대하여 마니산 오대산 태백산 묘향산 적상산 등 산간지방으로 이전 보관했으며 병자호란 때 일부 불탔으나 다른 보관분이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전쟁 때도 아니다. 그렇지만 국가정보자원은 언제 어떤 불상사가 발생하더라도 일호(一毫)의 차질도 없게끔 만반의 예비책을 마련해 놔야 한다. 5백년 전에도 4대사고, 5대사고로 역사물의 일실(逸失)을 막은 선조의 지혜를 배우지 못했는가?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바꾸더라도 백업을 해두면 모든 자료를 바로 복구할 수 있는 게 요즘 살아가는 지혜다. 하물며 국가 행정의 모든 자료가 건물 하나에만 보관되어 있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무지의 소치라고 밖에 힐난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이재명 대통령조차 분산 예비가 없었다는 보고를 듣고 한탄했겠는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화재 복구를 진두지휘하던 서기관 한 사람이 투신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다. 얼마나 압박감에 짓눌렸으면 그랬을까. 글을 마치며 명복을 빈다.
